사람입니다, 고객님 - 김관욱
#사람입니다고객님
“불쾌감과 모욕감이라는 순간의 감정이 아니라 그 같은 상황에 노출되면서 얻게 된 낙담, 실망, 절망, 그리고 숙명주의 등으로 인해 위축된 몸 말이다. 몸 펴기가 극복하고자 했던 ‘불판 위의 마른오징어’와 같은 몸이 그것이다.”
구로디지털단지의 소위 ‘공순이’로부터 그 맥이 이어진다는 서사, 가정의학과를 전공한 저자가 콜센터 노동자의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가 바로 ‘높은 흡연율’ 때문이었다는 고백. 프롤로그만 읽어도 뒷덜미가 뻣뻣해졌다. ‘콜센터’라는 신조어 때문에 최근 새로이 발생된 문제라 인식되나, 이는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시작부터 지리멸렬 대를 잇고 있는 값 후려치인 여성 노동자들의 인권과 존엄의 문제의 또 다른 버전이었던 것이다. 세월은 기술의 진보로만 이어졌을 뿐, 노동환경과 인간 존엄을 지킬 업무 환경과 문화로는 결코 이어지지 못했다. 사회의 가장 취약한 부류를 착취 강탈하는 방법만 디지털화되었을 뿐. 사어로 치부되는 ‘공순이’는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심지어 변이 바이러스처럼 진화한 양상도 보인다. ‘인간이지만 기계처럼 일하기를 강요당’했던 것이 개도기의 공순이들이었다면, 지금의 콜센터 상담사들은 ‘기계처럼 일하기를 강요당하면서도 인간이기를 강요받’는다. 팬데믹 직후 집단 감염으로 세간에 ‘콜센터’ 단어가 오르내릴 때, 정부의 방역 지침이 ‘중소 콜센터 전문업체’ 즉 하청 체제로 전환되면서 ‘간접 고용’으로 확장되는 과정은 우리 사회의 노동법과 규제가 얼마나 허술한 것인지를 다시 한번 보여주는 예시이기도 했다. 2021년에 사무실 붉은 진드기가 웬 말이란 말인가.
책을 읽어가며 잔인하리만치 디테일한 팩트 체크에 여러 번 절망했다. 작가는 처음에 분명 언급했다. 지지 않기 위해 이 글을 썼다고. 머리 검은 짐승 취급을 받아도, 신경 안정제를 먹어가면서도 자신이 좋아하는 콜센터 상담사의 업무를 계속해 나가고 싶어 하는 이들의 소박하고 안쓰러운 꿈을, 그들의 삶이 조금 더 개선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연구를 하고, 글을 썼다고. 읽어 나가며 절망과 분노로만 치닫지 않기 위해 굉장히 애써야 했다. 책은 지리멸렬한 이 여성 노동자들의 문제를 집요하게 파헤치는 동시에 노동자들의 진짜 목소리도 함께 담았는데, 이 목소리들이 내내 나를 웃고 울렸다. 현실 직시는 단순히 정보의 누수나 매체의 불완전함 때문만이 아니라, 개개인의 용기와 노력이 충분치 않아 발생하는 것임을 자각하는 계기이기도 했다.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잊지 말자. 이들을 응원하고, 함께 목소리를 내자.
그들의 서사가 아니라, ‘우리’의 서사다.
*창비 스위치 책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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