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ay Aug 01. 2022

 귀신보다 무서운 게 있다

저주토끼 - 정보라

#저주토끼


어디까지 할 참인가 싶을 정도의 인간사 잔인함, 무자비함이 이야기의 주를 이룬다. 되려 환상적 요소들 때문에 짙은 피냄새가 덜어지는 것 같았다. 현실은 이보다 더 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비현실적 요소가 가미되어 좀 덜 끔찍할 수 있었던 플롯들.


비현실적 요소들은 경계선 없이 사회의 여러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돈이면 딸이며 아들 가족의 피까지 팔아먹고, 남의 기술과 전통을 짓밟고, 짐승들과 싸움을 붙이고, 불륜을 저지르고. 전반적으로 흐르는 정서는 (귀신이 아니라) 인간 참 무섭다는 공포스러움. 무엇보다 쓸쓸하다. 혹자는 명쾌한 권선징악이라 술술 잘 읽혔다고 하는데, 권선징악이라 한들 이 책에서 행복하고 평온해진 자가 한 명이라도 있었나. 복수를 하더라도 그 복수의 과정 안에서 저지른 악행 때문에 스스로도 어떤 불행한 결말을 맞이한다. 죽임을 당하거나, 스스로의 세상에 갇히거나, 이도 저도 아닌 귀신이 되어 세상을 떠돌거나. 작가는 결국 이런 세상이라면 그 누구도 평온해질 수 없다는 것, 모두가 비극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건 아닐까.


부커상 최종 후보로 올라 차트 역주행 신화를 쓰고 있는 작품. 뒷맛 좋지 않은 책이지만, 작품 작품마다 그 아이디어가 신박하고 기발해서, 역시 대단하다 싶었다. 문장 문장마다 날이 시퍼렇게 서있다. 자주 읽으면 너무 인류애 박살날 것 같으니, 시간 간격 넉넉하게 두고 작가의 다른 작품도 읽어볼 참이다.


 “조금 걱정해주는 척한다고, 그 목소리가 뭔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아무 데나 따라오고…자기가 누구인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사람이 헛주먹질을 하면 마음이 지치거든, 마음이.”


 “그가 원했던 것은 복수가 아니었다. 최소한 이런 복수는 원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마을 전체가 ‘그것’의 존재에 기대어 생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을 뿐이었다.”


 “아주 상세하고 구체적인 계획이 없는 한 ‘대안적 삶’이라는 말만으로는 대안이 될 수 없고, ‘자본주의에 매몰되지 않는’ 직장이란 대체로 직원에게 임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 곳이라는 사실을 그녀는 얼마 못 가서 깨달았다.”


 “저주는 풀 수 있으나 자신의 욕심에 스스로 눈먼 인간을 눈 뜨게 할 방법은 없다. 저들이 언젠가는 다시 전쟁을 일으키려 할 것을 알고 있었다.”


 “밝은 미래따위는 믿지 않았다. 먹고 살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러므로 언제나 지금보다는 조금 전이 가장 좋은 순간이었고, 앞날보다는 지금이 가장 좋은 순간이었다.”


#정보라 #아작 #K가사랑한문장들

매거진의 이전글 책과 여행의 환장 콜라보 (feat.에두아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