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뾰족한 것에 공포증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바늘.
그런고로 ‘바느질’이란 애시당초 나에게 불가능하다.
다른 뾰족한 것들은 잠시나마 사용을 할 수 있지만,
바느질은 바늘의 뾰족한 끝을 끊임없이 넣었다 뺀 것의 반복이어서 생각만 해도 아찔거린다.
그 뾰족한 끝이 내 몸을 마구 찌를 것만 같다.
중학교때는 가정과목에서 옷만들기 등의 바느질이 있었는데 어쩔 수 없이 가족이 대신 해 주었다. 왜 바느질을 할 수 없는 학생에 대한 예외나 대체는 없었을까?
그냥 바느질이란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로 인식되는 것 같다.
‘난 바느질을 못해’ 라고 하면 10번이면 10번 다,
‘나도 못해’라는 답을 들었다.
‘난 뾰족한 것이 무서워 바느질이 아예 불가능한 사람이야’ 라고 구체적으로 말을 했었어야 했던 것이다.
일상생활에 불편함이 없지만 바느질을 할 수 없다는 것이 간혹거슬릴 적이 있다. 옷에 단추가 떨어졌을 때, 이조차 손을 볼 수 없다. 누군가의 손을 빌려야만 한다.
내가 참여하고 있는 카드사의 봉사활동,
매월 진행되고, 올해는 계속 취소되다가 키트만들기로 재택봉사로 진행되고 있다.
몇 년 전, 참여 신청을 하려다가 ‘바느질’이 필요한 일이라 못했는데, 이번에도 키트만들기 봉사를 모집하는데 바느질이 필요한 일이라 신청을 못했다.
아아, 난 왜 바느질을 못하는가.
이쑤시개를 잠깐은 사용할 수 있지만, 이쑤시개가 빼곡해 꽂혀 있는 통은 보기만 해도 현기증이 나고.
전 중 꼬치전은 꼬치를 재빨리 제거하고 먹을 수 있지만, 꼬치전을 만들 수는 없다.
포크도 사용은 하지만, 젓가락을 더 선호하고,
유독 끝이 뾰족한 포크들은 아주 잠시만 사용한다.
주사바늘 앞에서는, 차마 볼 수 없어 눈을 감아버린다. 직업으로 간호사는 할 수 없겠지?
바느질을 할 수 없는 관계로 봉사활동을 신청할 수 없는 오늘을 기억하기 위한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