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꽤 길것이다. 적어도 내 기준에서는.
아주 일상적인, 일상이라 말하기도 뭣한 지극히 일상적인 일로써, 목요일 아침, 난 옷을 갈아 입는 중이었다.
갑자기, 허리가 쿨렁하는 느낌이 들더니 난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잠시 얼음이 된 채로 있다가 몸을 질질 끌다시피해서 침대에 몸을 걸쳤다. 내 침대는 보통의 침대보다 꽤 높은 편이다. 이건, 그래서 내가 몸을 걸칠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 이후, 침대에 누웠는데 몸을 아주 사소하게 움직이기도 힘들뿐더러, 아주 작은 움직임에도 절로 ‘악’소리가 났다.
화장실을 한 번 가는 일은 너무도 큰 일을 해내는 것이었으며, 심지어 변기에 앉고 일어서는 자체가 크나큰 고통이었다.
정말, 몸의 중심 허리가 아프니 앉고 일어서는 일, 눕는 일이 도전해야 하는 일이 되어버렸다.
허리가 중요하다는 교과서적인 말이 저절로 체험되는 순간이었으며 정말 허리가 아프니 온 몸이 자유를 잃어버렸다. 끙끙 거리며 있었고, 병원에 갈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비염과 편도염을 내내 달고 살았던 난, 병원 방문이끊어질 일이 없었다. 그래도 늘 ‘회복력’이 빠르다는 말을 들었던터라, 금요일 아침에는 많이 회복되기를 기대했고 간절히 바랐다. 원체 약을 잘 먹지 않는데 급하게 근육이완제를 동원해서 꼬박꼬박 먹었다. 찜질팩을 계속 허리에 대고 있었다.
금요일 아침, 여전한 허리. 혹시나 디스크나 심한 증상이 아닐까, 온갖 두려움이 나를 휘감는다. 더군다나 난 면접일정이 있었다. 두렵더라도 내 증상을 직면해야겠고, 면접에 가야겠기에 물에 빠진 지푸라기도 잡아야 한다는 심정으로 병원에 갔다. 정형외과인가, 한의원인가의 갈림길에서 그래도 난 허리를 찍어보는 정형외과를 택했다. 아주 다행히도 근육이 일시적으로 뭉친거라 했다. 안도는 되었지만, 물리치료를 받았어도 허리는 차도가 없다. 머리도 못 감았고, 이런 상태로 어떻게든 면접을 가려고 동동거리다가 결국 포기했다.명동까지 가야하는데 걷는 것 조차 어정쩡 하고 힘에 부치는 지라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앉고 일어서는 일 조차 ‘악’소리가 나는데..
잠시, 이 면접에 대해 이야기 하자면 난 원래 월요일에 볼 예정이었다. 면접장소는 주차가 제공되지 않지만 근처에 내가 주차를 할 수 있는 곳이 세 곳이 있었다. 첫번째 장소가 만차면 두번째 장소로 가야 하고, 여러 변수를 고려해서 겸사겸사 꽤 일찍 출발했다. 가는 길, 예상보다 도착이 더 빨랐다.이태원 무렵에서 좌회전을 하면 내 목적지, 우회전을 하면 내가 집에 오는 길에 빵을 사려 들리려 한 곳이 있다. 시간이 여유져 우회전을 해서 빵을 사러 갔다. 운전중에는 방해가 되어서 알람을 꺼두는 지라, 빵을 사고 핸드폰을 확인해 보니 면접보는 곳에서 부재중 전화 두통, 문자 두통이 와 있었다. 건물 사정으로 면접이 취소되고 향후 일정을 연락주겠다 한다. 갑자기 붕뜬 기분이고, 시내까지 나온 김에 어디라도 가고 싶었는데 복장도 불편하고 도통 어디를 가야할지 몰라서 집으로 바로 왔다. 대체 나 뭐한거지?
이렇게 일방적으로 당일, 두 시간 전에
면접일정이 변경되고,
바뀐 일정에는 내가 못 가는 일이 생겨버리는,
그 곳의 사정은 무조건 수용해야지만, 내 사정은 수용될 수 없는, 어쩔수 없는 구직자란 약자,
면접 앞두고 몸관리 못한 것은 자기 관리 실패인
것일까. 결국 그 곳과 난 인연이 아닌가보다.
오늘 근로자의 날인데, 샤넬매장이 근로자의 날이라 문을 닫는 다는 것이 화제가 되었다. 이런 것이 화제가 되지 않는, 근로자의 권리, 노동자의 권리가 바로 서는 사회가 되야 한다. 그러니까, 2시간 전 면접 취소 같은 일은 없어야 한다는.. (앗, 나중에 디테일을 보니 이건 샤넬의 입장이 아니었고, 전 샤넬이 아니었고 일부매장 국한이라고.. 어쨌든 노동자의 권리는 보장 받을 필요가 있다.)
오늘 아침 눈을 떴는데 어제보다 더하다.
누운 자리에서 일어나는 일, 앉고 일어나는 일, 이것이 이렇게나 의식이 필요한 일이었는지.. 이런 증상에는 침이 직방이라는 급입수된 정보로 급히 한의원에 갔다.
침대에 눕고 자세를 잡는데 절로 악소리가 나고, 몸을 움직인다는 것이 거의 꿈틀거림에 가까웠다. 이런 것에 익숙한지 간호사는 연신 ‘괜찮아요, 괜찮아요, 천천히 하세요’ 했다.
한의사는 ‘별 일 아니다, 그냥 허리에 감기 같은 거라’했다. 잔뜩 겁먹은 환자를 안도하게 하는 것도 할 일이라 생각하는지 연신 ‘정말 별 거 아니다. 원래 2-3일째 더 아프고 일주일 정도는 간다, 몸이 잠시 쉬어가라 하는 것이다. 잠시 쉬어라’라고 한다. 몸을 움직이는 것 자체가 힘든 그 고통을 너무도 공감해주며.
잠시 쉬어가기엔, 난 면접도 못 갔고,
일정이 줄줄이 있는데.
휴우.
허리가 감기 걸렸단다.
원래 감기란 것이 약을 먹어서 빨리 떨어지는 게 아니라 증상을 완화시켜주는 것이고 앓을 만큼 앓아야 떨어진다고, 알고 있는데.
허리도 그런가보다.
그리고 허리는 정말, 정말 중요하다.
허리 한 부위의 불편함이 전혀 일이라 여기지도 못했던 앉고 일어서는 일, 눕는 일이 일이게 만들고 일상생활 자체를 불편하게 만들다니...
바닥에 앉을 수도 없고, 바닥에 떨어진 물건을 집을 수도 없다. 발에 걸릴 수 있는. 가령 수건 같은 것은 발을 이용해서, 힘겹게나마 집을 수 있지만, 리모컨 같은 것은 집을 수도 없다.
얼마전, 사람은 어떻게든 적응을 한다. 그래서 살아갈 수 있다. 반면에 이 적응이 타성에 젖게 하고 악이 악임을 모르게 하는 무서운 측면도 있다 생각했는데...
아, 이 상태는 도저히 적응이 되지 않는다. 또 적응 될 일이 없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