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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배 Feb 05. 2021

우리집의 영웅.

우리집 이라는 우주선의 캡틴.

오늘도 아이들이 보는 애니메이션 속 레이디버그는 바쁘다. 검은 나비에 지배당해 어둠의 에너지를 내뿜는 악당으로 변해버린 사람들로부터 도시를 구하고 검은 나비를 하얀 나비로 변신시켜 다시 날아가게 해야 한다.

“잘 가, 착한나비야”

도시에서 좌절, 슬픔, 분노를 느끼는 사람이 어디 한둘이랴. 

오늘도 레이디버그는 어두운 감정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들의 숨겨져 있는 선한마음을 찾아주기 위해 동분서주. 바쁘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코로나 덕에 우리 집도, 너무나 타의에 의해 이렇게 서로가 가까웠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막역하게 지내고 있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큰딸은 학교의 재미가 뭔지도 느껴볼 새도 없이, 운동장에서 숨이 턱에 차도록 뛰어보지도 못한 채, 엉덩이만 오동통통 살이 오른 채로 비대면 화상 수업 전문가가 되었다. 초등학교 아이들의 방과 후 수업을 책임지던 남편도 본인의 학생들을 가르치지 못한지 1년이 다 되어가고, 작은 딸은 그저 오늘이 어린이집을 가는 월요일인지 수요일인지 알 필요가 없는 신나는 일요일의 연속이다.

온가족 네 명이 집에서 복닥거리면 즐거움도 배가 되지만, 각자의 고충도 배가 되어 늘어간다. 집이라는 한정 돼있는 공간에서 24시간 내내 함께하니 서로 갑갑한 것도 당연하다. 신체적 활동은 줄었건만 뱃속활동은 언제나 그렇듯이 쉬질 않고 열심히어서 다들 집에서 세끼 꼬박꼬박 챙겨 먹으니 쌀독에 쌀 떨어지는 속도가 산꼭대기에서 눈덩이가 굴러 떨어져 내려오는 속도만큼 빠르다. 콩쥐가 밑 빠진 독에 물을 부을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등골이 싸늘하다. 


“엄마는 왜 하루 종일 요리만 해? 근데 엄마요리는 정말 최고야”라며 병 주고 약도 주는 둘째의 말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할지 모르겠다. 엄마도 요리 말고 하고 싶은 게 있단다, 아가야.


갓난쟁이였을 때부터 유난히 손이 안가고 순했던 아이들은 저들끼리 하루 종일 집에서 나름의 바쁜 일정을 보낸다. 작은방에서 옹기종기 놀다가 안방으로 건너가 우당탕탕, 거실에선 티브이를 보며 깔깔깔깔. 이렇게도 죽이 잘 맞는 친구사이도 없을 정도로 재미지게 놀다가 왜 갑자기, 어느 부분에서 감정이 상하는지.. 한명의 원망 섞인 외침이 시작되면 앙칼진 대꾸가 돌아오고 그렇게 절친 이었던 자매들은 철천지원수가 된다.

여기에 집에 돌아온 아빠와 채널 쟁탈전까지 벌어지면 그야말로 집은 아비규환, 아수라장이 된다. 단전부터 짜증이 솟구치지만 콧구멍에 힘을 주어 입을 앙 다물어본다. 나까지 지분참여를 하게 된다면 그야말로 똥망진창이 될 걸 알고 있기에 우선 각성하기 위한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행동을 시작한다.

리모컨의 소유권을 결정짓고, 넓은 집은 아니지만 각자의 공간으로 떨어트려놓고, 또 다른 놀 거리 혹은 먹거리를 갖다 바쳐 그들 안에 있는 짜증과 집안에 있는 어수선하고 케케한 공기를 밖으로 몰아낸다. 

우리 집의 검은 나비가 사라지고 착한나비가 다시 날아오는 순간이다.


이 집에서 나의 공간은 1,800센티미터의 6인용식탁이 전부이다. 이 좁다면 좁은 공간에서 나는 책도 읽고, 음악을 듣기고 하며, 유튜브를 보며 서툰 손뜨개질도 따라 하고, 프랑스 자수로 그림을 수놓기도 한다. 온종일 집안일과 아이들 뒤치닥거리를 하다보면 식탁의자에 엉덩이 붙이고 앉는 시간도 찰나에 불과하지만 아이들은 그 잠깐도 참아주기가 힘든지, 내가 앉는 게 그들 시야에 들어오기라도 할라치면 퀴즈대회에서 먼저 부저를 누르는 사람들처럼 질세라 재빠르게 앞 다투어 엄마를 불러댄다. 이럴 거면 앉기 전에 불러줄래 아이들아?

하지만 비록 눈떠서 잠드는 순간까지, (물론 그 시간 또한 자의가 아닌 아이들 라이프 스타일에 의한 생활패턴이지만) 아이들과 밀접 접촉하여 지내고 있지만, 단 10분이라도 나에게 집중하다보면 다시 가족들 사이에 뛰어들어, 가정의 평화를 지킬 수 있는 에너지가 충전된다. 이토록 가성비 훌륭한 영웅이 어디 있단 말인가.


아이들에게 엄마란 나란 존재는 아마도 우주인 것 같다. 모르는 단어의 의미부터 종이접기 순서를 모두 척척 알고 있는 척척박사. 열리지 않는 음료수 뚜껑을 열어주고 빠지지 않는 레고를 빼주는 초인적인 힘을 가진 괴력의 소유자. 고장 난 장난감과 리모컨을 제대로 작동되게 고쳐주는 해주는 엔지니어. 그것이 우리 집에서 가지는 엄마란 나의 다른 이름이다. 아마 아이들에게 나는 없어서는 안 될 슈퍼영웅인가보다.

하루아침에 일하던 직장이 사라진 남편에게도 나는 든든한 조력자이다. 끝이 정해져 있지 않은 안갯 속 항해 같은 코로나시국에 배달알바로 사력을 다해 우리가정을 먹여 살리는 남편의 몸과 마음이 지치지 않게, 때에 맞는 위로와 끼니에 맞는 따순밥을 제공해야한다. 비록 밖에서 일하는 동안 몸은 차디찬 겨울바람에 식어가도 나의 따순밥과 위로로 채운 마음은 차가운 현실 앞에서도 좀처럼 식지 않도록.


우리 가족 하나하나 지치지 않게, 어둡고 무거운 기분에 잠식당하지 않도록 어루만져주고 응원해주는 것. 그래서 작은 걸음이라도 희망 앞으로 나아 갈수 있게 해주는 것. 그게 나의 몫이다. 내가 지치지 않아야 우리 가족들도 지치지 않을 수 있다. 언젠가 남편이 그리운 일터로 다시 돌아갈 때까지, 그리고 아이들이 멋진 어른으로 자랄 때 까지 좁은 나의 식탁에서 커피한잔과 책 한권을 무기 삼아 우리 집 이라는 우주선이 블랙홀에 빠지지 않게, 소행성과 충돌하지 않고, 외딴 행성에 불시착하지 않는 순탄한 항해가 될 수 있도록 나의 온 힘을 쏟을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우리 집의 캡틴, 히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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