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 후 불 꺼진 사무실을 나설 때, 실수 하나를 곱씹으며 퇴근길 지하철에 서 있을 때, 문득 이 질문이 튀어나온다.
“왜 나는 혼자서 이렇게까지 버티며 일해야 할까?”
열심히는 하는데, 누군가 대신 짐을 나눠 들어주는 느낌은 없다. 성과는 숫자로 남고, 책임은 개인에게 돌아온다.
그래서 나는 종종 ‘버티는 일’이 곧 ‘혼자 감당하는 일’이라고 단정해버린다.
최근 다시 펼친 생텍쥐베리의 『인간의 대지』는 사막과 하늘을 건너는 비행사들의 이야기였지만, 이상하게도 내 일상과 멀지 않았다.
그들도 극한 속에서 버텼다. 하지만 그 버팀은 결코 혼자의 것이 아니었다. 나는 정말 혼자서 버티고 있는 걸까?
일은 각자 맡는다. 평가는 개인에게 내려온다. 그래서 나는 쉽게 말한다.
“결국 혼자야.”
그런데 돌이켜보면, 내가 무너지지 않았던 날에는 항상 누군가가 있었다. 회의 자리에서 나를 대신해 한 마디 보태준 동료, 내 결정을 믿어준 상사, 말없이 함께 야근을 하던 팀원.
사막 위를 나는 조종사들처럼 각자의 조종석은 따로지만, 같은 노선을 공유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나는 혼자 버틴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보이지 않는 연결 위에 서 있었는지도 모른다.
왜 이렇게까지 버티냐고 묻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그 과정에서 나를 본다.
문제가 터졌을 때 도망치지 않았던 날, 끝까지 책임지겠다고 말했던 순간, 두려웠지만 선택했던 결정들. 편안한 날에는 몰랐던 내 성향과 태도가 위기의 순간에 선명해진다.
사막에 추락한 뒤에야 자신이 누구인지 깨닫는 이야기처럼, 나 역시 장애물 앞에서 나를 확인한다. 버티는 일은 단지 고통이 아니라 나를 시험하고 발견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질문을 조금 바꿔본다. 정말 혼자라면, 정말 아무 의미도 없다면, 나는 왜 이 일을 쉽게 떠나지 못할까?
어쩌면 일은 월급 이상의 무엇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하루를 연결하는 역할, 팀의 결과를 완성하는 한 축, 내 이름으로 책임을 지는 자리.
폭풍 속에서도 우편을 실어 나르던 조종사처럼, 각자의 자리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숭고함이 있다. 기술이나 시스템이 아니라 결국 사람의 태도가 일을 완성한다는 사실.
나는 아마 그 의미를 알기 때문에 오늘도 자리를 지키는 건 아닐까.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간다.
“왜 나는 혼자서 이렇게까지 버티며 일해야 할까?”
이제는 조금 다르게 들린다. 나는 혼자 버티는 것이 아니라, 연결 속에서 버티고 있었다. 버티는 과정에서 나를 발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를 통해 내 일의 의미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인간의 대지 속 인물들이 거친 사막과 하늘을 끝내 사랑하게 된 이유도 아마 그것이었을 것이다.
삶은 거칠다. 일은 때로 사막 같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그곳에서 사람을 만나고, 나를 발견하고, 의미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오늘도 나는 묻는다. 그리고 다시, 자리에 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