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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부규 Feb 08. 2022

돈은 이런  데 쓰는 거야!

부제 : 처제에게 주는 작은 선물

봉급날.

오랜만에 삼겹살 먹으러 우리 동네 작지만 알찬 맛집으로 소문난 제주오겹살 전문 음식점에 가는 길이다.
집에 있는 작은 아들도 불러서 먼저 자리 잡고 있으라 하고 신나게 달렸다.
배도 고프고 소주 한 잔에 삼겹살 한두 점 싸 먹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발걸음은 빨라지고 있었다.
집에 도착해서도 간편 복장으로 옷 갈아입기에 바빴다.
빨리 온다고 왔는데 미리 와 있던 작은 아들은 늦게 왔다고 불평을 늘어놓는다.


미안! 미안! 빨리 온다고 왔는데 늦어버렸네.



오겹살과 함께 각종 고기가 가득 올려져 있던 솥뚜껑엔 벌써 고기가 노릇노릇 먹음직스럽게 익어가고 있었다.

까칠한 아들을 달래 본다.


아들 좋아하는 맥주 하나 시킬까?


저야 좋죠!



까칠이 아들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목소리부터 달라진다.



사장님! 맥주 하나요!!!



내 목소리에도 힘이 들어간다.
오랜만에 한 가족이 모여 그동안 나누지 못했던 이런저런 얘기들을 쏟아냈다.
그중에 하나 기억에 남는 얘기가 있다.

먼저 처제와 동서가 만난 대강의 얘기부터 해야겠다.
똑순이 우리 처제는 첫 번째 결혼에 실패하고 현재의 동서를 만나 결혼식도 하지 않고 둘 사이에 아들 하나 얻어서 잘 살아오고 있다.
처제에게 딸린 딸 하나와 아들 하나. 합해서 모두 다섯 식구다.
식구가 많으니 자연히 돈 들어갈 일도 많다.
결혼식을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아니겠지만 어찌하다 보니 식도 못 올리고 세월만 하염없이 흘러가버린 거겠지 싶다.
처제 나이 오십이 가까워 오니 불현듯 뭔가 빠진 느낌이 들었나 보다.

어느 날 언니인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언니! 나 리마인드 웨딩촬영 한번 해볼까 하는데
너무 비싸네.


하더란다.


사진출처 : pixabay



처제는 그냥 건너뛰려고도 생각해봤지만 또 한편으로는 둘 만의 어떤 의미를 찾고 싶거나 꼭 해보고 싶은 일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나는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작지만 뭔가 도움이 되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도와줄까?


에이! 자존심 상해할 거야!


아니야! 돈은 이런 데 쓰는 거야!



처음엔 아내도 극구 반대하더니 다음 날 생각이 바뀌었는지


그럼 자존심 안 상하는 범위 내에서만 도와주겠다고 하면
거절하지 않을 것 같은데...



아내가 처제한테 전화를 걸어 우리 생각을 얘기했더니 처제가 고마워했단다.
그럼 됐다.
그렇잖아도 심적으로 부담을 가지면서 생각하고 생각했을 텐데 받아주니 나도 고맙다.

한참 뒤 처제로부터 전화가 왔다.


형부! 가슴 뭉클하게 하시네요.


큰 것도 아닌데 뭘? 새해 선물이라고 생각해.


고맙다는 말씀드리고 싶어서 전화드렸어요.



전화기 너머로 입술을 꾹 다물고 있을 처제 얼굴이 떠오르며 오히려 내가 가슴 뭉클해지면서 뭔가 뜨거운 게 밀려 올라왔다.
하마터면 울 뻔했다.

새삼 사는 게 뭔지 생각해보게 하는 짧은 순간이었다.
얼마나 오래 산다고 도움을 줄 수 있을 때 도와야지.
꼭 필요한 때에 가치 있게 쓸 수 있는 기회가 또 있다면 이 일을 생각하며 또 할 수 있겠지.



돈은 내가 주인이 아니라고 생각만 하면 필요한 일이 있을 때 그쪽으로 물 흐르듯 흘러갈 수 있다.
사진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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