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화 내용은 경상도 사투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 사람, 삶, 인연, 첫사랑...
이런 단어들이 서로 연결되어 인생을 더 풍요롭게 하는구나.
사람에게 추억이 없다면 얼마나 무미건조할까?
설렘과 두근거림으로 가득한 나날들이 있었던 옛날을 회상하다 보면 촌스럽고 귀여웠던 그 모습들에서 피식 웃음이 나오기도 할 것이고, 잔잔한 미소를 띠기도 하며 마음이 따뜻해질 것이다.
어느 일요일 오전 11시경 평소와 같이 아침 겸 점심을 먹고
도서관과 대한문고에서 신간 서적과 책 몇 권을 대출해 오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거제도 이모한테서 전화가 왔다.
걱정 반 궁금증 반.
이모의 전화기 목소리가 나지막이 떨리고 있었다.
경규야! 옛날에 니 어릴 때~에 느그집(너네집)에서 하숙하던 '수찬이 삼춘(삼촌)' 있었다 아이가~~~. 철이 삼춘하고 친구인 사람 말이다.
어지(어제) 50년 만에 전화가 왔다 아이가!!!
하모(그래)! 마이(많이) 떨리더라.
"엄청시리 오래돼서~어 무신(무슨) 말을 해야 될지 모리것(모르겠)더라.
그쪽에서 먼저
“내 목소리 알아보것십니꺼?”
“잘 모리것십니더”
“오빠는 지 목소리 알아보것십니꺼?”
“너무 오래돼서~어 몬(못) 알아보것십니더.”
이모는 50년 세월을 거슬러 20대 초반 처녀시절로 달려가고 있었다.
이모는 이모부에게든 자식들에게든 어느 누구에게도 얘기할 수 없는 이야기를 떨리는 목소리로 쏟아내고 있었다.
이런 목소리와 수화기 너머로 보일 듯 말 듯 상상되는 설렘으로 가득 찬 이모 모습은 처음 본다.
마음속 깊이 묻어두고 살아왔건만 50년이 지난 이제는 무슨 용기가 생긴 걸까?
이제는 들키더라도 딱히 큰 허물로 여겨지지 않을 나이인 걸까?
어릴 적 그분에 대한 내 기억은 거의 남아있지 않지만 사진 속 얼굴에서는 차분하고 후덕한 성품의 소유자로 보인다.
말 수가 적고 남에게 싫은 소리 절대 하지 않을 성격이라고 얼굴에 쓰여 있다.
얼마 전에는 거제도 옥녀봉에 친구들하고 등산 왔다가
산꼭대기에 앉아
우리 집 쪽을 한참 동안 내려다보고 있었다더라.
내려와서 우리 집에 찾아왔시모 밥이라도 해줬시낀데 와(왜) 안 왔시꼬?
다음에 한 번 만나기로 했다. 니도 함 만나볼래?
아이고, 아이다! 됐다마!
이모는 내심 받아보고 싶지만 질색하는 척한다.
혼자 몰래 옛 추억을 되살려볼 수 있도록 편집한 사진을 얼른 보내드렸다.
그분은 친척도 아니고 외가 쪽 오촌의 친구로서 사진 속 옛날 얼굴만 기억나는 가운데 좋은 이미지만 남아 있다.
언제 만나게 될지 모르지만 새로운 추억을 더듬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사진 속 대학생 청년이 69세의 할아버지로 변해서 나타날 그날의 광경을 보고 싶은 마음이 솟구친다.
2019년 겨울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 이름, 지명은 가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