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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스러운 자숙 / 권분자

산문

by 권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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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스러운 자숙

권분자



오랜만에 아파트 놀이터로 나왔다. 내가 사는 아파트 놀이터에는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들리지 않는다. 젊은 사람들보다 나이든 사람이 많이 입주해 있어서이다. 그래서인지 말이 놀이터이지 이곳은 언제나 한적하고 조용하다.

어느새 3월 중순이다. 놀이터에는 삐죽삐죽 연초록 잎을 틔운 나무들이 빼곡하다. 나는 나무의 종<種>과 새순을 살피며 여기저기를 돌아보았다. 해마다 마주하는 봄 풍경인데도' 세상에! 혹은 반가워라'를 연발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한 서너 달 바깥풍경을 잊고 지냈기 때문이다. 나는 쥐똥나무 울타리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 쥐똥나무는 내가 다가가 앉자 움찔하며 까만 눈을 굴리며 나를 살폈다. 나는 쥐똥나무의 댕글댕글한 눈길을 애써 외면하며 놀이터 귀퉁이에 돋은 연초록 풀포기를 바라봤다. 보도블록 사각 틀 사이사이에는 소복소복 쑥이 돋아나 있었다. 쑥은 마치 보도블록 틈새를 따박따박 메우며 비밀 일기라도 써놓은 듯했다. 일기장의 칸칸에 빼곡하게 쓰여진 글자들……, 쥐똥나무도 나도 까만 동공을 굴리며 글자를 한참이나 읽고 또 읽었다. 쑥은 어떻게 알았던 걸까. 몇 년 전부터 걸을 때마다 발목 통증으로 아무에게나 욕설을 퍼붓거나 큰 소리로 울고 싶었다는 사실을…, 보도블록은 백일 동안 쓴 내 병상 일기를 펼쳐 놓은 것 같았다.

주부로 살면서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지켜내기 위해 악착을 떨며 살았다. 얼마나 뛰어다녔으면 발목마저 그렇게 되었을까. 나는 바쁘게 다니다가 습관적으로 자주 발목을 접질렸다. 그로 인해 발목은 마치 뿌리 헐렁해진 쥐똥나무 같았다. 통증을 참아가며 미루고 미루다가 더 이상 참을 수 없던 어느 날, 절룩거리며 재활병원으로 들어갔다. 그동안 힘겨웠던 나의 일화<逸話>를 재활병원 의사에게 내보였다. MRI로 발목을 들여다 본 의사는 치료를 하지 않은 채 오랫동안 사용만 강행해온 내력이 고스란히 나타나 있다고 말했다. 겁먹은 내 표정에는 비만의 체구로 고단했던 슬픔이 서렸다. 체중에 눌리고 눌린 뼈가 24도나 벌어져있다는 진단이었다. 의사는 근육 무너진 발목뼈에 나사 박는 수술을 권했고, 나는 어쩔 수 없이 수술의 고통을 감당해내야하는 곤욕을 치루어내야 했다.

입원실에서는 링거에 항생제가 든 주사바늘을 하루 세 번씩 넣곤 했는데 그 상황에서마저 나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불리한 몸이라는 걸 알았다. 3일에 한 번씩 링거바늘을 바꿀 때면 곤욕을 치루었기 때문이다. 혈관이 약해서라며 간호사는 대여섯 번씩 주사바늘을 허탕으로 찔러댔다. 경험 많은 간호사가 올 때까지 피를 흘리며 기다리기 일쑤였다. 그래! 오십을 살아왔으니 이 정도 아픔은 신세 한탄에도 못 미칠지 모른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던 나는 쑥이 써놓은 글자를 한웅큼 훑어 두 손으로 비볐다. 그리고는 상처 자국이 선명한 발목에 새파랗게 쑥물이 들도록 발라댔다. 그리고는 짧은 목을 길게 빼고 윤기 없어 푸시시한 머리카락을 이리저리 흔들었다. 내 진저리를 지켜보던 쑥은 그까짓 일은 일도 아니라며, 언 땅을 뚫고 나온 성찰의 입술로 자꾸만 삐죽거렸다. 나는 나의 쑥대머리에 스스로 알밤을 먹이듯 땅바닥의 내 그림자를 발로 툭툭 찼다. 그리고는 쥐 죽은 듯이 참았던 눈물을 울컥, 쏟아냈다. 보도블록 귀퉁이에는 내 눈물이 한없이 오글거렸다. 언제부턴가 모든 화풀이를 글자로 풀어내는 버릇이 생긴 나는 절름거리는 발목으로 아파트 놀이터에나 겨우 쏘다니는 쑥스러운 말줄임표가 되고 말았으니…. 성질 괄괄하다 조용해진 숙맥의 내가 이제 겨우 나 한 사람의 마음만이라도 제대로 읽을 줄 아는 자숙의 글쓰기나 해야겠는데…,

내가 지나다니는 곳곳마다 재바른 발로 총총 길 틔워 주는 봄바람 트레이너가 나를 향해 속삭였다. ‘제발 나긋나긋 휘어지라고’ 그리고는 정성스럽게 쥐똥나무 사이에 서 있는 나에게 발목 운동을 시켜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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