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 불청객
**두열이네 집**
그녀는 여기저기 눈치를 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독립군들을 도와··· 전투에 참여했습니다. 저희는··· 극구··· 말렸는데···.”
“다들 미쳤구나! 이 마을은 통째로 불살라버려야겠구나!”
“총을 엄청··· 잘 쏜 사내도··· 있다 들었습니다···”
“흥! 촌놈들이 얼마나 쏜다고.”
“어랑촌에서···”
그녀의 입 밖으로 나온 ‘어랑촌’이란 단어에 병사들은 술렁이며 서로를 바라봤다. 두열 아범에게 총을 겨누고 있던 병사는 총으로 그를 툭툭 쳤다.
“그놈이 사는 곳으로 안내하면 너희 가족은 특별히 살려주마.”
두열 아범은 얼이 빠진 표정으로 아내와 일본 병사를 번갈아 바라봤다. 그의 대답이 빠르게 나오지 않자 상대는 개머리판으로 그의 머리를 세게 내려쳤다.
“뭘 망설이느냐. 다 죽고픈 게냐?”
머리에 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진 그는 계속 고민을 했다. 그러나 어찌해야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을지 다른 방법이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아직 정신을 못 차렸구나. 니 애새끼 목숨이 아깝지 않은 모양이구나?”
일본 병사는 방 안에서 벌벌 떨고 있는 아들에게 다가가 총구를 머리에 댔다. 이를 본 아버지는 혼비백산이 되어 그쪽으로 네 발로 뛰어갔다.
“시키는 건 뭐든 다 하겠습니다. 제발 처자식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제발···”
“알았으니 얼른 앞장서라. 시간 끌지 말고. 네 가족 생각한다면 허튼수작도 말고.”
**청산리 계곡 독립군 임시 주둔지**
“고생하셨소 이 장군. 적들의 동향은 좀 어떤가요?”
적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봉우리 꼭대기에 올라 망원경으로 관찰을 하고 돌아오는 범석과 마주친 서일 총사령관이 여유롭게 물었다.
“예상대로 적은 돌아간 듯합니다. 사령관님.”
“역시 그렇군요. 다행이네요. 이제 저희도 내려가서 새로운 터전을 알아봐야겠네요.”
“저희가 있을 만한 곳이 과연 있을까요? 일본 놈들이 중국까지 압박해서 계속 쫓아내고 있는 실정이라···”
“이 주변에서 주민들과 터를 잘 만들어봐야죠. 이번 전쟁에서도 많이 도와주셨고, 지리적으로나 우리에게 중요한 위치니까요.”
대화를 나누며 주변을 걷던 그들은 사람들이 모여서 웅성대는 것을 보고 호기심과 걱정에 빠른 걸음으로 이동했다.
“이렇게 잔인할 수가 있냐고. 천하의 나쁜 놈들.”
“아무 죄 없는 사람들인데, 어쩜 그럴 수 있지?”
그들의 대화를 들은 총사령관이 무언가 잘못 돌아가고 있음을 직감하고 물었다.
“혹시 이게 무슨 말인가요?”
“아, 사령관님.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본 놈들이 패전하고 산으로 내려가서 민간인들을 보이는 족족 죽이고 있다 합니다.”
“네?”
그 말을 듣자마자 범석은 산 아래로 정신없이 뛰쳐갔다.
‘안돼··· 형님이 위험해!!’
**형원의 집**
“우와! 누나 이거 뭐야?”
빨래를 하는 누나의 손가락에서 이전에 본 적 없던 은가락지를 발견한 형원은 신기해하며 관심을 가졌다.
“예쁘지? 며칠 전에 엄마가 주셨어. 결혼하실 때 받으신 거래.”
“와! 근데 왜 한 번도 못 봤지?”
“나는 이사 와서 짐 정리 도우면서 봤었어. 근데 얼마 전에 미안하다고 주시더라고.”
“뭐가 미안하신데?”
“넌 몰라도 돼, 인마!”
혜원은 그의 머리를 콩 쥐어박으면서 씁쓸하게 웃어 보였다. 그녀는 어머니가 동생만 학교에 보내는 거에 미안해하고 계신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머니가 그 미안함에 주신 가락지를 마음 편히 받기로 했다.
자신이 이를 잘 끼고 다니고 좋아하는 것을 보면 그녀의 미안함도 좀 덜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앞뒤 사정 하나도 모르는 동생이 속도 모르고 자꾸 질문을 하니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치··· 알려주기 싫으면 안 알려주면 되지 뭘 때리기까지 하냐?”
“아프게 때리지도 않았구만, 엄살은···”
“아픈 것보다 머리 때리면 기분이 좀 그렇다고···”
“으이구. 그러세요? 죄송합니다 동생님~”
뾰루퉁한 표정을 지으며 형원이 누나에게 투덜댔다. 동생의 그런 모습이 그녀에겐 마냥 귀여웠다.
“미안하면 나 그거 잠깐만 보여줘.”
“자! 여기 봐~”
“예쁘다. 빼서 봐도 돼?”
“그건 안 돼. 그러다 떨어뜨리면 어쩌려고?”
“내가 뭐 앤가? 안 떨어뜨릴게~ 한 번만~”
동생의 간곡한 부탁에 그녀는 조금 찝찝했지만 반지를 빼서 그의 손에 건넸다.
“귀한 거니까 안 떨어지게 조심해!”
“응 걱정 마. 와! 부럽다.”
형원은 가락지를 이리저리 보더니 자신의 손가락에 끼웠다 뺐다 하며 맞는 손가락을 찾았다. 그러다 엄지에 넣었을 때 사이즈가 딱 맞는 걸 보고는 갖고 싶단 욕심에 장난기가 발동했다.
그는 그녀를 흘깃 보더니 냅다 집 밖으로 뛰었다. 불안해하던 그녀는 그가 도망가는 걸 보자마자 따라 뛰었다.
“야! 거기 안 서! 잡히기만 해 봐 아주!”
아까부터 대청마루에서 청소를 하며 애들의 대화를 보던 엄마는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미소 지었다. 그러다 잠시 후 누나를 잘 따돌렸는지 대문으로 뛰어들어오는 아들을 봤다.
“누나는?”
“엄마. 쉿!”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손가락을 입술에 대고 엄마한테 비밀을 지켜달란 시늉을 한 뒤, 그는 대청마루 밑으로 기어 들어가 숨었다.
“야··· 옷···”
흙먼지 가득한 곳에 들어가는 아들이 못마땅한 그녀였지만, 이미 지저분해진 옷 말해도 의미가 없다고 체념한 뒤 그녀는 한마디를 하려다 삼켰다.
그리고 얼마 후 그녀는 딸이 걸어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입술로 쭈빗 아들이 숨은 위치를 알려줬다. 그러나 그녀는 그 행동을 바로 멈췄다.
일본 군복을 입은 사람들 여럿과 두열이네 아빠가 딸의 뒤를 따라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녀는 잠깐 당황해서 얼어붙었지만, 겁먹었을 딸에게 맨발로 달려가 안아줬다. 혜원은 엄마를 안자마자 꾹 참고 있던 눈물을 터뜨렸다.
“여기가 맞느냐?”
“······..”
군인의 강압적인 물음에 두열 아범은 마치 죄를 지은 듯 형원 엄마를 쳐다보지도 못하고 고개만 숙이고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일 병사는 화가 나 군홧발로 그를 세게 찼다.
“왜 여기까지 와서 아무 말이 없느냐!”
“헉··· 윽···”
맞은 즉시 바닥에 쓰러진 그를 병사는 또다시 발로 찼다. 한편 대청마루 밑에 숨어 아저씨가 맞고 있는 걸 보고 있던 형원은 이 상황이 무서워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계속 숨어 있었다.
‘무슨 일이지? 일본 놈들이 우리 집을 왜 온 거지···?’
그때, 대문으로 도모유키 소장이 들어왔다. 그가 들어오자마자 이곳의 분위기가 얼어붙었고, 두열의 아비를 발로 차던 병사 포함 안에 있던 군인들은 그를 보자마자 일제히 경례를 했다.
거만하면서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인사를 무시한 그는 병사들 앞에 다가가 물었다.
“이 집이 맞느냐?”
“네, 그런 것 같습니다.”
그는 차갑게 무릎을 꿇고 있는 두열이네를 내려보며 말했다.
“이 집이 맞느냐?”
“네··· 맞···습니다···”
상대의 냉혹한 아우라에 겁을 먹은 두열 아범은 덜덜 떨며 대답했다. 답을 들은 도모유키 소장은 고개를 까딱이며 한 병사에게 방으로 들어가라 지시했다.
소장의 눈짓을 받은 그 병사는 신발도 벗지 않고 즉시 방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태석은 방으로 들어간 일본 병사의 뒤에서 그의 머리에 총을 겨눈 채 방에서 조심스럽게 나왔다.
“허튼 수작 하지 마라. 그럼 이 놈 대갈통은 바로 나가갈 거다. 내 가족부터 풀어줘라.”
마당에 있던 병사들이 태석이 나오자마다 그를 경계하며 총을 겨눴다. 그러나 혼자 가만히 태석을 뚫어져라 쳐다본 소장이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맞네, 저놈.”
그러더니 아무런 고민 없이 인질로 잡힌 병사를 총으로 쐈다. 태석은 잠깐 놀랐으나 바로 그에게 총을 겨눴고, 도모유키는 바로 혜원에게 총구를 돌렸다.
간도의 작은 집에 총들이 이리저리 섞여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형원은 땀을 뻘뻘 흘리며 어찌해야 할지 혼돈에 빠져 있었다. 그는 상황이 어찌 돌아가는지 조금이라도 보기 위해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그때, 그는 무릎을 꿇고 있던 두열이네 아버지와 눈이 마주쳤고, 순간 소름이 돋아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말았다. 그의 얼굴은 멍투성이에 피범벅이었고, 초점을 잃은 눈으로 형원을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독립운동가 인물 평전]
안무 (安武, 1884~1965)
평안북도 정주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 일찍이 신교육 운동에 뛰어들어 서우학회를 조직했고, 1910년대에는 북간도로 망명해 독립군을 양성하는 활동을 펼쳤다. 1919년 3·1운동 이후에는 서로군정서의 부관장으로 활동하며 무장 독립운동을 주도했고, 참의부 설립에도 기여하였다.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지하며 독립운동을 이어갔으며, 해방 이후에는 조국으로 돌아와 교육자로서 후진 양성에 힘썼다. 1965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
*출처 : 국가보훈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독립유공자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