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록]1946년, 한국이 일본을 점령했다

73화 - 제안

by 팬터피


**형원의 집**


간도의 작은 집에 총들이 이리저리 섞여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형원은 땀을 뻘뻘 흘리며 어찌해야 할지 혼돈에 빠져 있었다. 그는 상황이 어찌 돌아가는지 조금이라도 보기 위해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그때, 그는 무릎을 꿇고 있던 두열이네 아버지와 눈이 마주쳤고, 순간 소름이 돋아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말았다. 그의 얼굴은 멍투성이에 피범벅이었고, 초점을 잃은 눈으로 형원을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지. 날 본 건가? 그나저나 밖은 무슨 상황인 거지···’


두열이네 아저씨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뒤로 물러선 형원은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걱정과 두려움, 거기에 여기 숨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초라함과 비참함 등···


그는 비 맞은 강아지 마냥 벌벌 떨면서도 귀를 활짝 열어 마당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확인하려 애썼다. 자꾸 눈물이 왈칵 터져 나올 것만 같았지만, 그는 최대한 참고 또 참았다.


“솜씨가 좋던데. 원래 군인이었던 건가요?”


“사람을 잘못 보신 듯합니다. 전 그냥 농사꾼일 뿐입니다.”


도모유키 소장은 총을 내려놓고 주변을 걸었다. 그의 움직임에 따라 태석의 총구 역시 따라갔고, 마당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둘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상황이 이렇게 된 건 우선 죄송합니다. 다들 총 내려놓거라.”


그의 지시에 눈치를 보며 쭈뼛대던 군인들은 그가 섬뜩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상대를 향해 겨눴던 총을 거뒀다. 그러자 아내와 딸이 태석에게 뛰어가 안겼고, 그는 총구를 적에게 겨눈 채 겁에 질린 그녀들을 토닥였다.


“걱정 마. 괜찮을 거야.”


“걱정 마십쇼. 제 작은 부탁만 들어주신다면 아무 일 없을 겁니다.”


“네. 그러시다면, 넓은 아량으로 하찮은 저희 같은 서민들은 그냥 살려주실 순 없으실까요?”


“아. 그건 안 되죠. 반란군들과 이번 전쟁 때 이 지역 분들이 꽤나 도움을 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대로 갔다간 그들의 세력만 더 키워주는 꼴이 될 텐데 그럴 순 없죠.”


“그럼 어쩔 생각이시죠?”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소장은 한 병사의 가슴 쪽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한 모금 깊이 빨아들인 후 뿌연 연기를 내뱉은 뒤 그는 대답을 시작했다.


“당연히 다 불태워 없애야죠. 잘 생각해 보세요. 그 반란군들이 여기 와서 댁들을 도왔나요? 근데 당신네들은 그들을 도왔죠. 그러니 벌을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기 있는 사람들은 그냥 나라를 잃은 사람들입니다. 한 번만 선처해 주실 순 없겠습니까?”


“제 작은 부탁 하나만 들어주신다면, 그렇게 해볼까 하는데···.?”


“어떤 걸까요? 말씀만 주시면 제가 따르겠습니다.”


물고 있던 담배를 또다시 들이마신 도모유키는 이를 손가락으로 튕겨 마당에 버렸다. 형원은 자신의 앞쪽에 떨어진 담배꽁초를 봤다. 그는 숨어서 둘의 대화 내용을 듣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총을 제법 쏘시던데, 저희 쪽에 합류하면 이전 악연은 다 잊고, 이 마을도 그냥 두고 떠나겠습니다. 제 제안이 어떻습니까?”


이 말에 형원은 놀라서 욕이 나올까 봐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러나 놀란 건 그 혼자만이 아니었다. 이야기를 듣던 군인들도, 두열 아범도 깜짝 놀라 도모유키 소장을 쳐다봤다.


“말씀드렸지만 저는 일개 농사꾼일 뿐입니다. 죄송하지만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아, 그런가요? 그러시다면, 저도 말씀드렸다시피, 여기 분들을 비롯해 이 마을 모두를 불사르고 가야겠네요.”


입을 삐쭉 내밀며 자신은 상대의 승낙이 절실하지 않다는 듯 도모유키는 답했다. 그러자 이를 바닥에 무릎을 꿇고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두열의 아버지가 태석을 향해 간곡히 부탁했다.


“최 씨, 여기 있는 사람들 위해서라도 다시 생각해 주면 안 되겠나? 고추밭 앞에 박 씨네는 이제 며칠 후면 애가 나올 텐데···. 그리고 언덕 넘어 수진이네는 여기저기 일할 때마다 얼마나 잘 도와주나. 내가··· 이 상황에 염치없지만··· 제발 한 번만··· 응?”


간곡한 읍소를 들은 태석은 마음이 심란해졌다. 자신의 선택으로 가족을 포함해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은 태규 형을 죽인 원수의 나라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나라를 지키라 주인 어르신께 배워왔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 나라를 향해 총칼을 겨누고 살 자신이 없었다.


“오해가 있으십니다. 저는 진짜 그런 인물이 못 됩니다. 제발 저희를 그냥 살려···”


탕!


태석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도모유키는 두열 아비의 무릎에 총을 한 발 쐈다. 그 소리에 태석은 움찔했고, 자신의 처와 아내를 더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상대를 향해 겨냥하고 있던 총을 다시 한번 고쳐 들었다.


“아! 지겨우니까 똑같은 이야기는 그만하시고요. 두 번 묻지 않습니다. 어쩌시겠어요? 이쁜 딸, 좋은 학교도 다니고. 좋은 기회일 텐데~”


총에 맞아 고통스러워하는 두열의 아비를 보며 태석은 생각에 잠겼다. 그는 혼란스러움에 두통이 심해져 잠시 눈을 꾹 감았다가 떴다.


‘우선은 눈 딱 감고 이 상황을 벗어나자. 그래야 마을 사람들도 살리고, 내 가족도 지킬 수 있다.’


그리고 잠시 고개를 돌려 뒤에 있는 아내를 바라봤다. 그녀는 어떤 선택을 하든 그를 따르겠다는 의미로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따라가겠습니다. 그러니 약속은 꼭 지켜주십쇼.”


“하하하하! 역시 사격 실력만큼이나 성격도 시원시원하시네!”


아버지의 결정에 형원은 큰 실망을 했다. 그러나 가족을 위한 결정임을 알고 있었기에 분노가 일진 않았다. 어린 나이에 이런 순간을 맞다 보니 그는 이미 많이 체념한 상태였다. 그는 무거운 상황이 다 끝났으니 이제 그만 나갈까 하고 몸을 꿈틀거렸다.


“자. 이제 제 부하이니 첫 번째 명령을 내리겠소. 지금 들고 있는 총으로 저 자를 쏘시오.”


“네? 방금 전에 마을 사람들을 살려주신다 하지 않으셨습니까?”


“다른 사람들은 진짜 살려주겠소. 근데 저 자는 당신을 배신하고 여기까지 와서 당신 가족을 위험하게 만든 장본인이잖소. 당신은 화도 안 나오?”


“네, 괜찮습니다. 덕분에 마을 사람들 목숨도 살리고 다행이지 않습니까?”


“저 놈만 쏘시오. 그래야 내가 당신을 믿을 수 있을 것 같소. 그쪽이 딴생각을 품고 내 제안에 승낙했는지 믿을 방도가 따로 없질 않소이까.”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도모유키는 태석에게 선택을 제안했다. 난감해진 태석은 하늘을 한 번 쳐다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고, 그는 천천히 두열이네를 향해 한 걸음씩 발을 놓아갔다.


“최 씨···. 죄책감 가지지 말게. 난 우리 가족만 지킬 수 있다면 괜찮으니··· 이렇게 돼서 미안했네. 맘 편히 쏘게.”


무릎에 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져 있던 그는 체념한 듯 땅에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아버지의 발이 그를 향해 가고 있는 걸 본 형원은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뛰는 심장이 제어가 안 돼 호흡조차 잘 안 될 지경이었다.


겨우 크게 숨을 한 번 내쉴 때쯤 그의 아버지는 쓰러져 있는 불쌍한 동네 주민의 머리에 총을 겨누는 게 보였다. 그리고 총을 든 손이 심하게 떨리고 있는 것도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제가··· 전쟁에··· 안 간다고 했잖아요··· 하아···.”


그의 눈물이 총을 쥔 손등에 떨어졌다. 그리고 그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뒤 방아쇠를 당겼다.



[독립운동가 인물 평전]


박동완 (朴東完, 1887~1954)


경상남도 진주 출신의 독립운동가로 1919년 3·1운동에 참가한 뒤 만주에서 독립군 양성 및 무장투쟁에 참여했다. 그는 대한통군부, 의군부 등 항일단체에서 활동하며 주로 군사훈련과 군자금 모집을 맡았다. 1920년대에는 임시정부 산하의 조직과도 연계하여 항일 무장투쟁을 이어갔고, 광복 이후에도 민족 지도자로 존경받았다. 정부는 그의 공로를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독립운동사자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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