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 끝나지 않은 전쟁
**형원의 마을**
어랑촌에서 전투를 마친 후, 태석은 총상을 빠르게 처리한 뒤 마을 사람들의 부축을 받아 마을로 내려왔다. 사람들은 겁쟁이로만 생각했던 그의 신들린 사격 솜씨에 연신 칭찬 일색이었다.
“아니, 최 씨는 간도에 오기 전에 군인이었나? 어쩜 그렇게 백발백중인가?”
“저 혼자 맞춘 게 아닌데 민망하네요.”
“그 어린 장군과는 형제지간인가? 계속 형님 하던데.”
“그냥 어릴 때 잠깐 친분이 있어서 그렇게 부른 것뿐입니다. 그나저나 산세가 험해 혼자 내려오기도 힘드셨을 텐데 이렇게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반나절 이상의 시간을 내려와 그들은 집에 도착했다. 여기저기 피와 흙이 범벅이 되어 다리까지 절뚝거리는 아버지가 집으로 들어오는 걸 본 형원은 왈칵 눈물을 흘렸다.
“어머나, 여보, 이게 무슨 일이에요. 총에 맞으신 거예요?”
“걱정 말아요. 난 괜찮소이다.”
형원의 엄마 역시 남편을 보자마자 놀라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런 그녀를 태석은 온화한 미소로 안심시켰다.
“제수씨, 처음부터 전쟁터에 가자고 제가 꼬셨는데, 이렇게 돼서 정말 면목이 없네요···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이렇게 잘 살아 돌아왔으면 된 거죠. 두열 아빠도 꼴이 말이 아니시네요. 물이라도 드릴까요?”
“아닙니다. 저도 이제 집에 가야죠.”
그렇게 인사하고 나가려다 그는 고개를 돌려 형원을 바라봤다.
“형원아, 거짓말이 아니라, 너희 아빠 덕에 전쟁에서 이겼어. 아빠가 총을 쏠 때마다 아주 먼 거리에 있는 적들을 맞춰서 질 뻔한 전투에서 승리했어!”
“네? 진짜요?”
“그럼 그럼. 진짜지. 아저씨도 보고 깜짝 놀랐다니까! 김좌진 장군님이 고맙다고 인사도 하셨는걸! 형원이는 좋겠다~ 이렇게 멋진 아빠가 있어서~”
그 말을 듣고 형원은 아빠를 쳐다봤다. 둘이 눈이 마주쳤고 그는 아빠에게 뛰어가 안겼다.
“아빠, 미안해요. 괜히 제가 투정 부려서 이렇게 다치시고···”
“아니야. 아빠도 나라와 삼촌을 지키고 싶어서 다녀온 거야. 너 때문 아니니까 자책하지 마.”
석양이 어눅하게 저무는 언덕 속에서 아버지는 울고 있는 아들의 등을 토닥이며 그를 달래주었다.
**청산리**
어랑촌의 전투 이후 백두산에서 독립군들과 일본군은 두세 번의 전투를 더 치렀다. 일본군이 습격을 하는 위험한 상황도 있었지만, 정신력으로 무장한 독립군은 청산리 계곡에서 펼쳐진 모든 싸움에서 승전보를 울렸다.
이길 줄 알았던 어랑촌에서 큰 패배 이후 사기가 떨어진 일본군은 다른 전투에서도 계속 패하자 이 계곡이 지긋지긋해졌다. 도모유키 역시 이런 분위기로 계속 적과 맞붙는 것은 긍정적이지 않다고 생각했다.
“소장님, 부르셨습니까?”
“여기서 더 이상 전투를 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 같다. 그만 철수하고 산을 내려간다.”
“그냥 가셔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저놈들을 저대로 보내면 이후 계속 저희를 귀찮게 할 것입니다.”
도모유키는 뚜벅뚜벅 중령에게 다가가 어깨를 툭 잡더니 그의 귀에 가까이 얼굴을 밀고 말했다.
“난 그냥 간다고 말한 적 없는데?”
그 말을 들은 중령은 무슨 말인지 영문을 알 수 없어 의문 가득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두열이네 집**
막 해가 뜬 이른 아침, 두열이네는 온 가족이 모여 식사 중이었다. 형원의 친구인 두열이는 몇 번이고 들었던 어랑촌 전투에서 있었던 일들을 아버지에게 또 물었다.
“진짜 형원이네 아버지가 그렇게 다 맞췄어요?”
“그렇다니까. 넌 애비 말을 뭘로 듣니? 아니, 쏘는 족족 일본 놈들이 픽픽 쓰러지는데, 한두 번 쏴본 솜씨가 아니더라고!”
“원래 독립군이셨던 거 아니에요? 홍범도 장군님과도 아는 사이셨다면서요?”
밥을 먹다 잠깐 멈춰 아들을 한심하게 쳐다본 그의 아비는 한숨을 푹 쉬었다.
“넌 누굴 닮아 이리도 머리가 나쁘니··· 백두산 호랑이 홍 장군님이 아니라 이범석 장군님이라고 몇 번이나 말했냐··· 최 씨랑 둘이 형 동생하더라고~ 장군들 중 젤로 어리신데 그분도 사격 솜씨가 장난 아니시더라고!”
“그럼 둘이 형제 아니에요?”
두열의 아비는 숟가락으로 밥을 뜨다 말고 건너편에 앉은 아들의 머리를 숟가락으로 툭 때렸다.
“아야···”
“이 무식한 놈아··· 이 친구 형원이가 이형원이냐? 성이 다른데 무슨 형제야!”
“아빠 닮아 무식한 걸 어쩌라고···”
“뭐라고? 이놈이!”
이때 밖에서 우당탕 소리가 들렸다. 두열 아범은 급히 방문을 열고 마당으로 뛰쳐나갔다.
“여보!”
“허튼수작 부리지 마라. 죽기 싫지 않다면!”
마당에는 일본군 열댓이 그의 아내에게 총을 겨누고 있었다. 그는 이를 보자마자 바닥에 납작 엎드려 놈들에게 절을 했다.
“아이고 아이고~ 선생님들. 이렇게 누추한 곳까지는 어인 일이십니까? 별로 가진 건 없지만 탈탈 털어 다 가져가시고, 제발 저희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
“하하하. 우리를 무슨 거지로 아는 거냐?”
병사 하나가 그에게 다가와 그의 머리를 툭툭 발로 찼다. 그럴수록 그는 더욱 넙죽 엎드렸다.
“저희 형님이 뤼순의 관동군 사령부에서 선생님들을 돕고 계십니다. 높은 자리는 아니지만 저희 가족은 모두 선생님들 편입니다.”
그 말을 들은 병사가 입을 삐쭉 내밀며 비웃듯 말했다.
“음··· 그러냐? 그럼 혹시 그 형님에게 비밀 이야기라도 들은 거 있느냐? 만약 그렇다면 내가 너희 가족은 특별히 살려주마.”
“어··· 저··· 그게···”
“멍청하구나. 내가 그딴 거에 속을 거라 생각한 거냐?”
“아··· 아닙니다··· 그게 갑자기 생각이 잘 안 나서···”
한심한 듯 상대를 바라보던 일본 병사는 귀찮은 듯 귀를 한 번 긁적이더니 총을 들어 그에게 총을 겨눴다.
“한심한 놈! 적당히 해라.”
“제발 한 번만 살려주십시오. 아니면 저희 가족들만이라도··· 제발 부탁드립니다.”
무릎을 꿇고 일본군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싹싹 빌던 그는 상대가 방아쇠를 당기려 하자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제가 아는 게 있는데···”
그의 아내가 손을 들고 덜덜 떨며 급히 말을 꺼내자 일본 병사는 그녀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녀의 남편 역시도 불안해하며 무릎을 꿇은 채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그녀는 여기저기 눈치를 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독립군들을 도와··· 전투에 참여했습니다. 저희는··· 극구··· 말렸는데···”
“다들 미쳤구나! 이 마을은 통째로 불살라버려야겠구나!”
“총을 엄청··· 잘 쏜 사내도··· 있다 들었습니다···”
“흥! 촌놈들이 얼마나 쏜다고.”
“어랑촌에서···”
그녀의 입 밖으로 나온 ‘어랑촌’이란 단어에 병사들은 술렁이며 서로를 바라봤다. 두열 아범에게 총을 겨누고 있던 병사는 총으로 그를 툭툭 쳤다.
“그놈이 사는 곳으로 안내하면 너희 가족은 특별히 살려주마.”
[독립운동가 인물평전]
홍범도 (洪範圖, 1868~1943)
조선 평양 출신의 의병장이자 독립군 지휘관. 1907년 정미의병에 참여하며 항일투쟁을 시작했고, 1919년 대한독립군을 이끌고 무장투쟁에 나섰다. 1920년에는 홍범도가 이끄는 독립군이 봉오동 전투에서 일본군을 크게 무찔러 한국 독립운동사에 길이 남을 승리를 기록했다. 이후 김좌진과 연합해 청산리 전투에도 참여했다. 소련 이주 후에는 연해주 등지에서 활동했으나, 1937년 스탈린의 중앙아시아 강제이주 정책으로 카자흐스탄으로 옮겨졌다. 1943년 현지에서 생을 마감했다. 2021년 유해는 한국으로 봉환되었다.
*출처 : 국가보훈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독립운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