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록]1946년, 한국이 일본을 점령했다

69화 - 백발백중

by 팬터피

**어랑촌**




‘이러다간 놈들과 곧 근접전을 치르게 되겠어. 그렇게 되면 우리 인원이 현저히 적어서 쉽지 않을 싸움이 될 텐데··· 큰일이다.’




이는 범석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달려오는 적들이 가까워지면서 백야 장군은 생각이 많아졌다.




이와 반대로 적장인 도모유키는 뿌듯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 청산리에서의 전투가 보였기 때문이다.




“김좌진, 이번엔 너도 별수 없을 거다. 이제 곧 내가 니놈 목을 따러 가마.”




일본군은 결국 독립군이 있는 언덕의 바로 앞까지 도달했다. 이제 적들이 고지 위까지 올라오는 건 시간문제였고, 이렇게 독립군들의 패색은 짙어 보였다.




“악!”




“의무병! 지원 바람!”




그때, 후방에서 지원 사격을 하던 일본군 기관총병의 심장에 하나둘 총알이 박히기 시작했다. 차례대로 한 사람씩 쓰러지자 그들은 웅성대기 시작했다.




“우연이다! 겁먹지 말고 사격을 계속···”




소리를 치던 지휘관의 목에 총알이 관통하였고 그 자리에 바로 쓰러지자 병사들은 웅성댔다. 그러자 다른 지휘관이 어물쩡거리는 병사들을 향해 총을 겨눴다.




“허튼 생각하지 말고 적을 향해 공격하라! 도망치는 놈들은 바로 쏴 버리겠다.”




이런 상황을 멀리서 창균과 범석도 지켜보고 있었다. 후방의 적들이 이쪽으로 집중해서 공격을 하지 못한다고 판단한 둘은 서로 짠 것처럼 동시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언덕의 꼭대기에 서서 올라오는 적들을 향해 사정없이 사격을 하기 시작했다.




그들을 본 다른 독립군들도 일제히 언덕에 서서 공격을 감행했고, 뛰어오던 일본군들은 당황했다.




이때, 일본 병사 하나가 언덕 끝까지 올라 이범석 장군을 칼로 찌르려 달려왔다. 그는 아래에 있는 적에 집중하느라 이를 미처 발견하지 못했고, 가까이 접근했을 때 겨우 상대방을 발견했다. 그는 바로 칼을 피했지만 급히 피하느라 자리에서 넘어졌고, 상대는 넘어진 그를 다시 눌러 찍으려 팔을 높게 들었다.




“죽어라!”




범석은 순식간에 들어온 이 공격을 막을 방법이 없었기에 눈을 질끈 감았다.




탕!




그를 찌르려던 일본 병사는 갑자기 총에 맞은 배를 움켜쥐고 쓰러졌고, 그는 고개를 돌려 총소리가 난 곳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바로 태석이 있었다.




“형님!”




범석의 부름에도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고, 그는 고개를 돌려 다시 적의 후방을 향해 공격을 이어 나갔다. 그가 한 발을 쏠 때마다 적은 한 명씩 줄고 있었다.




한편, 상대의 귀신같은 저격 솜씨로 첫 작전을 성공시키지 못한 도모유키 소장은 상황을 지켜보다 옆에 있는 중령을 불렀다.




“아쉽지만 첫 작전은 실패다. 두 번째 작전에 돌입한다.”




“네!”




중령은 아까와 같이 호각을 입에 물었다.




휘익~ 휘익! 휘익!




신호를 들은 2만이 넘는 일본군들은 일제히 자세를 낮추고 엄폐물을 찾아 몸을 피해 대응 사격을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차를 두고 한 무리씩 좌우 양쪽 끝 숲과 낮은 언덕 뒤로 가 몸을 숨기며 전쟁을 이어갔다.




“장기전으로 전략을 변경한 듯하군요.”




“네. 이 추위와 식량으로 저희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상대가 작전을 바꾸는 것을 본 서일 총사령관과 김좌진 장군은 걱정이 앞섰다. 사실 압도적인 전력 차이 때문에 이 전쟁에서 마음 편히 있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이번 전투는 청산리에서 치르는 전투 중 가장 중요한 총력전이란 걸 모두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상대의 모든 움직임과 상황 변화 하나하나에 무척이나 예민했다.




“여기서 최대한 오랜 시간 동안 적을 잡아둔다. 다른 곳으로 도망가면 또 지리적인 이점을 이용해 싸우려 할 테니 적이 어딨는지 알고, 위치상 아주 높지 않은 이곳에서 장기전을 하는 게 낫다.”




“맞습니다, 소장님. 저들은 식량도 없어 시간이 지날수록 사기가 떨어질 것입니다.”




새벽에 시작한 전투는 해가 떨어질 때까지 계속됐다. 지지부진한 이 전투는 초반 격렬했던 싸움이 무색할 정도로 멀리 떨어져 오랜 시간 서로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이는 작은 선택 하나조차 조심스러울 정도로 승리가 절실한 전투라는 반증이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독립군들의 걱정은 깊어져만 갔다.




“난리구나. 이 와중에 배까지 고프고 지랄이네, 지랄이.”




열심히 적을 향해 총을 쏘아대던 지 장군이 한탄 아닌 한탄을 하였다.




“헉··· 헉··· 박 씨, 물 좀 남은 거 있나?”




“저도 아까 다 마셨어요. 막내야, 너 수통에 물 좀 있니? 어르신, 돌아가시겠다···”




“형님, 저도 없어요. 어쩌죠?”




며칠을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산을 탄 상태에서 하루 온종일 전투를 하다 보니 독립군들은 지쳐가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어디서 식량도 구할 길이 없다 보니, 길어지는 전투에 집중력이 흐려져만 갔다.




“동지, 정신 차리쇼! 좀만 더 버텨봅시다.”




독립군들은 정신력 하나로 버티며 이 전투를 이어나갔다. 그러나 그들이 오늘 밤이 지나고도 이 혹독한 상황을 버틸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그때, 그들의 뒤쪽에서 부스럭 소리가 들렸다. 적들을 향해 총을 쏘던 그들은 당황해 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총구를 들이밀었다.




“어이구 머시나! 살려주이소! 저희는 일본 놈들이 아닙니더.”




수풀에서 두 손을 들고 나온 이들은 바로 지역에 사는 아낙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어깨에 큰 보자기를 한가득 메고 있었다.




“여기 주먹밥이랑 마실 것 좀 가져왔십니더. 언능 요기라도 하이소.”




“정말 감사합니다. 근데 어찌 이렇게 무거운 걸 들고 이 험한 길을 올라오셨습니까?”




“우리는 여기 약초 캐러 자주 와서 금방이지라. 얼른 또 가져올 테니 욕보시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낙들이 내려가고 그들은 급히 그녀들이 어렵사리 가져온 주먹밥을 먹으며 전투에 임했다. 그들은 이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꼭 전투에 승리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 상황을 망원경을 통해 멀리서 지켜본 도모유키는 이번 작전도 실패하였다는 사실에 짜증이 났다. 그는 다급히 다시 중령을 불렀다.




“저 놈들 중에 솜씨가 좋은 놈이 하나 있다. 그놈을 빨리 찾아내라. 그놈만 처리하면 처음 하려 했던 전술을 다시 쓸 것이다.”




“네, 알겠습니다. 근데, 혹시 생각해 두신 방법이라도 있으십니까?”




중령의 질문에 그를 한심하게 쳐다본 소장은 그에게 귓속말로 속삭였고, 그는 이야기를 듣더니 바로 경례를 하고 작전을 수행하러 이동했다.




잠시 후, 후방 쪽 숲 속에서 일본 병사 하나가 평지 쪽을 가로질러 뛰었다. 그의 주변으로 총알이 빗발쳤고, 절반도 가지 못하고 총에 맞아 즉사했다. 그리고 또 한 명이 똑같이 뛰었다. 그 역시 얼마 못 가 배에서 피를 쏟으며 쓰러졌다.




범석을 비롯한 독립군들은 이에 이상함을 느꼈다. 옆에 있던 창균이 탄창을 갈아 끼며 범석에게 물었다.




“이 장군, 저놈들 뭔 개수작들인지 짐작이 가시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나저나 저짝에 저분은 뉘시오? 저 먼 거리를 혼자 다 맞추시네.”




창균은 혀를 내두르며 멀리 태석을 고갯짓으로 가리켰다. 그 말을 듣고 범석은 아차 싶어 급히 소리쳤다.




“태석 형님! 쏘지 마세···”




그러나 이번에도 동일하게 뛰쳐나온 일본군을 향해 태석은 방아쇠를 당겼고, 이번에도 어김없이 날아간 총알은 적의 심장을 관통했다.




이를 본 이범석 장군은 태석을 향해 다시 소리치며 그를 향해 뛰었다.




“형님! 쏘지 마세요! 피하세요!”




그러나 여기저기서 울리는 총소리에 그의 소리가 태석에게까지 미치지 않았다. 범석은 답답한 마음에 계속 소리를 지르며 태석을 향해 달려갔다.




한편, 태석의 존재를 알아낸 일본군 중령은 망원경으로 태석의 위치를 알렸다.




“모든 저격수들은 저 놈을 쏘라 명하라.”




그렇게 서른 명이 넘는 저격수들이 일제히 태석을 향해 총구를 돌렸다. 이를 모르는 태석은 고지를 방어하는 것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태석이 형! 제발 좀 피하라고!”




범석의 간절한 외침이 태석에게 닿았을 때, 그는 눈을 돌려 동생이 뛰어오는 것을 봤다. 그러나 바로 그때, 한꺼번에 많은 총알들이 그의 주변에 날아왔다.




피융! 피융!




무릎을 꿇고 사격을 하고 있던 그의 머리와 다리, 어깨 등으로 총알이 날아와 박혀 그는 자리에서 바로 쓰러져 뒤로 굴러 떨어졌다. 이를 본 범석은 잠깐 사색이 되어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혀··· 혀··· 형님··· 형님!”






[독립운동가 인물평전]




박건병 (朴健炳, 1889~1950)




평안남도 평양 출신으로 1919년 3·1운동에 참여한 뒤 만주로 망명해 독립군 양성에 힘썼다. 그는 신흥무관학교에서 훈련을 받은 후 서로군정서에 소속되어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했다. 특히 1920년 봉오동·청산리 전투 이후 독립군 재편 과정에서 활동하였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연계한 조직에서 정보수집과 군사 활동에 기여했다. 광복 후에도 독립유공자로 평가받았고, 정부는 그의 공로를 기려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출처 :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독립운동사자료집, 한국독립운동인명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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