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 백두산 호랑이
**어랑촌**
서른 명이 넘는 저격수들이 일제히 태석을 향해 총구를 돌렸다. 이를 모르는 태석은 고지를 방어하는 것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태석이 형! 제발 좀 피하라고!”
범석의 간절한 외침이 태석에게 닿았을 때, 그는 눈을 돌려 동생이 뛰어오는 것을 봤다. 그러나 바로 그때, 한꺼번에 많은 총알들이 그의 주변에 날아왔다.
피융! 피융!
무릎을 꿇고 사격을 하고 있던 그의 머리와 다리, 어깨 등으로 총알이 날아와 박히며, 그는 자리에서 바로 쓰러져 뒤로 굴러 떨어졌다. 이를 본 범석은 잠깐 사색이 되어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혀... 혀... 형님... 형님!”
멀리서 태석이 총에 맞은 것을 확인한 적의 지휘관은 소장에게 이를 보고했다. 이에 도모유키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좋다. 다시 처음 대형으로 공격하라!”
그의 지시에 중령은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호각을 불었다.
휙! 휙~~~ 휙!
신호에 따라 후방 지원조가 아까 위치한 자리로 뛰어가 위협사격을 시작했다. 그러자 독립군도 다시 그들의 공격에 자신을 보호하고자 엄폐물에 몸을 숨기고 전투에 임했다.
상대의 변화를 확인한 일본군 중령이 다시 호각을 불자, 양쪽 숲 속에 있던 만 명이 넘는 병사들이 우르르 독립군이 있는 언덕을 향해 총을 쏘며 뛰어들었다.
이에 독립군은 다시 당황했다. 새벽 때와 같은 상황이 다시 발생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까보다 더 우렁찬 함성 소리로 뛰어오는 적의 모습에 독립군들은 기세가 확 눌려버렸다.
“죽어라! 이 개자식들아!”
태석의 죽음에 분노가 극에 달한 범석은 언덕 위로 올라가 적들이 눈에 보이는 대로 쏴 죽였다. 그러다 상대의 총알이 그의 어깻죽지를 통과했다.
“아악!”
그는 고통스러웠으나 다시 총을 부여잡고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나 총알은 다시 그의 다리를 관통하였다. 다리와 어깨에서 피를 철철 흘렀으나, 그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다른 다리로 무릎을 굽힌 뒤 공격을 지속했다.
“장군님, 여긴 저희가 막을 테니 치료부터 받으십시오!”
이범석 장군의 희생정신에 감동한 기관총 부대 최인걸 중대장이 그의 옆으로 올라와 소리쳤다.
“기관총 부대원 모두 죽음을 두려워 말라! 총구는 조국의 눈이고, 총알은 조국의 선물이다.”
그의 패기 넘치는 한마디에 부대원들은 언덕에 올라 날아오는 총알에 아랑곳하지 않고 적들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그러다 하나가 총에 맞아 쓰러지자, 최인걸 중대장은 그 기관총을 잡고 전투를 이어 나갔다.
이 모습에 독립군들은 모두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기관총을 포함한 엄청난 양의 총알이 빗발쳤으나 그들은 겁내지 않았다. 여기가 무너진다면 이 전투는 승리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지가 앞이다! 두려워 말라! 적은 오합지졸일 뿐이다!”
적들은 수적 우세를 앞세워 계속 돌격을 감행했다. 그들에게 상대의 기관총 부대며, 옆에서 총에 맞아 피를 토하는 동료들은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들에게 목표는 오직 고지를 점령하고 독립군을 눌러버리는 것, 이거 하나뿐이었다. 그렇게 앞만 보고 달려온 그들 중 일부는 결국 언덕의 꼭대기까지 올라왔고, 독립군들과 치열한 백병전을 펼쳤다.
“서일 총사령관님, 적들이 이제 고지 바로 앞까지 왔습니다. 지금이라도 퇴각을 하시는 게 어떠실까요?”
“그럴 순 없습니다. 등을 보이는 순간 더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김 장군 생각은 어떻소?”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던 백야 장군은 담담한 어투로 답했다.
“이제 때가 된 것 같습니다.”
그의 입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일본군의 후방 부대가 어수선해졌다. 그리고 그 뒤편에서 총소리가 들렸다.
“호랑이가 나타났다.”
일본 진영에서 누군가 크게 소리쳤다. 그 소리에 모든 일본군들이 얼어붙어 뒤쪽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진짜로 호랑이가 있었다.
백두산 호랑이 홍범도 장군! 그가 이끄는 부대, 대한독립군이 일본군의 바로 뒤쪽에 나타난 것이다.
“적들의 후미를 공격하라! 기관총 및 포병 먼저 무력화시켜라!”
“와! 와!”
홍범도 장군의 우렁찬 목소리가 숲 속 전체에 울려 퍼지자 교전 중이던 북로군정서군의 인원들까지 그가 왔음을 눈치챘다. 이에 서일 장군은 신기한 듯 백야 장군을 바라보며 물었다.
“장군님, 대한독립군 올 거란 걸 혹시 미리 알고 계셨던 겁니까?”
“이범석 장군이 어제 봉우리 꼭대기에 올라 망원경으로 주변을 살폈는데, 홍 장군님 부대가 이 근처를 지나갈 것 같다고 귀띔해 주었습니다.”
그의 등장만으로 어랑촌 전장에 흐르는 공기가 180도 바뀌었다. 그만큼 그는 독립군들의 우상이었고, 살아 있는 전설이었다.
독립군들과는 달리 일본군들은 아수라장 그 자체였다. 이틀 전 완루구에서도 그의 도술 같은 전략에 홀려 같은 일본군끼리 총을 쏴댔는데, 오늘도 기가 막힌 시점에 그들의 뒤를 쳐들어와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무기와 병력 수로 이점이 있다 해도, 앞뒤로 공격을 당하는 상황에서 일본군은 별다른 수가 없어 보였다. 항상 자신감 넘쳐하던 도모유키도 상황이 이렇게 되어버리다 보니 별다른 대안이 생각나지 않았다. 추운 날씨임에도 그의 등줄기엔 땀이 흘렀고, 이를 꽉 깨물었다.
“젠장. 최대한 빨리 후퇴한다. 양쪽으로 흩어져 숲으로 숨고, 차후 주둔지로 집결하도록.”
“후퇴하라! 전 인원 가까운 숲으로 후퇴하라!”
전쟁에서 패배한 일본군은 혼비백산이 되어 빠르게 도망쳤다. 그들은 귀신이라도 본 듯 넘어지고 땅에 구르고 난리도 아니었다. 이 모습을 한심하게 바라보고 있던 독립군들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꺼져라 이놈들아! 다신 보지 말자!”
“니 애미 젖 좀 더 먹고 와라!”
“하하하하~”
독립군들이 승리의 기쁨에 젖어 웃고 떠들고 있었지만, 범석만은 그러지 못하고 있었다. 비록 총에 다리를 맞아 걷기가 불편했음에도, 그는 태석이 굴러 떨어진 언덕 아래쪽으로 빠르게 뛰어갔다.
“형님, 죄송합니다. 잘 살고 제가 괜한 부담을 드려서...”
그는 쓰러져 있는 태석 앞에 무릎을 꿇고 흐느끼며 말했다. 전쟁의 승리와 나라를 되찾는 것이 가장 중요했기에, 일이 이렇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그때, 태석이 갑자기 피를 토했다. 그 모습을 보며 범석은 깜짝 놀라 입 안의 피를 제거하고 심장 소리를 확인했다.
“도련... 님... 저... 살아 있... 습니... 다... 걱정... 마... 세요...”
겨우겨우 한 마디씩 내뱉는 형을 바라보며 범석은 감사함에 웃으며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계속 되뇌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흐느끼는 범석의 어깨를 뒤따라온 백야 장군이 따뜻하게 다독였다.
“이 장군의 형님이셨군. 자네가 형님을 닮아 솜씨가 좋았구만.”
“어릴 때 형님을 보며 군인을 꿈꿨습니다.”
백야 장군을 보자마자 일어나려는 태석을 그는 말렸다. 그리고 그의 앞에 앉아 손을 잡았다.
“동지님이 없었다면 오늘 이 전투는 쉽지 않았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주변에 모인 독립군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이 말에 동의했다.
“이 장군이 형님을 댁에 모셔다 드리고 다시 대열에 합류하는 게 어떻소?”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장군님.”
그때, 독립군 무리 사이에서 누군가 손을 들고 다가왔다. 그는 태석의 동네 사람인 두열이네 아빠였다.
“장군님은 전투에서 중요한 분이시니, 제가 여기 최 씨, 집으로 잘 모셔드리겠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가겠습니다.”
“저도 어차피 내려가는 길이라. 제가 같이 가겠습니다.”
“그렇다면 감사합니다.”
그렇게 어랑촌에서 긴 싸움이 끝이 났다. 독립군들은 다시 적을 피해 자리를 잡기 위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형님,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눈물이 나는 걸 꾹 참으며 범석이 태석에게 짧게 인사했다. 그는 목이 메어 더 길게 말할 수가 없었다.
“도련님, 살아서 또 뵙겠습니다.”
“네. 나라를 되찾고 고향에서 뵙겠습니다.”
“네, 도련님. 그땐 약주 같이 하시죠. 제가 대접하겠습니다.”
“형님, 그땐 꼭 도련님 말고 이름 불러주세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러니 꼭 살아 계세요.”
그들은 미래를 기약하며 서로를 따뜻하게 안았다. 그러나 그때 그들은 알지 못했다. 이게 그들의 마지막 인사가 될 것이란 것을···
[독립운동가 인물 평전]
최인걸 (崔仁傑, 1880~?)
평안남도 순천 출신의 독립운동가로 1919년 3·1운동 이후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군 활동에 참여했다. 그는 서로군정서와 참의부 등 항일 무장단체에서 활약하며 주로 군자금 모집과 병참 업무를 맡았다. 특히 항일투쟁 초기의 기반 조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이후 임시정부와 연계한 조직에도 참여했다. 그의 자세한 생몰연대나 사망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독립운동사자료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