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록]1946년, 한국이 일본을 점령했다

68화 - 고지전

by 팬터피

**어랑촌**




어둑한 밤이 지나 새벽 초입이 되자, 가뜩이나 조용했던 이곳은 금수들이 잠들어 울음소리마저 거의 울리지 않아 먼 곳에서 울리는 폭포와 차가운 바람 소리만 작게 들릴 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독립군들은 이 추운 날씨에 불을 피우지 못함은 물론이고, 혹시나 바스락 소리가 날까 걱정되어 매복하고 있는 위치에서 크게 움직이지도 못하고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와 씨. 오늘은 어제보다 더 춥네요.”




“그러게. 어디 주막에서 뜨끈한 국밥이나 한 그릇 때렸음 좋겠구만...”




“아... 맛있겠네요. 근데 저는 어릴 때 엄마가 쪄 준 감자랑 고구마가 너무 생각나요.”




막 열여섯 된 어린 군인 하나가 추위를 버티기 너무 힘들어 이를 잊기 위해 말을 시작했다. 옆에서 듣던 삼십 대 중반의 포수가 그의 말에 픽하고 비웃었다.




“니 같은 꼬마가 어릴 때라 말하니 웃긴다야.”




“꼬마라뇨! 무관학교까지 졸업한 엄연한 성인인데요.”




“그랴. 애 취급하지 말어. 나도 저 나이 때 결혼했구만 뭘.”




“박 씨 결혼했어?”




“그럼요. 애가 벌써 열 살도 넘었는디요? 왜요?”




“아니, 그 인물로 결혼을 어찌했대?”




같이 있던 동료들이 그 이야기를 듣고 입으로 웃음소리를 막으며 키득거렸다. 그 반응에 박 씨의 얼굴이 빨개졌다.




“하 씨, 내 인물이 어때서? 참내, 어이가 없네. 이 중엔 넷 중엔 내가 젤 낫지 뭐.”




“저 양반이 추워서 버티려고 약주를 많이 했나 보구만. 제정신이 아닌 것 같으니.”




“그나저나 가족들 고향에 두고 이렇게 있는 게 참 말이 아니겠구만...”




“뭐 그렇죠... 빨리 나라를 되찾아야 다 같이 부대끼며 아등바등 살 텐데...”




가족 생각에 눈시울이 붉어진 박 씨는 한숨을 푹 쉬었다.




“박 씨 아내는 더 좋을 거여. 아침에 눈 떴을 때 저 못난 얼굴 매일 보기 힘들었을 텐데 말이여.”




그 말을 듣고 또다시 사람들이 ‘푹’ 하고 웃음을 내뱉었다.




“참내! 짜증 나네. 확 담배 땡겨 부는구만.”




“그러게요. 담배라도 한 대 태우면 잠깐이나마 몸이라도 녹일 텐데...”




“그래도 힘냅시다. 여기서만 잘 버티면 놈들도 꼬리를 내릴게요.”




다들 혹독한 상황 속에서 지치고 기세가 떨어질 만도 한데, 그들은 오히려 승리에 대한 의지가 불타고 있었다. 적군을 기다리는 독립군 병사들의 눈빛은 백두산의 추위만큼이나 매서웠다.




“저기, 근데 무슨 소리가 들리는 거 같아요.”




“응? 나는 안 들리는디?”




“조용! 음... 꼬맹이 말이 맞아. 어렴풋이 들려.”




몇 시간의 기다림 끝에 드디어 멀리서 적군의 이동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독립군들은 서로에게 조용히 이를 알렸다.




잠시 후 적들이 멀리 숲 속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를 보자마자 창균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근처에 있는 백야 장군을 쳐다보며 생각했다.




‘이 어둠 속에서 적들을 잘 맞출 수 있을까?’




한편, 어랑촌에 들어선 도모유키는 지도로만 보다가 처음 실물로 본 이곳을 유심히 살폈다. 비록 어두워 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달빛에 비춰 희미하게 느껴지는 멀리 언덕 쪽 실루엣으로 거리를 가늠했다.




‘요 앞 얕은 웅덩이와 낮은 언덕, 저기를 지나야 제대로 뛸 수 있겠구나. 적들도 우리가 저 나무 정도는 가야 저격이 가능하겠어. 그전엔 우리 총으로도 힘든 거리다.’




도모유키 소장과 동일하게 백야 장군도 적들이 창균이 맞춘 나무를 지나 좀 더 들어왔을 때 포수들에게 공격을 지시하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포수들은 전부 그의 신호를 기다리며 적들을 조준하고 있었다.




그러나 창균은 어두운 시야와 세게 불어오는 바람이 걱정이었다. 낮에 쐈을 때보다 더 악조건에서 조준을 한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았다.




‘내가 조금이라도 빨리 맞춰야 적의 사기가 떨어질 텐데... 이 상황에서 과연 가능할지. 저쪽은 유난히 더 어두운 듯해.’




일본군은 조심조심 한 걸음씩 발을 떼며 벌판의 중앙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이를 지켜보는 포수들은 추운 날씨에도 이마에 땀이 맺힐 정도로 긴장하고 있었다.




결국 그들은 나무가 있는 곳에 다다랐다. 이를 보며 백야 장군은 공격 신호를 할 때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일본군에서 큰 소리가 났다.




“전원 뛰어!”




소장의 지시에 일본군은 일제히 앞으로 뛰었다. 이에 당황한 독립군은 어쩔 줄 몰라하며 김좌진 장군을 바라봤다. 그러나 그는 어느 정도 이를 예상하고 있었던 듯 눈도 꿈쩍하지 않고 적이 오는 걸 지켜봤다.




‘오, 사, 삼’




적군들은 전력을 다해 달렸고, 일본군 후미의 병사들도 낮은 언덕의 나무 근처까지 오고 있었다.




‘이, 일’




맨 뒤쪽 병사들까지 나무를 지나치자, 김좌진 장군의 눈빛이 바뀌었다. 그는 손을 번쩍 들고 소리쳤다.




“전군 발사!”




탕! 탕!




총소리가 언덕을 가르고 울렸다. 달리던 일본군 병사의 가슴에서 피가 터져 나왔고, 바로 옆의 병사는 휘청이며 옆으로 쓰러졌다. 그들의 발자국이 이어지던 흙길에는 붉은 얼룩이 생겨났다.




숨어서 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조준해서 사격을 하니 앞쪽에 배치된 적들을 쏘기 수월했던 것이다.




“소장님, 이러다 언덕에 오르기 전에 병력의 3할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알고 있다. 맨 뒤 두열은 지금 자리에서 대응 사격 실시한다.”




그 말을 들은 지휘관은 바로 호루라기를 꺼내 물었다.




휙! 휙~~~ 휙!




이 신호에 일본군 일부는 일사불란하게 자리에 서서 대응 사격을 했다. 여기에는 기관총 부대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를 본 서일 사령관은 곧장 소리쳤다.




“각자 은폐, 엄폐하라!”




그러자 독립군들은 일제히 자세를 바꿔 바닥에 엎드리거나 옆에 있는 나무 등에 자신의 몸을 숨겨가며 공격을 했다.




“포수들은 맨 뒤 사격하는 인원 위주로 공격!”




백야 장군의 신호에 맞춰 그들은 멀리 나무 근처에 있는 적들에게 총구를 돌렸다. 그러나 거리가 멀고 어두워 쉽사리 그들을 맞출 수 없었다.




이를 보고 있던 한 지휘관이 서일 총사령관에게 말했다.




“총사령관님, 지금처럼 몸을 숨기며 공격을 하면 명중률이 떨어져 많은 수의 놈들이 바로 앞까지 다가올 겁니다! 아까처럼 몸 사리지 말고 공격해야 합니다.”




“저들이 기관총까지 동원해 대응 사격을 하고 있어서 되레 병력을 크게 잃을 수도 있소.”




“그래서 저 멀리 총질하는 놈들을 방해하려 하는데, 거리가 있어 잘 안 맞고 있습니다. 근데 상황은 어차피 저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우리가 은폐·엄폐하지 않아도 저기서는 명중시키지 못합니다.”




“그래도 우리는 수가 적으니 지금처럼 공격하는 게 맞습니다. 자칫 병력을 크게 잃으면 바로 승기가 기울 수 있습니다.”




옆에서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포수들과 함께 적들을 저격하고 있던 범석은 자꾸 조바심이 났다. 낮에 시험 삼아 나무를 쐈을 때보다 여러 가지 환경이 좋지 않아 그때보다 더 잘 안 맞았기 때문이다.




‘이러다간 놈들과 곧 근접전을 치르게 되겠어. 그렇게 되면 우리 인원이 현저히 적어서 쉽지 않을 싸움이 될 텐데··· 큰일이다.’




이는 범석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달려오는 적들이 가까워지면서 백야 장군은 생각이 많아졌다.




이와 반대로 적장인 도모유키는 뿌듯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 청산리에서의 전투가 보였기 때문이다.




“김좌진, 이번엔 너도 별수 없을 거다. 이제 곧 내가 니놈 목을 따러 가마.”




일본군은 결국 독립군이 있는 언덕의 바로 앞까지 도달했다. 이제 적들이 고지 위까지 올라오는 건 시간문제였고, 이렇게 독립군들의 패색은 짙어 보였다.






[독립운동가 인물평전]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 (Ernest Thomas Bethell, 1872~1909)




영국 출신 언론인 베델은 1904년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해 한국인 양기탁과 함께 일제의 침략과 탄압을 세계에 알렸다. 국채보상운동을 적극 지원하고, 신채호·박은식 등과 협력해 민족의식 고취에 힘썼다. 일제의 탄압으로 옥고를 겪고, 1909년 37세로 사망했다. 1968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받았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브리태니커, 대한매일신보 관련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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