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록]1946년, 한국이 일본을 점령했다

67화 - 어랑촌

by 팬터피

**어랑촌 - 독립군 진영**




백야 장군은 급히 포수들을 불러 모았고, 언덕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멀리 아주 낮은 언덕 위에 있는 나무를 가리켰다. 그 나무는 어랑촌의 입구 가까이에 위치하고 있었다.




“혹시 여기 계신 분들 중 입구 초입 부근에 있는 나무를 맞출 수 있는 분이 계신가요?”




포수들은 장군의 물음에 한참 생각에 잠겼다. 그중 한 사람이 손을 들고 말했다.




“저희가 가진 이 총으로는 쉽지 않을 겁니다. 저희 중엔 김 씨와 이 장군이 사격 솜씨가 제일이니, 그 둘이 못하면 저희도 어려울 겁니다.”




옆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이 장군이 놀라며 손사래를 쳤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여기 다들 저보다 잘 쏘시는데요.”




“지금은 겸손할 때가 아닙니다, 이 장군. 신흥무관학교에서 제일가는 명사수가 바로 이 장군 아니오.”




나중소 장군이 범석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말했다. 그러자 백야 장군이 어깨에 메고 있던 총을 그에게 건넸다.




“이 총으로 한번 해보시게. 너무 많이 쏘면 적에게 위치가 발각될 수 있으니, 둘 다 시험 삼아 세 발씩만 쏴봅시다.”




이 장군이 민망해하며 총을 받았다. 그는 다른 장군이나 포수들보다 꽤나 어린 나이였기에,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먼 거리를 사격하는 게 처음에는 긴장이 됐다.




그러나 과녁을 조준하면서부터 그는 언제 쑥스러워했냐는 듯 눈빛부터 달라졌다.




‘볼 땐 아주 멀어 보이지 않았는데, 막상 쏘려니 많이 멀구나.’




그는 엎드려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숨을 죽인 채 쏴야 할 나무를 바라봤다. 동남향으로 살랑살랑 부는 바람이 그의 뺨에 닿았다.




그는 온몸을 나무에 집중했고, 이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약간의 미동도 허락하지 않기 위해 손가락이 힘을 주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움직임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탕!




총알은 안타깝게도 나무를 맞추지 못했다. 그는 두 발이 더 남았지만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 실력으로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더 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수고했소. 그럼 이제 창균 동지가 한번 해보시죠.”




그는 아무 말 없이 이 장군이 사격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모인 사람 모두가 숨도 쉬지 않은 채 그에게 집중했다.




탕!




그는 길게 호흡하지 않고 먼저 한 발을 당겼다. 그러나 이는 나무의 바로 밑에 박혔다. 그는 다시 호흡을 가다듬고 한숨을 푹 쉬더니 또 한 발을 쐈다.




탕!




그러자 이번엔 나무 옆을 거의 스치듯 지나갔다. 그는 한 번 눈살을 찌푸리더니 다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이전보다 좀 더 길게 과녁에 집중했다. 주변 모든 이들이 숨을 죽이고 그를 지켜보았다. 그는 한참 후 손가락을 움직였다.




탕!




총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고, 사람들은 나무를 바라봤다.




“와! 역시 김 씨!”




“형님! 대단하시네요.”




총알은 나무에 꽂혔고, 숨죽이며 지켜보던 사람들은 박수를 치며 그를 칭찬했다. 그렇지만 사람들의 칭찬에도 그는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일어나 총을 백야 장군에게 건넸다.




“움직이는 적군을 이 거리에서 맞추긴 어렵겠습니다. 여기보다 스무 보는 더 다가와야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그렇군요. 적의 수가 너무 많아 그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언덕으로 달려온다면 승리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걱정이군요.”




“맞습니다. 어쨌든 일보라도 더 멀리서 적들이 공격을 시작해야 할 텐데요···”




“어쩔 수 없군요. 운명에 이 전쟁을 맡겨보는 수밖에. 제가 신호를 드릴 테니 그때 김 동지가 공격을 시작해 주시오.”




김좌진 장군은 건네받은 총을 다시 창균에게 건네며 그의 어깨를 툭 치고 자리를 떠났다.




“김 형, 어깨가 무겁겠소! 근데 너무 걱정 마쇼. 잘할 테니.”




“그래요. 실전에서는 집중이 더 되니까 지금보다 잘 맞을 겁니다!”




사람들은 그를 응원했고, 이 모습을 보며 범석은 못내 아쉬웠다.




‘이럴 때 태석 형님이 계시면 큰 도움이 될 텐데···’




이때, 서일 총사령관이 어수선한 분위기를 정리했다.




“자자. 오늘 밤이나 내일 새벽 사이에 적들이 이쪽으로 올 듯합니다. 다들 이제 자리를 잡고 적들에 대비합시다.”




**청산리 일대 일본군 진영**




도모유키 소장은 키타무라 소좌 등 지휘관들을 불러 모아 놓고 앞으로의 전투에 대해 논의했다.




“우리가 백두산 일대에 온 지 사흘 정도 지났는데, 크고 작은 전투에서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했소. 심지어 어제는 홍범도에게 속아 우리끼리 총질을 하는 우둔함까지 보이고 말이죠.”




이 전투의 총책임을 담당하고 있는 소장의 평가에, 앞에 있는 지휘관들은 꿀 먹은 벙어리마냥 아무 말도 못 하고 쥐 죽은 듯 서 있었다.




“계속 말하지만, 이곳에서의 전투는 지형상 우리에게 불리한 싸움인 게 맞소. 그 말인즉슨, 그들은 지형적인 이점을 계속 활용할 것이란 말이오.”




소장은 연필을 들더니 탁자에 펼쳐진 지도에 하나씩 ‘X’ 자를 그었다.




“여기는 우리가 지금까지 그들과 맞붙었던 곳이오. 그들은 이곳엔 매복하지 않을 듯하오.”




앞에서 그의 말을 유심히 듣던 일본군들은 지도에 ‘O’ 표시는 하는 것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다들 오랜 전투 경력으로 눈치챘겠지만, 그들이 이제 매복할 만한 곳은 여기 네, 다섯 곳 중 하나요. 근데 그중에서도 여기!”




소장은 어랑촌을 콕 찍고, 앞에 있는 지휘관들을 바라보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바로 여기가 내 생각엔, 이번 그들이 우리를 기다리는 장소가 아닐까 싶소.”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소장님?”




“여기가 이 지역에서 가장 큰 인원이 맞붙을 수 있는 곳이오. 처음엔 우리 수가 많아 한꺼번에 큰 수를 상대하기 부담스러웠을 거요.”




“그렇지만 저희도 처음에 비해 숫자상 아주 큰 피해를 입은 건 아닙니다.”




“맞소. 그러나 네댓 번의 싸움을 하면서 그들의 사기도 올랐고, 이제 해볼 만하다 생각할 거요. 거기에 그들은 이 추위에 산속에서 오래 버티기가 쉽지 않을 거요. 그러니 한 번의 큰 전투로 전쟁을 끝내고자 할 것이오.”




이야기를 듣던 지휘관들은 소장의 의견에 크게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소장은 지도에 계속 표기를 하며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말인데, 그들은 여기 언덕에 숨어 우리가 이 벌판의 중간쯤 도달했을 때 총공세를 퍼부을 듯하오. 거리상 그전에는 우릴 맞추기 쉽지 않을 것이오. 쏜다 해도 위협사격 수준 정도일 겁니다.”




지도에 계속 표기를 하며 설명하던 그는 연필을 놓고, 백운평 전쟁에서 크게 패한 키타무라에게 다가가 어깨동무를 했다.




“그래서 우리는 초입에서 방심한 척 걸어가다가, 내가 신호를 하면 그때부터 전원 언덕으로 뛰어갈 것이오. 놈들이 총을 쏘든 말든 무조건 적들을 칼로 찌를 수 있는 거리까지 뛰어야 하오.”




“육탄전을 하자는 말씀이시죠? 알겠습니다!”




키타무라의 어깨를 감싸던 팔을 풀고, 소장은 그의 조끼에서 권총을 꺼내 만지작거리다 바로 상대의 머리를 쐈다. 이를 옆에서 지켜보던 일본군들은 깜짝 놀라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이를 아랑곳하지 않고 도모유키는 얼굴에 튄 피를 옷소매로 닦으며 세상 다정한 표정으로 말했다.




“만약 백운평에서처럼 주저하며 이도 저도 못 하고 진다면, 다들 이 꼴이 될 줄 아시오.”




[독립운동가 인물평전]




황병길 (黃炳吉, 1885~1920)




함경북도 경원 출신의 무장 독립운동가로, 1905년 만주로 망명해 의병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연해주와 훈춘 등지에서 일본군과 싸우며 ‘훈춘 호랑이’로 불렸고, 북로군정서와 대한국민회 창립에 참여해 군무부장으로 활약했다. 국내 진공작전을 추진하던 중 병환으로 1920년 순국했으며, 정부는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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