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 향국지성
**태석의 꿈**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있는 부모가 태석에게는 없었다. 태석과 태규 둘 다 어릴 때부터 부모 없이 범석의 집 노비로 일했다. 그러던 어느 날, 범석의 아버지가 집안의 노비들을 다 불러 모았고, 그들 앞에서 노비 문서를 한꺼번에 태워버렸다.
“이제 다들 자유의 몸이네. 오늘부로 이곳을 떠나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게. 고생들 많았네.”
“아이고! 어르신!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은혜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며 감사 인사를 했고, 범석의 집에서 챙겨준 돈을 받아 그 집을 떠났다. 그러나 나가서 무언가를 하기에 너무 어렸던 태규와 태석은 늦은 저녁, 주인어른을 다시 찾아갔다.
“어르신, 저희는 자유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그냥 여기서 일하며 계속 살게 해 주십시오.”
그 말을 들은 범석의 아버지는 한참 생각을 했다.
“음··· 그렇다면 내가 너희를 양아들 삼으마. 내일부터 학교에 나가 공부를 하거라. 단, 성인이 되어 가정을 꾸리면 나가야 한다.”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어허! 아버지라 해야지!”
“네··· 어르··· 아니, 아버지.”
“그리고 너희 동생인 범석이를 항상 잘 챙겨주거라.”
그날 이후로 셋은 친형제처럼 지냈다. 태석은 가족도 아닌 노비 출신인 자신과 태규를 유난히도 잘 따르고 자랑스러워하는 범석에게 항상 감사한 마음이었다.
“와! 형들 군복 진짜 잘 어울린다! 나도 좀 입어볼래.”
“도련님, 추운데 맨발로 이렇게 나오시면 감기 걸리십니다. 빨리 들어가시죠.”
“옷 빨리빨리~ 나도 형들처럼 멋진 군인 될래!”
태규와 태석은 학교를 졸업하고 범석의 부친, 이문하의 도움으로 대한제국 군인이 되었다. 범석은 군복이 잘 어울리는 두 형을 무척이나 자랑스러워했다.
그러나 그들의 행복은 그리 길게 가지 못했다. 을사늑약 후 정미7조약을 통해 일본은 대한제국의 군 조직을 해체하라 지시했기 때문이다.
이 소식을 듣자마자 태석은 대대장실로 뛰어가 소리쳤다.
“참령님, 이게 말이 됩니까! 우리가 없어지면 나라는 누가 지킵니까?”
“맞는 말이네. 근데 나라에서 정한 걸 우리가 어쩌겠나···”
“맞서 싸워야죠! 일본 놈들이 우리나라를 빼앗으려고 수작 부리는 건데, 그냥 가만히 있으면 군인의 도리를 다하지 않는 거라 생각합니다.”
뒤따라온 태규가 동생의 말을 듣고 말렸다.
“야, 그게 무슨 소리야. 반란이라도 벌이자는 거야? 무서운 소리 말고 나가자.”
“형님! 이대로 가만히 있다간 나라가 통째로 일본에 넘어갈 겁니다!”
“그러다가 어르신께 피해라도 가면 어쩌려고 그래?”
“아버지는 제게 나라가 있어야 개인도 있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이때, 대대장이 그들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다가 그들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실은 우리는 끝까지 저항할 생각이라네. 군대 해산을 발표한 후 무기를 반납하면서 신호를 보낼 테니, 그때 단체로 공격하시게.”
1907년 8월 1일, 일본군은 대한제국군의 해산을 공식으로 선언했다. 발표 이후 모든 군인들은 소지한 총칼 등의 반납을 위해 무기고에 모였다.
일본군의 삼엄한 경계 속에 일정이 진행되던 중, 전날 태석에게 신호를 주기로 한 대대장 박참령이 갑자기 사람들 앞으로 뛰어나왔다.
“대한제국 만세!”
그는 만세를 외친 뒤, 바로 권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쏴 자결했다. 태석은 참령의 자결에 깜짝 놀랐지만, 바로 총을 들어 일본군을 향해 총을 쐈다.
“이 땅의 군인은 바로 우리다!”
태석의 외침에 용기를 얻은 다른 대한제국 군인들도 반납하려 들고 있던 총을 들어 일본군을 향해 발사했고, 일본군들도 곧바로 그 공격에 응수했다. 그러나 태석의 형, 태규는 사격을 하지 않고 태석을 향해 달려갔다. 동생이 다치는 게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남대문 주변은 갑자기 전쟁터가 되었다. 총소리가 멀리까지 퍼져 일본군은 본진에서 병력을 대거 지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 시간 남짓 지났을 때 전세는 완전 일본군 쪽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그때였다. 멀리서 쏜 일본군의 총이 태석의 어깨를 관통했고, 그는 바로 쓰러졌다. 이것을 본 일본 병사 하나가 끝에 장검이 달린 총으로 그를 찌르려 달려들었다. 그러자 태규가 바로 그 병사를 쐈다.
“형!! 조심해!”
태규가 동생을 지키기 위해 한눈을 판 사이, 다른 병사가 뒤에서 그를 쐈고, 그 총알은 그의 심장을 관통했다.
“형! 아아악! 형!”
태석은 그에게 달려갔으나 그는 이미 목숨을 잃은 후였다. 동생은 형의 죽음에 슬퍼하며 그를 안고 오열했다.
**형원의 집**
“최 씨! 집에 있는가? 아직 자나?”
두열이네 아범의 호출에 눈물을 흘리며 잠을 자던 태석이 잠에서 깼다. 동시에 그의 가족들도 같이 일어났고, 형원이 졸린 눈을 비비며 문을 열고 나왔다.
“백두산에 홍범도 장군님 부대도 오셔서 전쟁에 승리했다고 하네. 우리는 지금 장군님들을 돕기 위해 산으로 출발할 걸세.”
그 이야기를 들은 태석은 난감해하며 밖으로 나왔다.
“이런 결정을 하시다니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그러나 어제도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그런 깜냥이 못 되는 사람입니다. 그냥 저는 집에 있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그의 말에 실망한 사람들이 웅성대며 대문 밖으로 나갔다.
“이거 봐. 내가 최 씨는 안 갈 거라 했잖소.”
“시간만 낭비했구먼. 빨리 출발합시다.”
이 모습을 바라보며 형원은 아버지를 원망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다 방으로 휙 들어갔다.
**어랑촌 - 독립군 진영**
백운평에서 전투를 시작으로 사나흘 정도 계속되는 간헐적인 전투에 독립군들은 많이 지쳐 있었다. 거기에 눈 덮인 백두산 기슭을 제대로 된 방한화도 없이 짚신 등을 신고 다니고 있는지라 일본군을 피해 계속 다니는 것 자체가 힘든 상태였다.
나라를 되찾겠다는 정신력이 없었다면 그들은 벌써 앓아누웠거나 이 싸움을 포기했을 것이다.
을사오적처럼 꼭 나라까지 팔아먹지 않더라도, 그냥 일본이 조선을 지배하는 것만 인정하면 알지 않아도 되는 고통이었다.
발이 부르트고 썩어가는 이 고통과 찬바람에 온몸이 얼어붙을 것만 같은 추위, 아사 직전의 배고픔과 죽음에 대한 공포까지. 눈만 딱 감는다면 굳이 이러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편안한 집에서 사랑스러운 가족들과 따뜻한 밥을 먹을 수도 있는데, 그들은 단 하나의 꿈을 위해 이 모든 것들을 감내하고 있었다.
이런 의지 덕분인지 백운평 전투 이후 청산리에서 계속된 몇 번의 크고 작은 전투에서 독립군들은 큰 인명 피해 없이 모두 승리하였다. 아무리 무기가 좋고 인원이 월등히 많더라도 독립군들의 절실함을 이길 순 없었던 것이다.
혹시 모를 적의 기습을 대비해 김좌진 장군이 이끄는 북로군정서군은 찬 새벽안개를 뚫고 산속을 이동 중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나중소 장군이 한숨을 푹 쉬었다.
“우리가 몇 번이나 압도적으로 이겼는데, 어제저녁에 보니 상대 병력은 그대로인 것 같더라고요.”
앞에 가고 있던 나중소 장군이 그의 한탄을 듣더니 뒤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2만이 넘는 병력이니까···.”
“그러게요. 아무리 쏴 죽여도 계속 튀어나오더라고요.”
그 이야기를 듣고 옆에 있던 서일 총사령관이 지 장군의 어깨를 툭하고 잡았다.
“뭘 그리 걱정하시오! 우리보다 끽해야 열 배쯤 많은 건데.”
“네? 그러니까 걱정이죠, 총사령관님.”
나 장군이 이상한 눈으로 서일 사령관을 바라봤지만, 그런 눈빛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밝은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 올렸다.
“우리는 일당백 아닌가요? 근데 겨우 열 배쯤이야 뭐.”
“하하. 사령관님 말씀이 맞습니다. 이 정도 병력 차이야 저희에겐 식은 죽 먹기죠!”
옆에서 그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행군하던 다른 독립군들도 절로 미소를 지었다. 이때, 나 장군이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빙 둘러봤다.
“그나저나 드디어, 다시 여기네요.”
북로군정서군 인원들은 며칠 전 지나쳤던 어랑촌에 다시 도달했다. 다들 걸음을 멈춰 비장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조만간 닥칠 그들의 운명을 맞이하고 있었다.
**[독립운동가 인물평전]**
박승환 (朴昇煥, 1869~1905)
평안북도 의주 출신으로, 대한제국 시기 시위대 제1연대장을 지낸 군인이다. 1905년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이에 강하게 반발하며 1905년 11월 30일 자결하였다. 그의 순국은 대한제국 군대와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이후 군인들의 자결과 항일 의병 운동에도 영향을 미쳤다. 일제는 그의 죽음을 은폐하려 했으나, 후일 항일 순국의 상징 인물로 추앙받게 된다.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