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 백운평계곡
**백운평 계곡**
“장군님, 이게 무슨 일이십니까? 괜찮으십니까?”
범석과 다른 장군들은 그 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온몸에 땀과 흙이 범벅이 돼 서 있기조차 힘들어 보이는 백야 장군이 서 있었다. 그들은 그 모습에 깜짝 놀라 모두 장군 쪽으로 뛰어갔다.
“아, 괜찮습니다. 실은 어젯밤에 보초를 서다가 갑자기 작전이 떠올라 급하게 대원 몇 명과 아래에 내려갔다 왔습니다.”
“아니, 무슨 일이길래 이렇게 말도 없이... 몰골이 말이 아니신데, 다치신 곳은 없으신 거··· 아니, 이건 무슨 냄새? 욱!”
서일 최고사령관이 말을 하다 말고 코를 막고 멈췄다. 독립운동하며 이런저런 것들에 웬만해선 무신경하다고 생각했는데,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정색하기는 처음이었다. 그것도 많은 대원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 백야 장군에게 말이다.
“아, 죄송합니다. 제게서 조금 떨어지세요. 악취가 심할 겁니다. 아··· 민망하네요. 죄송합니다.”
“혹시 일본군을 만나 도망치시다 이러신 건가요? 그들은 얼마나 가까이 왔나요?”
“아, 우선 아주 가까운 곳에 그들이 와 있습니다. 그들을 유인하려고 급히 말똥을 주변에 뿌리느라 꼴이 말이 아니네요.”
이 말을 듣자 사람들은 그의 현명함과 정성에 감탄하였다. ‘역시 장군님.’ 다들 이런 표정이었지만, 범석만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네? 말똥을 왜 뿌리신 거죠?”
“아, 적을 이쪽으로 유인하려고요. 따뜻한 배설물을 보면 우리가 방금 지나갔으리라 생각하고 급하게 이쪽으로 오지 않을까 해서요. 실은 그래서 저희도 좀···”
그의 황당한 고백에 대원들은 키득거렸다. 그렇지만 그런 웃음 속에도 그를 가볍게 여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 전투의 승리를 위해 이렇게 직접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에 모두가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역시 모두가 그를 따르고 존경하는 이유가 있구나.’라고 범석은 생각했다.
“그리고 오는 길에 주변에 거주하시는 분들이 저희를 돕겠다고 저희 있는 곳을 찾고 계셔서 길은 안내해 드리고 왔습니다. 이제 곧 올라오실 텐데··· 아, 저기 오시네요.”
이 말을 듣고 범석은 반가워 그들이 오는 쪽으로 뛰어갔다. 열 명 정도 아낙들이 먹을거리를 보자기에 담아 가져왔고, 서른 명 내외의 건장한 청·장년들이 곡괭이 등을 들고 올라왔다.
그는 한 명씩 감사의 인사를 하며 태석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는 끝내 오지 않았고, 범석은 큰 실망을 했다.
다들 다시 자리로 돌아갔고, 아낙들이 들고 온 보자기의 음식들을 조용히 분배했다. 주먹밥, 삶은 달걀, 감자 등을 사람들에게 나눠줬고, 대원들은 오랜만에 먹는 음식에 사기가 크게 올랐다.
배고픔을 달랜 부분도 컸지만, 그들의 싸움은 단지 일본군과 독립군의 대립이 아닌, 동포들도 우리 편이 되어 같이 지지해 주고 있다는 부분이 대원들의 열정에 다시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되었다.
두 시간쯤 흐른 뒤, 폭포 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풀의 서걱거리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일본군이 도달한 것이다.
그들은 백야 장군의 계략대로 동물의 배설물을 보고 이 근처에 독립군이 지나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고 판단, 최정예 부대를 선발대로 보낸 것이다.
그들은 치밀하면서도 아주 빠르게 움직였다.
“이쪽으로 지나간 흔적이 보입니다. 얼마 되지 않은 듯합니다.”
“그래, 최대한 빨리 따라잡아 이 빈대 같은 놈들을 전멸시켜 버리자.”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제 갈 수 있는 곳은 이 위쪽 방향뿐 없습니다.”
“그래서? 뭐가 이상하다는 건가?”
“저라면 여기서 매복을 할 것 같습니다. 지도로 보나 지금 이 지형으로 이렇게 보나 최적의 장소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 놈들이 미개하고 멍청하다는 거지··· 우리가 선진 문물을 활용하여 개화시켜 주겠단 건데, 이딴 짓거리나 하고 있··· 앗. 이런. 모두 퇴각하라!”
독립군이 지나간 지 얼마 안 되어 쫓아오는 것에만 급급했던 일본 장교는 갑자기 삼면이 막힌 지형을 보자마자 자신이 틀렸단 생각이 들어 퇴각 명령을 내렸다. 그때였다. 천둥과 같은 소리가 계곡 위쪽에서 터져 나왔다.
“전군, 공격하라!”
“공격하라!”
백야 장군의 함성 소리와 함께 매복해 있던 군인들이 일제히 일어나 소리쳤다. 그들의 함성 소리와 총소리, 그리고 아픔에 쓰러지는 신음 소리들로 더 이상 그 웅장했던 폭포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와!!!!!”
“계속 쏴라!”
“위쪽에 적이 있다. 많지 않은 숫자니 겁먹지 말고 조준해서 저격해라!”
“도망치지 마라! 당황하지 않고 한 놈씩 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는 싸움이다!”
비 오듯 쏟아지는 독립군의 총알 세례에 일본군들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들은 독립군을 너무 얕잡아봤다. 아주 오래되고 사정거리도 짧은 총 몇 자루로 버티던 몇 달 전 그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뚜두두두 뚜두두두두
펑!
독립군은 소총뿐 아니라 기관총까지 활용하여 이 계곡을 지배해 버렸다. 이건 그냥 전투가 아닌 거의 학살이나 다름없는 전투의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30분 정도 흘렀을까?
흐름상 전혀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일본군은 결국 도망치기로 결심했다.
“후퇴하라! 은폐 엄폐물을 잘 확보하여 자신의 목숨을 지켜라!”
“적이 도망친다! 저들을 추격하라! 숲으로 진격하라!”
독립군은 빠르게 계곡을 내려와 도망치는 적들을 쫓았다. 일본군들은 멀리 가지 못하고 대다수가 독립군에 의해 피를 흘리며 생을 마감하였다.
엄청난 승리였다. 일본과의 전쟁에서 최근 이렇게까지 승리한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큰 승리를 거두었다. 이 승리는 단순히 이번 한 번의 전투를 이긴 것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우리도 그들을 상대로 이길 수 있다는 확신, 그리고 이번 이곳 청산리에서의 다음 전투에서도 그들을 제압할 수 있겠다는 믿음을 심어준 전투였다. 또한, 일본군에게는 이곳 지형에 대한 걱정과 최정예 부대를 거의 전멸시키다시피 한 독립군의 위용에 두려움이 앞섰다.
“김좌진 장군님 만세! 만세!”
“이제 여기는 위치가 발각되었으니 저번에 봤던 어랑촌으로 이동하겠소. 오늘 전투는 다들 고생이 많았습니다.”
이런 환호에도 그는 이를 누리려 하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했다.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범석은 김좌진의 이런 모습에 또다시 감탄하였다. 오랜 시간을 봐왔지만, 보면 볼수록 사람으로서, 같은 독립운동을 하는 장군으로서, 보고 배울 게 참 많은 분이라는 생각이 다시 한번 들었다.
“장군님, 여러 가지로 이번 전쟁, 장군님께 많은 걸 배우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핫··· 무슨··· 이 말, 이번 전쟁이 끝난 후에 다시 말해주겠소? 이렇게 똥 뒤집어쓰고 들으니 좀 민망스럽구려.”
“네. 꼭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장군님께 다시 한번 감사를 표하겠습니다.”
“네, 네. 꼭 승리합시다. 그나저나 다들 당연히 그렇겠지만, 이번 승리로 절대 자만하면 안 됩니다. 이건 시작에 불과합니다.”
“그럼요. 알고 있습니다. 어랑촌은 여기완 다르게 공간이 넓고 언덕의 경사가 아주 가파른 수준은 아니라 이번과 같은 대승을 예상하기 어려울 텐데··· 걱정입니다.”
“맞아요. 아주 긴 싸움이 될 겁니다···”
승리의 기쁨도 잠시, 대원들은 백운평 계곡을 뒤로한 채 서둘러 다음 목적지로 이동하였다.
**간도의 한 작은 마을 (형원의 동네)**
동네 사람들이 김 씨네 집에 모여 앞으로 어찌해야 할지에 대해 한창 논의 중이었다.
“이번 전투에서 독립군이 무너진다면 우리는 또 일본의 지배 속에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맞아요. 이제는 어딜 더 갈 수도 없지 않습니까. 우리가 힘을 모아 독립군을 도와야 합니다.”
“맞습니다! 그들과 함께합시다. 무섭지만 그게 최선일 듯합니다.”
동네 사람들의 목소리는 독립군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확고해졌다. 그때, 동네 청년 하나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오늘 독립군과 일본군이 맞붙었는데, 우리가 대승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오! 김좌진 장군 만세! 독립군 만세!”
“만세! 만세!”
“이럴 때 우리도 도와 일본 놈들이 이 간도 땅에 다시는 발도 들이지 못하게 아작을 내줍시다.”
“그러시죠! 그럼 여기 계신 분들 모두 같이 올라가시는 거죠?”
이때, 태석이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모두의 이목이 그에게로 집중됐다.
“분위기를 깨서 죄송하지만, 전 그냥 집에 있겠습니다.”
“아니, 최 씨, 왜요? 같이하지 않고?”
“전쟁은 목숨을 걸고 해야 하는 겁니다. 근데 저희 애들은 아직 어린데, 혹시나 나가서 제가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그래서 전, 나라도 중요하지만 우선 집을 지키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그의 한마디에 갑자기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모두가 그 부분은 깊게 생각해보지 못한 듯, 좀 전처럼 누가 하나 먼저 나서서 전쟁에 참여하겠다고 말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한마디에 고조되었던 분위기가 확 바뀌자 형원은 아버지가 너무 부끄러웠다. 어느 누구보다 자랑스럽고 존경하는 아빠인데,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빠가 창피하고 미웠다.
그래서 너무 화가 나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런 그를 쫓아 나가려다 말고, 문 앞에서 태석이 다시 한번 사과를 했다.
“분위기를 이렇게 만들어 정말 죄송합니다. 그냥··· 드리고픈 말씀은··· 지금 그곳에서 싸우고 계신 분들은 정말 대단한 일을 하고 계신 겁니다. 그들은 단지 몸이 힘들고, 목숨을 바쳐 나라를 위해 싸우고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나 자신보다 더 소중해서 대신 죽으라면 죽어줄 수도 있을 만큼 사랑하는 가족을 잠시 마음속에서 제쳐 두고, 이 고통을 참아가며 저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전··· 아직··· 그 정도로 대단한 사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독립운동가 인물 평전]
서일 (徐一, 1868~1921)
함경북도 경흥 출신의 독립운동가로, 1910년 국권 피탈 후 만주로 망명해 대종교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1914년 중광단을 조직해 항일 무장투쟁의 기반을 마련했으며, 1919년 북로군정서를 창설해 초대 총재로 활동했다. 1920년 청산리대첩 당시 김좌진과 함께 큰 전과를 올렸다. 1921년 자유시 참변 이후 체포되어 옥중에서 순국했다.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