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 회피
**형원의 집**
집으로 씩씩대며 걸어 들어오는 형원의 모습을 보며 빨래를 널던 그의 엄마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들어오자마자 답답했는지 펌프에 마중물을 붓고 물을 길어 한 바가지 가득 떠서 벌컥벌컥 마셨다.
그가 물을 다시 기르려 할 때 태석이 뛰어왔다. 아직도 화가 나 있는 듯한 아들을 바라보며 아빠는 다정히 앉아주려 했지만 그는 아직 화가 덜 풀린 듯 이를 피했다.
“하지 마요!”
“우리 아드님이 왜 화가 나셨을까?”
“말 안 할래요.”
“형원아, 네가 충분히 화가 날 수도 있지만, 전쟁이란 건 그렇게 쉬운 게 아냐. 멋지기만 한 것도 아니고.”
이를 보고 있던 엄마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모임에서 무슨 일이 있으셨어요?”
“음.. 그게..”
“다른 아빠들은 다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나쁜 일본 놈들 혼내기 위해 전쟁에 참가한다는데 아빠만 같이 안 하겠다고 했어요.”
이야기를 듣고 내용을 짐작한 그녀는 형원을 달랬다.
“우리 아들이 그것 때문에 속상했구나. 근데 아빠도 다 우리 가족을 위해 그런 거야. 그러니 이런 거에 너무 속상해하지 마~”
“가족을 위한다면 더욱 전쟁에 나가 나쁜 놈들 물리쳐서 마을과 우리를 지켜야죠! 다들 용감하게 싸우자고 했는데 아빠만 겁쟁이 같았다니까요!”
그때, 주방에서 나무문이 ‘퍽’ 하고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밥을 하던 그의 누나 혜원이 주걱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뭐? 이 자슥이. 이쁘다고 오냐오냐 하니까 뭐라고? 이놈이 겁을 상실해부렀나?”
“어! 뭐야! 나 오늘 그런 장난받아줄 기분 아니라고~”
그러나 동생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는 밥풀이 덕지덕지 묻은 주걱을 들고 그에게 달려갔다. 그녀의 모습에 겁을 먹은 형원은 뒷걸음질을 쳤다.
“오지 마! 나 진짜 화낸다!”
“뭐라고? 아빠한테 겁쟁이? 이놈이 겁을 상실해부렀나? 넌 오늘 좀 맞자!”
“아씨! 저리 가라고!”
“왜? 겁도 없으신 분이 자꾸 도망을 가실까? 이리 안 와?”
결국 형원은 누나를 피해 집 밖으로 나갔고, 그녀도 그를 따라 나갔다. 둘의 모습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부부는 고개를 돌려 서로를 보며 웃음 지었다.
**청산리 일대 일본군 진영**
백운평에서 크게 패한 키타무라 소좌는 겨우 몇십 명의 병력만을 데리고 본진에 합류했다. 겨우 살아남은 병사들은 얼이 빠진 듯한 표정이었고, 그런 표정으로 복귀하는 걸 본 일본군은 사기가 크게 꺾였다.
“키타무라 소좌, 이게 무슨 일인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소장님. 제 목을 내어 놓겠습니다.”
“죄에 대해선 이 전투를 빨리 끝내고 자대에 복귀해서 묻겠다.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나 말해보거라.”
도모유키 소장은 냉철한 표정을 지으며 소좌를 다그쳤다. 전쟁에서 매번 이길 수는 없다. 그러나 왜 졌는지 분석하지 않는다면 다음에 똑같이 질 수 있다. 그래서 그는 어떤 연유로 천 명이 넘는 병사들을 잃고 돌아온 것인지가 궁금했다.
“변명 같지만, 그들의 무기가 바뀌었습니다. 저희 무기만큼은 아니지만 이전에 봐왔던 것과 다릅니다.”
“그게 다인가?”
“확실히 이곳 지형을 잘 알고 활용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제 불찰이지만, 놈들이 계곡에 매복해 있었어 순식간에 당했습니다.”
이야기를 들은 소장은 곰곰이 혼자 생각했다. 인원이 열 배 가까이 많다고 하나 자신들은 이곳이 처음이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다가는 크게 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를 모르고 이곳까지 따라 들어온 건 아니었다. 그들이 지형 이점을 활용하려 든다면 다른 방식으로 그들을 괴롭혀야 한다고 소장은 생각했다.
“알았다. 가서 각 군사들에게 전해라. 우리가 백두산의 지형을 잘 모르는 상황이고, 또한, 추격하는 위치인지라 지리적으로 우리가 불리한 전투를 치르는 것은 당연하다.”
소장은 탁자 쪽으로 다가가 그 위에 올려놓은 소총을 들어 훑어봤다.
“그러나 우리 무기는 그들보다 월등하다. 거기에 더 잘 훈련되어 있으며, 심지어 인원도 훨씬 많다. 그러니 어떤 경우라도 당황하지 마라.”
소총을 들고 있던 그는 총으로 탁자의 지도를 툭툭 치며 말을 이었다.
“이 지형을 보면 그들의 무기 상태와 실력으로는 이 먼 거리에서부터 우리를 공격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무리 그들이 골짜기 위에서 공격해도 우리가 용감하고 빠르게 적에게 뛰어가면 그들은 오히려 당황할 것이다. 우리는 이 방식으로 그들의 허를 찔러야 한다. 알겠나?”
“네, 알겠습니다.”
**형원의 집**
아이들이 모두 잠든 늦은 시간, 컴컴한 어둠 속에서 호롱불을 켜고 형원의 부모는 아이들의 옷을 수선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아이의 엄마는 자신의 남편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뭘 그렇게 보시는 거요. 얼굴 닳겠소.”
“아니에요.”
“이 나이를 먹었는데도 내가 아직 잘생겨 보이나 보오?”
“네~그럼요, 그럼요. 어디 나가 봐도 형원 아빠 인물만 한 사람이 없지요.”
아내의 장난에 태석은 기분이 좋아 어깨가 으쓱해졌다. 그는 들고 있던 바느질거리를 내려놓으며 아내 쪽으로 더 다가갔다.
“농은 그만하고, 하고픈 말을 꺼내보시구려.”
“무슨 말요···? 내 남편 잘생겨서 봤다니까요. 내가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어쩜 이리도 멋진 사람과 같이 살까 그런 생각하며 바라본 거예요.”
“적당히 하시오. 나도 이리저리 지나다니다 거울은 보니깐.”
“진짜예요. 나와 아이들 위해서 고향 버리고 타지에 와서 처음부터 시작하는 게 누구나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더구나 농사도 안 지어봤던 사람이···.”
그녀의 갑작스러운 말에 목이 메인 태석은 옆에 있던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근데, 여보, 너무 도망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우리를 지키기 위해 피하는 거 알고 있는데, 자신의 신념을 잃으면서까지 그러는 거 같아서 한편으로는 안쓰럽고 그래요.”
“음···.. 당신도 봤잖소. 우리 불쌍한 태규 형님···. 일본 놈들한테 저항하다가 어찌 되었는지.”
“알아요. 그래서 당신이 더욱 우리를 지키려 하는 걸···. 근데 당신과 형님의 노비문서를 불태워 없애고, 자기 자식처럼 키워주신 주인나리께 빚을 갚아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달고 살았잖아요. 그런 도련님의 부탁이라 지금 혼란스러운 것도 알고 있고요.”
“그렇지만···. 내 가족을 이 전쟁 속에 나 없이 위험에 놔둘 수는 없는 일이요. 이제 이 이야기는 그만합시다.”
그는 서둘러 이야기를 마치고자 불을 끄고 누웠다. 그런 그를 아내가 미안한 듯 잠시 바라보다가 누웠다.
“네. 아무튼 잊지 말아요. 당신이 어떤 선택을 하든 우리는 지지한다는 걸요.”
등을 돌려 누운 태석은 한참을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한동안 새로운 터전에 자리 잡으려 정신이 없어 잊고 있었던 예전 일들이 자꾸 생각났기 때문이다.
[독립운동가 인물 평전]
김경천 (金擎天, 1888~1942)
함경남도 북청 출신으로, 대한제국 시기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군사학교를 졸업한 후 러시아 육군 장교로 복무했다. 1919년 이후 상해 임시정부와 연결되어 만주와 연해주에서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하였으며, 대한독립군단의 총사령관을 맡아 활동했다. 1921년 자유시 참변 이후에도 독립운동을 지속했고, 1942년 소련 하바롭스크에서 순국하였다.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