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록]1946년, 한국이 일본을 점령했다

62화 - 읍소

by 팬터피

**어랑촌 - 독립군 진영**




수백 명의 군사들이 오랜 행군에 지쳐 겨우 한 걸음씩 발을 내딛고 있었다. 이런 지친 상황에도 배고프다는 신호는 신기하게도 우렁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이 나라의 마지막 희망이란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았기 때문이다.




“여깁니다.”




김좌진 장군이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쭉 돌아본 뒤 무겁게 말을 꺼냈다. 옆에 있던 서일 최고사령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요.”




같이 있던 나중소, 김규식도 같은 행동을 하자 그중 가장 막내인 이범석은 이 상황이 의아했다.




“여기가 어떻단 말씀이십니까?”




“우리가 영원히 잠들 수도 있는 곳?”




“중소 형님, 아니 참모장님, 무슨 농담을 그렇게 살벌하게 하십니까?”




“미안 미안. 전쟁을 치르기 좋은 장소란 말일세.”




김규식 대대장이 나중소 참모장에게 핀잔을 주자, 참모장은 씩 웃으며 용서를 구하는 모습에 언제 지쳤었냐는 듯 다른 사람들도 자연스레 미소를 지었다.




“지형을 보면 여기 위쪽에 매복을 하고, 우리를 추격하는 일본 놈들을 공격하면 그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할 것이네.”




“아까 오다 봤던 ‘ㄷ’ 자 모양의 계곡이요. 그쪽으로 처음에 유인해서 한 번 털어버리고, 최종적으로는 여기서 결판을 내는 양상이 되겠군요.”




대화를 가만히 지켜보던 서일 최고사령관이 말을 거들었다.




“그렇습니다. 이곳에서 그들은 절대 단 한 번도 그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싸울 수 없을 겁니다.”




“근데 처음 그 계곡에서는 모르겠지만, 여기는 공간이 넓게 펼쳐져 있고, 일본군은 저희보다 열 배 가까이 인원이 많은 상황인데... 좀 걱정되네요.”




“그러게요... 움직임이 빠르고 저격 능력이 좋은 친구 한두 명이 그들을 잘 흔들어준다면 딱 좋을 텐데... 한 번 잘 고민해서 배치해 보시죠.”




이 말을 듣자마자 이범석은 한 사람의 이름이 떠올랐다. 자신이 형처럼 따르던, 대한제국 군대에서 최고의 명사수 형제로 유명했던, 최. 태. 석.






**형원의 집**




모두가 잠든 야심한 밤, 시골 마을은 불빛이 하나도 없이 새까맣게 놓여 있었다.




이 어둠 속에서 총검으로 무장한 어떤 사내가 산에서 내려와 조용히 마을로 들어왔다. 그는 일본군의 제복을 입고 있었고, 더욱이 앞에 칼이 달려 있는 일본군의 장총을 등에 메고 있었다.




누가 봐도 수상한 차림의 그는 소리도 없이 형원의 집에 들어섰다.




“실례지만, 혹시 주무십니까?”




“······”




“최태석 형님 집 아닌가요?”




“이 늦은 밤에 누구십니까?”




“형님, 접니다 범석이.”




“아이구 도련님, 이 누추한 곳까지 어떻게 오셨습니까?”




형원의 아버지는 방문을 벌컥 열고 맨발로 마주 나와 그를 반겼다. 그리고 그의 앞에 다다르자마자 큰절을 올렸다.




“형님,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아직도 이렇게 절을 하세요. 얼른 일어나세요. 이러시면 제가 형수님 뵙기가 너무 민망합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무슨 말씀을요. 잘 지내셨습니까 도련님? 그나저나 이 먼 곳까지 어쩐 일이십니까?”




“논의드릴 일이 있어서 이 늦은 시간에 염치 불고하고 찾아왔습니다. 근데 죄송하지만, 들어가서 말씀 나눠도 괜찮으실까요?”




“아이구, 그럼요 그럼요. 제 집이 도련님 집이죠. 맘 편히 들어오십쇼.”




범석은 태석과 같이 집으로 들어가 그의 아내와 인사를 나누었다. 그녀는 오랜만에 만난 범석이 너무나 반가웠지만, 자고 있는 애들이 깰까 봐 작은 소리로 반가움을 표시했다.




“안녕하세요 도련님, 잘 지내셨어요?”




“그럼요. 저야 잘 지내고 있습니다. 얘가 형원이군요. 혜원이는 커가는 걸 봤는데 형원이는 갓난아이 때 이후로 처음이네요.”




“덕분에 잘 키우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자네는 도련님 오셨는데 뭐라도 안 내놓고 뭐 하나.”




“아유, 형님 무슨 말씀이세요. 시간도 늦었는데 빨리 갈게요.”




“간단히 차라도 가져올게요. 이야기 나누세요.”




“아, 형수님. 늦은 시간에 정말 죄송합니다.”




아내가 나가는 걸 보고 태석이 바로 말을 꺼냈다.




“도련님, 혹시 나라를 배신하신 겁니까? 어르신은 나라를 지키는 애국자셨는데, 어쩌자고 이런 길을 택하셨습니까?”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태석이 별말 없이 눈치만 보며 그를 바라봤고, 범석은 잠시 멀뚱멀뚱 그를 쳐다보다가 자신의 행색을 보고 ‘풋’ 하고 웃음을 뿜었다.




“아~ 이건 혹시나 여기 오다가 일본군에게 들킬까 봐 이렇게 입은 겁니다. 오해십니다, 형님! 절 그렇게 생각하셨다니... 실망입니다.”




“그쵸! 결국 독립군에 합류하신 거군요. 그들과 함께 올라오신 거죠?”




“네 맞습니다. 저도 형님들처럼 결국 군인이 되었습니다. 자랑스럽지 않으십니까?”




그는 딱히 답을 하지 않았다. 그런 그를 보며 예상했다는 듯이 범석은 웃으며 태석 쪽으로 다가가 그의 손을 꽉 잡았다.




“형님, 긴말하지 않겠습니다. 지금 저희 독립군에 형님 같은 명사수가 꼭 필요합니다.”




“······총을 놓은 지가 벌써 십 년이 넘었습니다.”




“백발백중 최가 형제, 어디 가겠습니까? 잡으면 또 예전처럼 금방 익숙해지실 겁니다.”




이 말에 실눈을 뜨고 상황을 지켜보던 형원의 눈이 번쩍 떠졌다. 그리고 들킬까 봐 다시 눈을 재빨리 감았다.




‘아빠가 백발백중? 군인? 이건 무슨 소리지? 그리고 저 사람은 누구지?’




그는 자는척하며 그들의 대화를 주의해서 계속 들었다.




“도련님, 아시겠지만, 전 더 이상 가족을 잃을 수 없습니다.”




“형님, 태규 형님 일은 제게도 큰 사건이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저도 독립운동을 해야겠다 마음먹은 거고요.”




“제가 감히 한 말씀드리자면, 도련님처럼 귀하신 분이 이 추운 곳까지 올라오셔서 노숙자처럼 계시는 걸 대감마님이 보신다면 얼마나 속상하시겠습니까?”




“형님, 저희 아버지가 입버릇처럼 하시던 말씀 잘 아시잖아요. 나라가 있어야 우리가 있는 겁니다. 거두절미하고, 이번에 독립군과 간도에 거주하는 동포들의 운명을 이 전쟁이 결정지을 것입니다. 형님처럼 골짜기 언덕 같은 곳에서 적의 움직임 및 공격을 방해하고 그들을 두렵게 할 총잡이가 필요합니다.”




“저도 대충 내용을 들었는데,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격입니다. 상대의 수가 너무 많습니다. 도련님도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고향으로 돌아가시지요. 저는 가족을 지키겠습니다.”




범석은 그 말을 듣고 답답한 마음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어릴 때 형님 두 분의 용맹함을 보고 자랐고, 친형제는 아니지만 진심으로 자랑스러웠습니다. 근데 오늘... 너무 실망스럽네요. 나라 등지고 천년만년 잘 사십쇼.”




좁혀지지 않는 의견 차이로 인해 둘은 오랜만에 만났음에도 서로를 따뜻하게 품지 못했다. 예전과 너무 달라진 태석의 반응에 실망한 범석은 짜증을 내며 문을 밖으로 나가기 위해 문을 열었다.






**[독립운동가 인물 평전]**




김규식 (金奎植, 1881~1950)




한국의 독립운동가이자 외교가, 정치가로, 상하이 임시정부의 외교 책임자이자 부주석을 지냈다.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 독립청원서를 전달하기 위해 파견되었으며, 이후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외무총장, 부주석 등을 맡아 외교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광복 후 좌우 합작운동에도 힘썼으며, 6.25 전쟁 중 납북되어 북에서 생을 마감했다. 1988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keyword
이전 01화[임진록]1946년, 한국이 일본을 점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