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록]1946년, 한국이 일본을 점령했다

61화 - 간도

by 팬터피

**간도 지방 (1919년)**




형원이 아홉 살이던 1919년, 그는 가족들과 함께 기차를 타고 배를 타고 또 기차를 타고, 난생처음 보는 허허벌판의 지역을 이동 중이었다.




짐을 바리바리 싸 들고 거의 보름 이상을 불편한 잠자리에, 제대로 된 밥도 못 먹고 돌아다닌 터라 어린 그는 너무나 힘이 들었다.




“아빠, 그냥 집으로 다시 돌아가면 안 돼요?”




“지금 우리나라는 나쁜 놈들이 쳐들어왔어. 그래서 위험할 수도 있으니 안전한 곳으로 가려는 거야. 아빤 가장으로서 너희들을 보호할 의무가 있으니까.”




오랫동안 기차를 타고 겨우 어느 역에 내렸을 때, 아직 가을인데도 기존에 느껴보지 못했던 추위가 몸속 깊숙이 스며들었다. 아이가 너무 추워하니 아버지가 또 이야기했다.




“여기는 우리 고향보다 더 북쪽에 있는 곳이야. 그래서 좀 추워. 근데 살다 보면 다 적응될 거다. 우리 아들은 강하니까! 그치?”




“그럼요, 아빠! 예전 살던 동네에서도 저보다 큰 형들도 제가 다 이겼어요~”




“그래, 그래. 항상 우리 가족을 아빠와 네가 지켜줘야 한단다. 알았지?”




“네!”




이야기를 듣던 형원의 누나 혜원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아버지를 꾸짖었다.




“아빠! 그렇게 말하면 어떡해요. 새로 이사 가는 곳에서도 맨날 쌈박질이나 하면 어쩌려고요.”




그녀는 동생과 대여섯 살 차이가 있어 꽤나 성숙했다. 큰 키에 얼굴이 하얗고 눈이 동그래서 지나가다 누가 보더라도 한 번씩 더 쳐다볼 정도의 미인이었다.




“그래, 누나 말이 맞다. 친구들과 싸움은 안 좋은 거니 가족을 지킬 때만 주먹을 써야 해! 그게 진짜 남자다.”




“네! 나쁜 놈들이 오면 제가 다 무찌를 테니 걱정 마세요!”




“아가야, 넌 아직 어리니까 누나처럼 크기 전까진 누나가 지켜줄게.”




“뭐래. 나도 다 컸다고! 아빠가 든 가방도 내가 들 수 있어.”




그러곤 냅다 아빠의 짐을 낚아채 들려했다. 그러나 무게가 꽤 나가는 탓에 쉽사리 들어 올리지 못하고 낑낑댔다. 그 모습이 귀여워 가족들은 키득키득 웃었다.






**간도의 한 마을 (1920년)**




그들은 한국인들이 많이 사는 마을에 터를 잡았다. 비슷한 시기에 타지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라 많아, 함께 고향을 그리워하며 서로를 도우며 열심히 그들의 터전을 일궜다.




“형원아, 여기 너가 좋아하는 옥수수 좀 가져가라.”




“네, 잘 먹겠습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옆집 아주머니가 옥수수 한 소쿠리를 건넸다. 다들 풍요롭진 않았지만, 온 마을이 한 가족처럼 따뜻하게 살고 있었다.




“엄마~ 용현이네 이모가 이거 먹으래요. 배고파요. 지금 쪄주시면 안 돼요?”




“이 돼지야. 엄마 밭에서 일하시다 방금 들어오셨어. 피곤하신데 쉬지도 못하고 또 그거 하셔야겠냐?”




“치~ 배고프니까 그러지.”




“이리 줘. 내가 쪄줄게.”




매일 투닥거렸지만 열 살짜리 작은 꼬마아이는 누나가 제일 좋았다.




이쁘게 말하진 않지만, 누나가 항상 자신을 잘 챙겨주고 있음을 너무나도 잘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형편이 좋지 않아 자기는 학교를 다니는데 누나는 학교도 못 다니고 농사를 돕는 걸 그는 어리지만 잘 알고 있어 미안함을 지니고 있었다.




“내가 커서 진짜 돈 많이 벌어서 우리 가족 큰 집에서 편안하게 배부르게 살 거니까 몇 년만 기다려 주세요!”




“야. 그럼 누나 방은 젤 큰 방으로 할래. 알겠지?”




“그건 안 돼. 젤 큰 방은 엄마 아빠 쓰셔야지.”




“음··· 그래, 뭐. 그럼 두 번째.”




“그래. 난 누나랑 같은 방 쓸 거니까.”




“뭐래. 방이 있는데 내가 왜 너랑 같이 방을 쓰냐?”




“그래야 내가 편하지. 이불도 깔아주지. 청소도 해주지. 물도 떠다 주지~”




“내가 뭐 니 종이냐. 이거나 먹어라!”




혜원이 귀여워하며 동생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둘의 알콩달콩 장난치는 모습을 보며 엄마는 흐뭇했다.




여기까지 오는 길이 참 멀고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맘 편히 있을 수 있음에 감사하며 참 잘 왔구나 하고 남편의 결정에 감사하고 스스로도 대견해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때까지 알지 못했다. 이곳에서 벌어질 끔찍한 일들을.




간도는 조선시대 이전부터 한민족의 터전이었다. 예전부터 터를 이루고 살아온 사람들과 형원의 가족처럼 일본의 압박에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이 비슷한 아픔을 공감하며 사는 우리 조상들의 땅이었다.




1919년 3월 1일 만세 운동 이후, 그 열기가 전국적으로 퍼져 방방곡곡에서 시위가 발생했다. 이에 일본군은 시위를 주도한 사람들 및 독립운동가들을 색출하기 위해 군인과 경찰들의 경계 수위를 높였다.




그 결과 많은 독립군들이 점점 일본의 군사적 압박에 밀려 북쪽으로 갔고, 간도 지역까지 밀려 그곳에서 터전을 이루어 지내고 있었다.




독립군이 눈엣가시 같았던 일본군은 기관총 등 최신 무기들로 무장하여 독립군을 간도까지 따라와 압박했다. 특히 1920년 6월, 봉오동 전투의 패배 후 일본군은 ‘간도 지역 불령선인 초토 계획’을 세우고 간도를 더욱 압박해 왔다.




독립군을 말살할 목적으로 두만강을 건너온 그들은 병력을 대거 투입하여 만반의 준비를 한다.




1920년 10월, 독립군에겐 더 후퇴할 수도, 추격을 따돌릴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 그들은 일본군과 전투를 감행한다. 그때 독립군은 2,000명 남짓이었고, 일본군은 20,000명이 넘었다. 누가 봐도 독립군에겐 버거운 상황이었다.






**형원의 집**




“형원아, 아빠 안에 계시냐?”




“네, 아까 들어오셔서 저녁 드시고 쉬고 계세요.”




“그래. 최 씨~ 나 왔네.”




늦은 저녁 시간, 누나가 새 손수건에 열심히 바느질하고 있는 걸 유심히 지켜보던 중, 마을 초입에 아버지랑 친하게 지내시는 두열이네 아버지가 헐레벌떡 집으로 와 그에게 말을 걸자 어리둥절해하며 대답을 했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이시지?”




“그러게. 급해 보이시던데.”




“근데 이거 어제 장터에서 산 새 거 아냐? 왜 꿰매?”




“꿰매는 거 아냐.”




“그럼?”




“비밀.”




그때, 방에서 두열이네 아저씨의 큰소리가 밖으로까지 새어 나왔다.




“아니, 이 전쟁에서 지면 우린 다시 일본 놈들 밑으로 들어가게 되는 거라니까!”




“그런다 해도 저 어린애들을 전쟁의 위험에 놔둘 순 없잖은가.”




“나도 애 키우는 아빠네. 어떤 게 애들을 지키는 건지 잘 생각해야지.”




“그래요, 여보. 이제 더 도망칠 곳도 없잖아요. 우리가 조금이라도 돕는 게 가족을 지키는 거 아닐까요?”




“아빠, 저도 도울게요. 저 돌팔매질도 잘하고, 총도 잘 쏠 자신 있어요!”




형원이 방문을 벌컥 열며 말했다. 아버지는 어린 그의 모습이 황당하기도 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대견함도 있었다.




“김 형, 미안하지만 난 관심 없다네. 조만간 여기를 떠나는 게 더 나은 건지 해야겠네. 이제 그만 돌아갑시다. 좀 더 고민.”




“내일 아침에 정자에서 다들 모여서 같이 이야기하기로 했으니 거기서 다시 이야기합시다.”




모두가 잠든 야심한 밤, 시골 마을은 불빛이 하나도 없이 새까맣게 놓여 있었다.




이 어둠 속에서 총검으로 무장한 어떤 사내가 산에서 내려와 조용히 마을로 들어왔다. 그는 일본군의 제복을 입고 있었고, 더욱이 앞에 칼이 달려 있는 일본군의 장총을 등에 메고 있었다.




누가 봐도 수상한 차림의 그는 소리도 없이 형원의 집에 들어섰다.






[독립운동가 인물 평전]




신돌석 (申乭石, 1878~1908)




경북 영덕 출신의 의병장으로, 을사늑약 체결 후 본격적인 항일무장투쟁을 이끈 인물이다. 1905년 의병을 일으켜 평민 신분으로서는 이례적으로 대규모 군세를 이끌며 강원·경북 지역 일본군과 헌병 경찰을 상대로 전과를 올렸다. 1907년 고종의 밀지로 정식 의병장에 임명되며 더욱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으나, 1908년 밀정의 배신으로 피살되었다. 정부는 1962년 그의 공훈을 기려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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