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30일, 토요일. 밖에 나왔을 뿐이다. 죽겠다. 와. 어깨를 누르고 눌러서 콘크리트 바닥 저 아래로 쑤셔 넣어버릴 듯한 압박감. 그 압박감을 더위가 만들어 냈다. 단순히 땀을 흘리는 수준이 아니다. 해도 해도 너무나도 뜨겁다. 걷기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힌다. 미친 날씨 아닌가?
에어컨을 켜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진심으로 열기 때문에 죽을 수도 있을 거 같은 그런 여름이 매해 돌아오면, 같이 찾아오는 게 있다. 바로 휴가다. 대학생 때 2달 가까이 쉬면서 즐겼던 방학이 그토록 그리워질 때 생일선물과 같이 반갑게 여겨졌던 휴가. 젠장. 직장인은 왜 방학이 없는가? 굵고 길게 쉴 수는 없단 말인가? 백수가 되지 않고서는?
하여튼 소중하고도 소중한 휴가를 활용하여 오랜만에 자유를 누려보곤 한다. 여수, 순천, 양양, 광안리, 해운대 등 국내 여행을 가기도, 코로나 덕분에 포기했던 해외여행을 떠나보기도, 집에서 에어컨 빵빵하게 틀어놓고 침대에 누워 있으면서 유튜브를 보기도 하며, 좀 비싸지만 가기만 하면 대접을 제대로 받는 호텔에서 호캉스를 누리는 등으로 말이다. 그런 여러 자유 속에서도 대체로 빠지지 않는 게 물놀이다. 물놀이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바다고.
6월 말에서 7월쯤, 뜨거운 열기가 모락모락 올라와 ‘아, 여름이구나!’ 하는 느낌 아닌 느낌이 찾아올 때면, 부산에서 살지 않는 이들이 꼭 물어보는 게 있다. 정말 매해 빠지지 않고 듣는 이 질문은 다음과 같다.
“부산 사람이면 바다 자주 보는 거 아이가?”
이것은 마치 부산 사람이면 돼지국밥 매일 하루에 한 그릇은 먹어야 할 거 같고, 부산의 상징, 롯데 자이언츠 경기 일주일에 10번은 필수로 봐야 하는듯한 말이며, 저녁마다 소주 한사바리에 회를 먹지 않으면 부산 사람 아닌가 하는 부담감을 화끈하게 선사한다고나 할까?
저 질문에 대한 답은 나중에 하는 걸로 하고.
하여튼, 부산 사람이라 그럴 수도 있긴 한데, 바다란 단어 자체가 나에겐 참 편안하게 다가온다.
나는 영도라는 작은 섬에서 태어났다. 덕분에 어릴 때부터 바다와 가깝게 지낼 수 있었다. 영도 태종대엔 곤포가든 수영장이 있었다. 정말 추억이다. 그곳에서 자주 놀았다. 미끄럼틀을 수없이 타면서 놀았던 기억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지금의 워터파크와 다르게, 바닷물을 사용하던 곳인지라 코에 물이 들어가면 완전히 작살난다. 짠맛을 입이 아닌 코로 느낀다고 생각해 보면 답이 바로 나올 거다. 어쨌든 바닷물을 사용하던 탓에 물을 매일매일 갈면서 깨끗한 환경을 유지하던 게 꽤 인상적이었다. 물론 그런 수영장을 가지 않고도 바닷가에서 놀 수 있기도 했지만.
영도에서 가장 가까운 커다란 시내는 바로 남포동이다. 그곳으로 가기 위해서 영도다리를 지나가야 했는데, 그 위를 수없이 왕복하면서 바다를 지겨울 정도로 봤다. 바다와 인접해 있던 남포동 자갈치 시장도 많이 갔으며, 아는 지인을 통해 싸면서도 푸짐한 회를 먹다 보면 하도 마주해서 무감하게만 느껴지던 바다가 어여쁘게 다가오더라.
최근에 뼈저리게 깨달은 사실이 있다.
휴가는 너무나도 좋다.
그중에서도 남들이 일할 때 노는 게 가장 즐겁다(?)는 것.
월요일 낮, 광안리 스타벅스에 앉아서 바다를 보는 재미, 혹시 아는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커피에 빵 한 조각 먹는 것밖에 없는데도, 유유자적하게 푸르른 물들을 보면서 여유를 온몸으로 만끽하는 그 행복함이야말로 휴가의 소중함을 온전히 알게 해주더라.
광안리 동백섬 인근에 있는 더베이 101에서 맥주 한잔하면서 지켜보는 밤바다.
술 좀 거나하게 마신 상태로 광안대교를 감싸는 바다를 바라보는 것 역시 나쁘지 않다.
화려하다는 말로는 부족한 수없이 다양한 불빛들이 바다를 찬란하게 꾸며내기 때문에.
그런 불빛 하나 없는, 꾸며내지 않은 바다 본판 그 자체는 과연 어떤 느낌일까?
그런 바다는 제주도에서 마주할 수 있었다. 어둡디어두운 바다 역시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검음으로 물든 밤 속. 고요함을 깨드리나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오히려 잔잔한 고요함을 더욱 지속하는 파도. 검은 밤하늘과 어두운 바다, 철썩철썩 파도의 음색을 들으며 모래사장에 앉아있었다. 시간이 흐르는 줄도 모르는 채로 말이다. 그냥 멍해질 수 있었기에. 머릿속에 가득 차서 정리조차 제대로 되지 않던 잡다한 생각들을 비우다 보니깐.
비가 와서 흐린 날씨에 바람까지 거칠게 불면서 어지러워지는 바다를 보고 있노라니, 가끔 고민의 늪에 빠져 괴로워하던 나를 보는 듯하여, 가만히 쳐다보게 되더라. 그 바다를 통해 나 자신에게 공감하게 되어서랄까?
여수 밤바다
이 조명에 담긴 아름다운 얘기가 있어
네게 들려주고파 전활 걸어 뭐하고 있냐고
나는 지금 여수 밤바다 여수 밤바다
아 아 아 아 아 아 아
너와 함께 걷고 싶다
이 바다를 너와 함께 걷고 싶어
이 거리를 너와 함께 걷고 싶다
이 바다를 너와 함께 걷고 싶어
버스커버스커의 [여수 밤바다]
(1205) 버스커 버스커 - 여수 밤바다 [가사/Lyrics] - YouTube
버스커버스커의 [여수 밤바다]와 함께 여수 밤바다 보고 있으면 끝!
뭐, 여기에 술과 함께라면 더 쥑이고!
소주를 먹으면서 보는 붉은 제주도 바다도 기가 막힌다. 술이 더 들어가게 되더라.
제주도의 에메랄드 바다 역시 이쁘다. 커피 한잔과 함께 보면 낭만 그 자체다.
이제 슬슬 휴가를 떠나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는 시기다.
이때, 조금이라도 빨리 바다 한 번 보러 가는 게 어떻겠는가?
부산 바다, 제주도 바다, 여수 바다 등등 국내, 국외 가리지 말고 말이다.
가만히 보기도 하고, 들어가기도 하며, 근처를 걸어도 좋으니,
더 뜨거워지기 전에, 사람이 가득해지기 전에 바다 한 번 가보는 거 어떤가?
PS.
“부산 사람이면 바다 자주 보는 거 아이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이제 말하고자 한다.
정답은 “딱히 그렇지도 않다”는 거다.
부산도 생각보다 넓어서 바닷가 근처에서 사는 게 아니라면, 자주 보진 못한다.
바다를 보러 가는 데 꽤 시간 걸리기 때문에, 가는 거 자체가 귀찮기도 하고.
그래서 나중에는 광안리, 해운대 쪽에서 살고 싶긴 하다.
나도 바다를 좋아하긴 하니깐.
돈만 있으면 지금이라도 당장 그곳들에서 살 텐데.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