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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글쓸러 Aug 15. 2024

이제야 답합니다.

편지에 대한 설레는 감정을 담아.


 오랜만에 편지를 받아 설렙니다. 편지는 저를 두근거리게 만듭니다. 짝사랑하던 친구가 건네주던 편지가 가장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죠. 하물며, 드리님에게 편지를 받는다? 두근거리던 심장이 쿵쾅쿵쾅 뜁니다. 예상치 못한 이에게서 받은 깜짝선물이라 그런 듯합니다. 심장아! 나대지 마!     


 솔직히 놀랐습니다. 이 글을 읽기 직전 예능 [최걍야구]를 보고 있었거든요. 시즌 동안 총 31번 경기를 하며, 승률 7할을 달성하지 못하면 폐지되는 예능입니다. 마침, 31번째 경기였고 상대는 대학리그 올스타였으며 이걸 이겨야만 승률 7할을 달성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손에서 땀이 나도록 집중해서 보다, 문뜩 스마트폰을 켜 앱 하나를 실행시켰죠. [컴투스 프로야구 2024]입니다. 야구를 보다가 게임을 하고 싶어지는 건 당연한 일 아닐까요? 참고로 이 게임에서 제 라인업은 다음과 같습니다.     


1번 김주찬, 2번 박기혁, 3번 강민호, 4번 이대호, 5번 손아섭, 6번 이정후, 7번 윤동희, 8번 안치홍, 9번 황재균. 그리고 제1선발은 투수 장원준.      


(왼쪽) 게임 라인업_출처, 컴투스프로야구2024 (오른쪽) 막강한 라인업이 41대 0을 해내다

     

 근본의 3, 4, 5번은 게임을 할 때마다 든든합니다. 롯데 자이언츠의 황금기를 책임졌던 이들이기 때문이죠. 참고로, 제 세계관에선 민호 형과 아섭이 형이 홈런 개수가 제일 많고, 대호 형은 홈런이 매우 적지만 장타는 1등입니다. 제 능력이 부족하여 홈런왕을 달성하지 못한 점을 대호 형님께 사과드립니다. 대호형, 이 편지를 보는 날이 꼭 왔으면 좋겠네요. 그런 날이 찾아오면, 형님이 타격 7관왕을 이룬 것처럼, 게임에서도 그 꿈을 이뤄드릴게요. 이정후 선수는 2024년부터 어찌 되었든 자이언츠를 가긴 하니깐(?) 라인업에 넣어봤습니다. 이왕이면 롯데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8번 형님은 2024년부터 다른 구단 소속이 되어 마음 아픕니다. 직관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던 응원가를 부를 수 있는 선수였는데 말이죠.     


 드리님, 여기까지 읽고 바로 그 생각이 들었을 겁니다. 야구도 평소에 많이 보고, 예능도 야구 관련을 챙겨보면서, 게임도 야구를 파고든다? 주니는 야구에 대해 역시 딥(deep)하고 헤비(heavy)하구나! 근데 저는 의문입니다. 이 정도는 다들 기본 아닌가요?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최동원 선수의 분투 덕분에 4승 1패라는 결과로 롯데 자이언츠가 우승했다고. 그 시절의 자이언츠 이야기를 반복하며 말씀하시는 아버지. 인터넷 예약 따윈 할 수 없던 시절, 밤을 새워서라도 줄 서서 야구장에 들어가 롯데를 마주하던 어머니. 그런 골수팬 두 분에 이끌려 야구장을 가며 야구에 대한 조기 교육을 받았는데, 아마 지금의 대치동 교육의 열정 정도로 추측합니다. 덕분에, 시작은 미비했지만, 끝은 창대한 롯데 자이언츠 DNA를 지닌 야구 골수팬으로 재탄생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이 정도는 부산의 롯데자이언츠 팬들이라면 기본을 깔고 가는 게 아닌지요? 중학교 의무 교육이 필수인 것처럼 말입니다.      


예전 롯데_출처, 네이버 블로그, 행복한 인생을 위해


 주입식 교육의 폐해 탓인지, 어릴 땐 야구에 몰입하진 않았습니다. 야구의 흐름은 전체적으로 이해하고 있었고, 간간이 직관하러 갔던 정도입니다. 주입식 교육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사례로 볼 수 있겠으나, 결국엔 아니라는 사실을 드리님이나 저나 알고 있죠. 딥(deep)하고 헤비(heavy)한 수준에 이를 정도로 직관에 몰두한 건 2022년입니다. 그때의 저는 진짜 사직 야구장에 뼈를 묻을 각오가 되어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야구에 미쳤죠. 그 모든 게 사실 큰 계기가 있어선 아닙니다. 딱 하나, 직장에서 걸어서 20분 거리에 야구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날이 떠오릅니다. 2022년 5월 17일 화요일, 기아와의 경기였습니다. 코로나19라는 전염병으로 야외를 편하게 나왔던 기억이 드물었기에, 이번 직관 자체에 너무나도 행복했죠. 그런 마음에 야구를 보는 것조차도 행복했어요. 아니, 행복할 ‘줄’ 알았습니다. 2022년 첫 직관은 패배했습니다. 그래, 질 수도 있지. 다음엔 이기겠지! 그렇게 편한 마음을 먹었어야 했는데, 저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제 성격상 꽂히는 게 있으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끝장을 봐야 합니다만, 하필 그게 직관 승리 목격이 되었죠. 비극의 시작이었습니다. 8888577의 성적으로 가을에 야구를 못하던 롯데를 가을 야구로 이끌었던 제리 로이스터 감독님이 선수들에게 강조하던 말이 있습니다. “No Fear” 그렇습니다. 저는 제리 로이스터 감독님의 ‘No Fear’ 정신을 2022년도의 제가 계승하고 만 겁니다. 야구 직관에 “패배가 있을지언정, 언젠가는 승리를 마주하리라”는 무모한 용기를 퍼부으며, 직관의 비극이 시작되었습니다. 로이스터 감독님이 제 이야기를 들으면 왠지 이렇게 말하실 거 같습니다. “주니, 내가 말한 건 그게 아닌 거 같은데???” (참고로 8888577은 7년간 롯데의 등수이며, 당시 한국 야구의 구단은 총 8개였습니다.)


롯데의 전설, 제리 로이스터 감독님 _ 출처, 마이데일리


 롯데를 가을야구로 보낼 수 있었던 “No Fear” 정신을 야구 “직관”에 쏟은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2022년, 20전 7승 13패

 2023년, 7전 6승 1패      


 근 2년 사이에 야구장 참 열심히 다녔습니다. 이와 관련된 자세한 이야기는 앞으로 지긋지긋하게 들려드릴 예정입니다. 주식의 빨간 곡선과 파란 곡선을 오가듯 감정의 극과 극을 왔다 갔다 반복하는 롯데 자이언츠 DNA를 가진, 부산 야구에 뼈를 묻었다고 자부할 수 있는 골수팬의 아들이 쓰는, 어릴 때 아마도 롯데의 우승을 목격했으나 죽기 전까지 과연 볼 수 있을지 궁금해하는, 소원을 하나 빌 수 있다면 로또 1등보다도 롯데 자이언츠 우승을 바라는 저의 이야기, 궁금하시죠? (참고로 롯데 자이언츠는 1984년, 1992년 우승을 했던 팀으로, 2000년도에 들어선 우승을 한 경험이 없는 팀이랍니다. 그래서 우승하는 걸 보고 싶습니다)     


 야구에 빠지게 된 건 그 자체가 인생이란 생각이 들어서이기도 합니다. 단 하나의 베이스로 어떻게든 나아가기 위해 타자들은 때리고 달리고 번트를 댑니다. 투수들은 던지고 또 던져서 점수를 내주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고요. 그게 지금 우리의 모습 같았습니다. 매일 매일 주어진 일에 치열하게 몰두하여, 맡은바 해내고, 실패하여 기가 죽기도, 때론 힘들어하는 그 모든 게 야구와 같아 보였습니다. 비록 패배하더라도, 이후 경기에선 다시 일어나 어떻게든 이겨내는 야구가 전 좋았습니다.     


출처, Pixabay


 2023년 연말에 그런 생각도 들더군요. 인생의 축소판인 야구. 저의 2023년을 야구에 비유하자면 과연 어디쯤 도달했을까요? ‘올해는 다르다’면서 결국은 결과가 작년과 다를 바 없이, 2017년을 제외하고 2013년 이후부터 포스트시즌 진출하지 못하며 제자리에 계속 머무르는 롯데 자이언츠였을까요? 아니면 결국엔 32년 만에 우승에 성공한 LG 트윈스와 같을까요?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야구는 9회 말 2아웃이 시작인 것처럼, 제 인생은 이제 본격적으로 돌입했기 때문이죠. 이에 대한 결론은 언젠가는 꼭 내리겠습니다. 단지, 지금은 때가 아닌 듯합니다.      


 올해의 제 목표 역시 글쓰기입니다. 작년엔 1주일에 1편씩 글 쓰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래서 올해 역시 그 목표를 꾸준히 해보고자 합니다. 하지만 목표를 똑같이 설정하면 발전이 없겠죠? 그래서 전 드리님의 의견을 반영하고자 합니다. 글을 같이 써보는 거죠. 편지로 말입니다. 혼자가 아닌 함께 쓴다고 생각하니, 2024년 초부터 설레기 시작하는군요. 제 이야기도 다루겠지만, 때놓으래야 때놓을 수 없는 야구에 대해 이리저리 늘어놓겠죠. 사실 야구 잘 모르겠습니다. 늘 어려운 존재입니다. 그걸 알고 싶어서, 가끔 야구 선수 하고 싶다는 생각도 하지만, 그건 다음 생에 도전하겠습니다. 대신 드리님과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야구가 무엇인지 좀 더 알아가고자 합니다.      


출처, Pixabay


 불러주신 필명보다도 편지를 반복해서 읽고 고민한 끝에 이 결정을 내려, 이제야 답합니다. 드리님. 인사가 많이 늦었습니다. Happy New year.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요. 내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제 필명은 주니입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쌀이 되든, 드리와 야구 이야기를 치열하게 나누기로 한 주니 올림




[이전 편지]

http://brunch.co.kr/@drikim/18


[이후 답신]

http://brunch.co.kr/@drikim/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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