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J effect를 소개합니다.
안녕하세요 드리님. 결국 가셨군요. 안 가는 걸 추천해 드렸지만 말입니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은 그렇지 못하는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저 역시 사직야구장으로 늘 향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직관에서의 패배는 생각보다 쓰라립니다. 진 뒤, 야구장에서 나와 사직역까지 걸어갈 때, 어깨도 무겁지만 제 발걸음은 중력의 기운을 100배 이상 받는 듯합니다. 무겁습니다. 이렇게까지 발을 들기 힘든가 싶을 정도로 말이죠. 그 와중에 역을 향하는 수많은 롯데 팬의 눈을 마주치다 보면, 역시 같은 마음인 걸 알아차리게 됩니다. 그렇기에 이번 직관에서 느낀 기분, 누구보다 잘 압니다. 힘드셨죠?
일단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드리님 덕분에 배드민턴 규칙을 알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그냥 막 치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렇게 또 하나 배워가네요. 대각선으로 서브를 넣어야 한다는 규칙은 탁구와 같군요. 재밌을 듯합니다. 바지 무릎 쪽에 구멍이 날 정도로 열심히, 그것도 무려 세 시간이나 배드민턴을 쳤다는 게 놀랍기 그지없습니다. 대단합니다. 기타 치기, 글쓰기, 거기에 배드민턴까지! 늘 새로운 취미를 찾고 즐기시는 게 저랑은 확실히 다르네요. 그나저나 여기서 2, 3개 더 취미를 늘리신다면 주무실 시간이 없겠는데요? 저는 다릅니다. 취미가 확고합니다. 읽는 걸 좋아하기에 종이책을 보거나, 웹소설을 보고, 운동하는 걸 즐기기에 헬스 가는 걸 꾸준히 합니다. 그러나 새로운 걸 굳이 찾진 않습니다. 어느 순간 꽂히는 게 있으면 하기 때문이죠. 그게 언제일지는 저조차도 모릅니다. 주위에서 골프하자고 꼬드겨도 전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고요? 별로 끌리지 않았기 때문이죠. 저는 지금 하는 것들을 온전히 많이 즐기려고 합니다. 새롭게 넓혀가는 것보단, 제가 하고자 하는 부분에 대해 깊숙이 파고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드리님이 듣고 싶으셨던 저를 알기 위한 질문인 ‘최근에 관심이 생긴 분야’에 대한 답변은 ‘따로 없다’고 전해드릴 수밖에 없다는 점, 미안하게 여기는 바입니다.
얼마나 깊이 제 취미를 즐기느냐! 헬스는 가능하면 일주일에 4~5번은 어떻게든 가려고 합니다. 웹소설은 시간이 나면 보는 편이지만, 얼마나 많이 보는지는 이전 편지로 말씀드렸습니다. 독서 또한 시간 날 때마다 합니다. 5년 전 공중보건의사 때부터 지금까지 매주 한 권 이상은 어떻게든 읽자! 그리고 책 읽은 내용을 잊어버리지 않고자 독서 기록을 정리하자! 이런 마음으로 매주 살아오고 있습니다. 시간이 흘러, 모아놓은 독서 기록만 200개가 넘어가네요. 스스로가 자랑스럽다고 느끼는 대목입니다. 물론 완벽히 지키지는 못합니다. 독서를 왜 하냐고 물어본다면, 제 삶이 달라지는 걸 서서히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자 한 명이 자신이 알고 있는 주제에 대해 깊게 분석한 내용을 담아놓은 게 책 아닙니까? 저자의 내공 그 자체가 온전히 존재한다고 봐야죠. 이런 매력에 전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저 역시 책을 쓰는 작가가 된 게 아닌가 합니다.
매주 읽던 책 중에 드리님께 추천하고 싶은 책 한 권 있습니다. 바로 <야구잡썰>입니다. 롯데를 비롯하여 삼성, SSG, NC, KIA 등을 좋아하는 팬들이 모여 쓴 책인데요. 야구 덕후들이 모여 쓴 책이라 공감 가는 바가 너무 많았습니다. 솔직히, 저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이분들에게 헤비하다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나 해요. 저는 오히려 일반 팬(?)에 불과했습니다. <야구잡썰>의 내용 중 롯데와 관련된 내용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대표적인 내용을 한 번 언급할게요.
롯데 자이언츠는 1998년부터 2023년까지 정규리그 총 3,511경기에서 ‘1,597승 79무 1,835패’라는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내 야구 인생 한정) 통산 승률은 45.4%. 승리할 확률보다 패배할 확률이 더 높은 팀이었다는 건 놀랍지 않았다. 다만, 그토록 많은 경기를 보고 화를 내며 지금까지도 견디고 있는 나 자신이 놀라웠고, 나와 같이 여전히 자이언츠를 붙잡고 있는 팬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어졌다.
<야구잡썰 21쪽>
3점 주면, 4점 내고 이기는 팀. 내게 자이언츠는 그런 팀이다. 이런 기조가 유지되다 보니 경기를 내어주는 양상이 늘 비슷했다. 경기 중반 힘이 떨어진 선발 투수가 불펜 투수에게 공을 넘겨주면 맥없이 동점을 허용하며 흐름을 내어준다. 이 과정에서 긴장한 투수의 폭투와, 후반에 접어들며 체력과 집중력이 떨어진 수비진의 에러를 꽤 높은 확률로 볼 수 있다. 대개는 수비가 좋으면 폭투가, 투수가 잘하면 에러가 나온다(운이 좋으면 둘 다 볼 수 있다). 이 에러가 아주 요란하고, 때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플레이라는 점에서 더 매력(?)적이다.
사실 불펜 투수진이 늘 나쁜 건 아니었다. 다만 감독이 믿는 선수가 한정적이라는 것, 그런 선수들이 팀 승률 5할이 왔다갔다 하는 상황속에 이기든 지든 많은 경기에 등판하다 퍼지는 게 문제였다. 역사적으로 이기는 시즌을 많이 경험하지 못한 탓에 이런 악순환이 계속된다는 건 더 큰 문제다.
더 재밌는 건 경기 후반 상대에게 끌려갈 때의 패턴이다. 점수를 내어주면 심리적 안정감이 생기는지 자이언츠 타자들은 경기 후반 야금야금 점수를 따라간다. 특히, 9회엔 동점 주자까지 출루에 성공하는 걸 자주 볼 수 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다. 거기서 경기를 절대로 뒤집지 않는다. 지겨운 작전 실패, 안일한 주루사 등 흐름을 내어주는 각종 기이한 행위와 기본기 없는 플레이로 흐름을 가져오는 데 끝내 실패한다. 따라는 가지만 역전하지 않는 희망 고문형 페이스 메이커. 과거에 자이언츠는 새로운 구단 창단에 반대했었고, 그 이유 중 하나가 ‘상하위권 구단간 전력 불균형’이었다고 한다. 놀라운 선견지명이다. 구단이 늘어나면서 우리가 하위권에 늘 상주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때부터 구단 관계자들은 우리의 미래를 알고 있었던 걸까.
한 경기뿐만이 아니라 전체 시즌에도 뚜렷한 경향성이 있다. 우선, 자이언츠는 타 팀보다 시즌이 일찍 끝나 스토브리그를 맞이한다. 이 리그에선 자이언츠가 왕이다. 새 단장과 감독을 선임하고, 대형 FA도 자주 영입한다. 그때만큼은 ‘롯데 우승!’을 외치지만, 시즌이 시작하면 깨닫는다. 영입한 선수들의 포지션 중복 등의 이유로 생각보다 전력 상승의 효과를 많이 가져오지 못했다는 걸. 그래도 시범 경기까지는 왕좌를 지킨다. 자이언츠는 2023년까지 통산 시범 경기에서 11회 (최다) 우승한 강팀이다. 개막 후에도 이 분위기를 이어 좋은 성적을 기록하고, 봄에 롯데의 상승세를 조명하는 미디어의 기사가 쏟아진다. 생각해보니 시즌 초반에 롯데를 많이 만나는 팀은 시즌 후반에 롯데를 많이 만나는 팀보다 불리한 것 같다. 이건 형평성에 어긋나는 거 아닌가? 그러니까 야구는 봄에만 하자.
여름에 본격적인 하락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다. 얕은 뎁스가 주전 과부하로 이어지고, 이게 수비의 불안으로 이어져 좋지 않은 분위기를 자주 만든다. 한 시즌을 우수하게 운영하고 경험한 선수와 코치진이 적어 더 급격히 흔들리는 경향을 보인다. 물론 때로는 연승도 한다. 하지만 방심하지 말자. 자이언츠는 연승한 만큼 꼭 연패를 해내고야 마는 팀이다. 그렇게 5강 밖으로 밀려나면 다시는 그 안에 들어가지 못한다. 가을바람이 약하게 불 때 갑작스러운 연승과 함께 ‘5위와 1~2게임 차’까지 좁히며 ‘가을 야구’란 단어를 소환하지만, 그런 상승세에 뒤이은 익숙한 연패로 제자리걸음을 한다. 이 시점에 이르면 롯데 담당 기자들은 경우의 수를 논하며 기적의 수학자가 된다. 그런데 이제는 우리도 안다. ‘가네, 마네’하면 결국 못 간다는 걸.
<야구잡썰 24-27쪽>
무엇보다 가장 마음 깊이 와닿았던 내용은 바로 이겁니다.
“올해는 다르다!” 새 시즌이 시작하기 직전에 주문처럼 외우는 말이다. 사실, 생각해 보면 늘 달랐다. 롯데는 매년 새로운 방법으로 팬들을 힘들게 했고,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실망을 안겼다. 자주 이름이 바뀌는 감독들의 개성 있는 운영은 기본이며, 세부적으로 보면 ‘볼보이에게 공 토스하기’, ‘끝내기 낫아웃’, ‘23대0’ 등등 전대미문의 사건이 참 많았다. 자이언츠의 팬으로 장수하려면 투수의 구속보다 본인의 혈압을 더 잘 체크할 수 있어야 한다.
정리하자면 내가 여태 목격한 이 팀은 승리를 향한 열정이 있는 매력적인 팀이지만, 동시에 한 번 실수하면 끝없이 추락하는 환장할 팀이었다. 이건 단순히 못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런 영역은 진작에 넘어섰다. 끊임없이 새롭게 시즌을 망치는 방법을 찾는다는 점에서 롯데 자이언츠는 프로 스포츠계의 이단아, 마에스트로다.
<야구잡썰 16, 17쪽>
롯데 자이언츠 팬들이라면 누구나 확 몰입되는 내용들이지만, 저는 그 이상입니다. 저 글과 제가 100% 하나가 되는 기분이랄까요?
갑작스럽지만 다른 이야기로 전환하겠습니다. 친한 누나 한 명 있어요. 그녀의 이름을 MJ라고 할게요. 학교 다닐 때 동아리 활동을 통해 친해졌고, 병원 실습 또한 같은 조로 배정되어 지냈으며, 지금까지도 연락을 자주 하는 친누나 같은 사람이죠. 소중하고 아끼는 누나이지만, 아쉬운 점이 딱 하나 있으니! 어떤 일이든 잘 풀리지 않는다고나 할까요? 남에겐 금방 해결되는 일이 MJ에게만 가면 유난히 어려워지는 경향이 있어요. 게임으로 비유하겠습니다. 그녀가 레벨 1의 초보자 사냥터를 가면, 그곳은 갑자기 고레벨 하드 모드 사냥터로 변모한다고 할 수 있겠네요. 아마 이런 비유를 MJ가 듣게 된다면 등짝 스매시를 시전하겠지만, 뭐 어떤가요? 사실인걸. 가끔 그런 생각도 얼핏 듭니다. 이 누나, 전생에 죄를 많이 지었나? 무슨 업보를 가지고 있기에……?
안 그래도 거대하고 웅장한 MJ의 업보(?)를 더 강화하는 존재가 있었으니, 그게 바로 접니다. 상극 중의 상극이죠. 누나가 환자를 대상으로 초진을 보는 날이었습니다. 저와 같이 실습을 돌 때면, 이상하게도(?) 환자 수가 기하급수로 늘어납니다. 성격으로 안 맞는 건 분명히 아니거든요? 근데 저와 마주하면 풀리지 않던 일들이 더 해결되지 않고, 심지어 비극(?)이 찾아오는 상황이 빈번하게 일어나요. 조별 과제 때도 그래요. 공정해지고자 제비뽑기하더라도 결과는 늘 한결같습니다. 저는 편한(?) 거. MJ는 어렵고 고통(?)스러운 것들. 제비뽑기 따윈 다시 하지 않을 거라고 포효하던 누나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한 학기가 흘러, 누나와 헤어지고 다시 마주한 건 무려 6개월 뒤였어요. 두 조가 합동으로 도는 병원 실습 때죠. MJ가 웃으면서 말하더라고요. “네가 없으니깐 모든 게 잘 풀렸어. 너만 있으면 문제야 문제.” 보통은 이 말을 듣고 섭섭하다는 감정이 들 수도 있겠지만, 전혀 그러지 않았습니다.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으니까요! 여섯 달 만에 만난 저와 함께 보냈던 한 달의 시간이 그녀에겐 또다시 비극이었죠. 본의 아니게 말이죠. 제비뽑기도, 가위바위보도, 그 흔한 커피 한 잔 걸고 하는 내기에서조차 말이에요. 모든 게 파국이었죠. 저 말고요. 그 누나한테요.
학교를 졸업하고 각자가 선택한 길을 걸었으며, 코로나19라는 상황 덕분에 MJ와 다시 만나게 된 건 약 4년 만이었어요. 그것도 야구장에서 말입니다. 그날은 2022년 7월 24일, 기아와의 경기 날이었어요. 그날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많은 것이 인상 깊었던 날이었기에 말입니다. 무려 9가지가 기억나요.
1. 전생에 죄라도 지은 탓인지 수많은 일들이 잘 풀리지 않았던 플루토늄 같았던 우리 MJ! 우라늄의 저와 만나 결국 증명했습니다. 여전히 우리는 상극의 조합이라는 걸요. 야구장을 터트렸어요. 23:0으로 말이죠
2. 5대0일 때부터 ‘어디까지 가나 보자!’라며 해탈의 경지에 이르셨다는 성불 선생님! 그런 그녀가 그물망으로 올라가야겠다고 분노를 터트리고 맙니다. 23점 차로 해탈과 성불을 작살내버린 롯데입니다.
3. 기아 안타에 열광하며 기아의 응원가마저 따라 부르는 롯데 팬들. 부산 갈매기를 불러야 하는데, 남행 열차를 같이 부르는 모습들까지 보여줍니다.
4. 기아를 응원하는 롯데 팬들을 말리는 조 단장님. 그러면 안 된다. 선수들을 응원하자! 그가 말하고 있는 사이, 저 멀리 공이 날아가고 있었죠. 홈런이었던 겁니다. 그 이후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어깨가 그 어느 때보다도 무거워 보였던 날이죠.
5. 그날은 외국인 타자 잭 렉스의 데뷔 날입니다. 데뷔 신고식이 너무나도 화끈했어요. 렉스는 아마 그날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을까요?
6. 이 와중에 안타를 26개 내줬죠. 우리는 안타 5개에 그쳤어요.
7. KBO 한 경기 최다 득점 차 기록을 세운 날이에요. 오우.
8. 수많은 일들이 일어난 역사의 한가운데에 제가 있었네요?
9. 이렇게 직관 패배가 하나 더 늘어나 8전 1승 7패가 되었어요. 허허허.
놀랄 게 너무나도 많은 고된 하루였어요. <야구잡썰>에서 말한 “한 번 실수하면 끝없이 추락하는 환장할 팀이었다.”라는 말이 참 맞는 말이네요. <야구잡썰> 이야기하다가 친한 누나 MJ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책에 대한 공감과 더불어, 2024년 4월 10일 역시 그녀와 함께 직관에 도전했기 때문입니다.
안타와 홈런으로 1회 말 2:0으로 시작하여, 2회 말엔 3:0. 3회 말엔 4:0이 되었죠. 놀라웠습니다. 초반부터 4:0이라니! 그러나 상대 팀 삼성이 무섭게 따라오더라고요. 4회 초에 1점을 내고, 6회 초엔 구자욱의 우측 2점 홈런으로 4:3까지 추격했습니다. 6회 말에 안타, 볼넷, 안타, 도루, 안타 등 화끈한 공격으로 롯데 자이언츠가 3점을 더 벌렸습니다. 스코어 7:3까지 되던 엄청나게 재밌던 경기였죠. 그리고 롯데의 미래, 전미르가 등판해 무실점 4개의 탈삼진까지 달성했죠. 행복한 스토리는 거기까지였습니다. 7회 초 7:4. 8회 초 7:7. 결국 동점이 되죠. 10회 초, 연속 안타에 우측 희생 플라이로 8:7. 그다음 차례였던 삼성 김영웅의 우측 담장을 넘어가는 홈런으로 10:7. 그렇게 게임은 끝나고 말았습니다.
이제야 고백하건대, MJ가 야구장에 가면 발생하는 절대적인 법칙 2가지가 있습니다. 저는 이를 MJ effect라 칭하기로 했습니다.
1) 경기 시간은 무한정 길어진다.
2) 어떻게든 지고 만다.
2023년, 직장 동료들과 함께 사직야구장에 방문했던 누나. 경기 도중에 비가 와서 경기가 잠시 중단되었죠. 이후 재개되었고, 그날 경기가 막상막하(?)였기에 12회까지 갔어요. 그리고 졌죠. 그 경기가 무려 오후 11시가 넘어서 끝났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23:0, 오후 11시 경기. 그녀의 절대 법칙을 깨보고자 도전했는데,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이쯤 되면 끊임없이 팬들의 혈압을 터트리는 프로 스포츠계의 이단아, 롯데 자이언츠가 문제가 아니라 MJ가 원인이 아닐지 조심스레 추측합니다. 가끔 직관하다가, 이상하게 지낼 때면 MJ에게 안부 문자를 드립니다. “누나, 혹시나 지금 야구장?”
확실한 건, 자이언츠의 패배 요인 중 하나로 저는 아니라고 단연코 장담할 수 있습니다. 믿을 수 없겠지만, 저는 작년에 직관으로만 5연승을 거뒀습니다. 잠실 개막전, 두산과의 경기 4시간 43분 혈투 끝에 결국 지고 만 경기가 작년의 유일한 직관 패배였습니다. 그 이후엔 키움을 상대로 2번 이기는 경기를 목격하고 (놀랍게도 그다음 날 졌습니다. 스윕하지 못했죠), 부모님을 모시고 간 기아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선 3:0 → 5:3으로 역전 → 이후 5:5 동점 → 마지막으로 6:5의 승리를 거뒀던 엄청난 경기를 봤습니다. 우연히 티켓팅에 성공한 최강야구 VS 독립 야구 편에서조차 승리 요정이 되었습니다. (롯데 자이언츠는 아니지만 이대호, 김문호, 송승준 선수가 있지 않습니까? 제2의 롯데라고 하시죠) 한화와의 경기에서 손성빈의 첫 홈런을 목격하는 등으로 승리를 거뒀죠. 올해 첫 직관인 NC 다이노스와의 경기에서 전준우 선수의 홈런과 정훈 선수의 1루 헤드 슬라이딩 등으로 홈 개막전에서 1승을 차지하며 직관 7연승이란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습니다. 토트넘을 무척 사랑했으나 야구는 단 한 번도 보지 않던 친구에게 NC전에서 8:1이란 잔혹한 선물을 선사했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간 두산 전에선 4:3이란 패배로 불효를 저질렀습니다. 친한 형들과 같이 간 삼성전에선 8:1을 마주했습니다. 그리고 MJ 누나와 함께한 경기입니다. 돌이켜보니, 전날도 홈런 2번을 줬는데, MJ 누나와 함께 간 날도 홈런 2번을 맞았네요? 젠장. 현재까지 직관 5전 1승 4패입니다. 이렇게 적고 나니, 올해는 제가 패배 원인인가 봅니다.
직관 7연승이 깨지고 내리 직관 4연패를 달성하는 것도 슬프지만, 제일 안타까운 사실은 바로 야구 그 자체를 보고 싶지 않은 기분이 든다는 겁니다. 패배도 있을 수 있다는 건 압니다. 하지만 그 정도가 너무 심각하다는 생각이 드는 요새입니다. 특히, 기대가 컸던 선수들이 못하니 실망스럽습니다. 해줘야 하는 이들이 제 역할도 못 해주는 데, 우승 경험이 많은 김태형 감독이 있어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집에서 경기를 볼 때도 많습니다만, 그냥 TV를 꺼버릴지 고민도 합니다. 기대되지 않거든요. 병살 나오겠다. 희생플라이조차 나오지 않겠다. 설마 주루사? 이런 말도 안 되는 예측들대로 다 들어맞는 모습을 보면 야구를 보는 게 의문입니다. 드리님의 이야기까지 들으니, 화가 나다 못해 기가 차기도 하네요.
깃발 아재 시구 영상 저 역시 보고 말았습니다. '롯데가 이겨야 집구석이 조용하다'라는 말과 함께, '팬은 죄가 없습니다.'라고 말해줄 때 속이 시원했습니다. 선수들도 갑갑하겠죠. 이기고 싶은데, 마가 껴서 그런지 이기지 못하니깐. 그런데 이 경기를 봐야 하는 저희는 무슨 죄인가요? 홈런 2방 맞고 기가 꺾여서 지는 경기를 이틀 연속 목격하고, 1점 차이를 극복하지 못해 패배하고, 단 2점 차에 삼진이나 플라이 아웃이 아닌 주루사로 경기를 끝내는 걸 봐야 하는 저희는 롯데 자이언츠를 얼마나 더 응원해야 하는 걸까요?
격해져서 죄송합니다. 그만큼 슬퍼서 그렇습니다. 서운하기도 하고요. 저도 똑같습니다. 비난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건 다른 팬들 역시 마찬가지일 겁니다. 오죽하면 롯데 자이언츠 팬이란 분이 책 <야구잡썰>을 통해 이런 표현을 쓰겠습니까? 환장할 팀이다. 단순히 못 한다는 뜻이 아니다. 이미 그런 영역은 진작에 넘었다. 프로 스포츠계의 이단아다. 차라리, MJ effect가 원인이고, 제가 패배의 원흉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라도 야구장을 안 가서 롯데 자이언츠가 승리할 수 있다면, 야구 경기는 늘 결과만 확인하겠습니다. MJ 누나가 원인이라면, 누나를 평일 6시 반, 주말 5시, 2시마다 넥 슬라이스로 기절시켜 야구장에 가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하지만 다들 알잖아요. 이 모든 걸 극복 해야 하는 건, 팬이 아니라 롯데 자이언츠라는 걸요.
롯데를 사랑하고 좋아합니다. 우리 롯데 선수들이 다 잘 되었으면 합니다. 부디 좋은 모습으로 돌아왔으면 합니다. 이대로 2024년을 이어간다면 팬도, 선수들도, 구단도 슬프지 않겠습니까? 이젠 꼴데, 봄데 등 이런 타이틀에서 벗어나야죠! 안 그런가요? 이런 이명을 계속 가지고 있는 것도 억울하잖아요!
속이 체한 것 같은 갑갑한 느낌을 편지에 써 내려가다 보니, 격앙된 감정이 한가득입니다. 다음 편지는 좀 더 밝은 내용으로 가득 써보겠습니다. 저라도 믿어야죠. 롯데 자이언츠가 다시 올라갈 거라고요. 무조건적인 믿음을 결국 보낼 수밖에 없습니다. 애증의 롯데 자이언츠 아닙니까? 이번 주 역시 어떻게든 해낼 수 있으리라 믿으며, 같이 응원하시죠.
롯데 자이언츠의 슬픔을 같이 공유할 수 있어 위안이 되는 헤비한 팬, 주니킴 드림.
PS 1. 조만간 직관 계획을 잡아보도록 하시지요.
PS 2. 드리님께도 <야구잡썰> 추천합니다.
PS 3. 저도 드리님을 더 알고 싶습니다. 그중 하나가 드리님의 인생 목표는 무엇인지요? 롯데 자이언츠의 우승은 0순위라 믿고 그걸 제외하고도 궁금합니다.
[이전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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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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