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혹시 아이들을 좋아하나요? 저는 정말 좋아합니다. 귀엽고 깜찍하잖아요? 제가 외동아들로 자라다 보니, 아이들이 다 친동생 같은 기분(?)이 들어서 좋아한 것도 있는 것 같아요. 명확하게 이유를 말하긴 어렵네요. 사실 좋아하는 데 꼭 이유가 필요할까요?
저는 사촌 조카들이 아기일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최선을 다해서 잘 놀아줄 정도로 아이들을 좋아합니다. 또, 아이들을 보면 자꾸 말 걸고 싶은 욕심이 생겨요. 그래서 보건소에 현장학습 하러 왔던 유치원생들을 보자마자, 아이들이 인사할 때까지 “안녕하세요!”라고 제가 먼저 배꼽인사를 하기도 했죠. 아이들이 착해서 제 배꼽인사에 응답하여 바로 인사해줄 때는 너무 행복해졌어요.
이렇게 아이들을 엄청 좋아하던 저에게 냉정한 현실(?)을 일깨워주는 사건들이 발생합니다. 그 중 하나가 4년 전에 일어났어요.
소아과 실습을 돌던 학생 때였습니다. 실습의 일환으로 교수님 뒤에서 진료 참관을 해야 했습니다. 진료 참관은 수업시간에 배웠던 지식을 실제적으로 공부 할 수 있는 시간이라 보람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아이들을 보는 일이 즐거웠습니다. 물론 아픈 아이들을 볼 때마다 마음 아프기도 했고요. 그렇게 수많은 아이들을 보며 소아에 대해 배워가던 중 한 아이가 어머니와 함께 왔습니다.
아이가 병원을 찾아온 이유는 장난감을 삼켰기 때문입니다. 정확히는 오리 장난감의 발 한 쪽을 삼켰다고 하네요. 아이의 변을 계속 확인했지만, 장난감 발 한 쪽을 발견할 수 없었던 어머니는 걱정되어 아이와 함께 찾아왔다고 합니다. 교수님은 위의 특정부위에 장난감 발이 잔류했을 가능성을 고려하셨고, 이에 따른 진단계획을 세우셨습니다. 이 때 아이의 어머니는 교수님의 진단에 도움 되고자 오리 장난감의 남은 발 한 쪽을 가져왔습니다. 육안으로 확인해보니 500원 동전 정도의 크기였어요. 크기를 확인한 후, 교수님과 어머니는 이야기를 이어나가셨죠. 그러다 어머니는 잠시 오리 장난감 발 한 쪽을 진료실 탁자에 올려두셨습니다.
그 사이, 일이 발생했습니다. 어머니가 장난감 발 한 쪽을 놔두고 교수님과 이야기를 나누던 그 잠깐 사이, 아이의 손은 책상 위의 발 한 쪽으로 향했습니다. 아이는 결국 발 한 쪽을 쟁취했습니다. 그리고 입에 넣으려고 했어요. 입에 거의 도달했습니다. 아이의 목표(?)가 거의 이루어질 무렵 쯤, 저는 그 순간을 목격했죠. 그 순간, 다른 생각은 일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이 곳이 진료실이라는 것조차 까먹어버렸죠. 교수님이 바로 내 앞에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렸습니다. 일단 막아야겠다는 생각 하나만 제 머리 속에 남았습니다. 그 생각을 바탕으로 저는 크게 소리쳤습니다.
“야~~~~~~~~~~~!!!!!!!!!!!!!!!!!!!!!!!!”
큰 고함 소리를 들은 아이는 울면서, 쥐었던 장난감 발을 놓았습니다. 일은 더 이상 커지지 않았지만, 말하고 난 직후 두려워졌습니다. 교수님이 진료하고 있는 와중에 크게 소리쳤으니 당연히 혼날 거란 생각에 걱정되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알고 보니 저만 소리친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머니, 교수님 등 진료실에 있던 모든 사람이 동시에 크게 “야!!!”를 외쳤던 겁니다. 그 사실을 알고 나서야 혼나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 마음을 놓을 수 있었습니다.
의사로서 저는 진료도 담당하고 있지만, 예방접종 예진 업무도 맡고 있습니다. 예방접종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진행하는 업무 중 하나입니다. 많은 사람들 중 특히 아이들을 많이 마주하게 됩니다. 아이들은 나이별로 필수 예방접종을 진행해야 하기에 자주 볼 수밖에 없어요. 예방접종을 통해 아이들을 볼 때마다 설렜습니다. 설레다 못해 미칠 뻔 하기도 했죠. 하지만 냉정한 현실(?)도 동시에 마주해야 했습니다.
예방접종 하기 전에 비장한 표정으로 오는 아이들을 보면 마냥 귀여웠습니다. 표정과 함께 궁서체로 진지하게 “아프지 않게 놔주세요.”라고 말하는 아이들을 보면 진지해도 예뻐 보인다고 할까요? 예쁜 간호사 선생님이 접종을 해준다는 사실에 기뻐하는(?) 남자아이들(역시 어려도 남자인가 봅니다)을 보면 귀여워서 웃음이 나올 뻔 하기도 했죠. 그 와중에 “선생님, 접종 맞고 학원가야 되나요?” “오늘 하루 공부 안 해도 되죠?”라고 묻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순수한 모습에 설렜던 나머지, 저는 웃으면서 대답했습니다. “공부는 해도 됩니다. 열심히 하세요.” 솔직하게 말해줄 건 다 말해주는 전 참 좋은(?) 의사죠?
앞의 경우처럼 여유롭게 아이들과 대화하는 경우는 사실 드뭅니다. 보통은 울지요. 접종 시작 전부터 하고 난 후까지 계속 울어 대는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아팠습니다. 특히 하얀 가운 입은 저를 보면 무조건 울음을 터트리는 아이들도 있어서 슬프기도 했어요. 때론 땅바닥에 누워 몸부림치는 아이들도 있었죠. 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운다고 접종을 피할 수는 없었기에, 부모님의 허락 하에, 아이들이 움직이지 못하게 잡고 접종했습니다. 때론 아이들의 힘이 생각보다 세서 힘들 때도 많았죠. “엄마 미워.”, “엉엉 너무 아팠어.”라면서 소리치는 아이들을 보면 좀 미안했어요. 그 와중에 “의사 아저씨, 미워!!!”란 외침을 들을 때는 제가 눈물을 흘릴 뻔했습니다. 벌써부터 아저씨라니…….
저는 여전히 아이들이 좋습니다. 하지만 장난감 오리발 사건, 우는 아이들을 달래가며 하는 예방접종 등 다양한 사건들을 겪다보니 아이들을 마냥 좋아만 할 수 없다는 걸 몸소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어려운 존재라는 걸 생각해보게 된 계기였습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어린 아이들이 왜 어려운지를 제대로 실감했다고나 할까요?
의사로서도 많은 생각이 들었지만, 부모가 된다는 것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저도 언젠가는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될지 모릅니다. 그런데 전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까요?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두려워졌습니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육아라는 측면에서 잘 키울 수 있을까란 걱정이 들기도 했죠. 옆에서 아이들의 어려운 점을 보면서 솔직히 자신감이 떨어졌습니다. 왜 부모가 어려운지 조금은 알 것만 같았어요.
아이들을 마주하며,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을 상대할 때는 의사로서, 어른으로서 긴장하고 조심해야 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우는 아이들을 상대로 강하게 마음먹고 할 일을 해야 한다는 것도 확실히 인지했고요. 앞으로 아이들에 대해서 더 많이 배우고 깨달을 겁니다. 그런 깨달음들을 앞으로의 인생에서 잊지 않고 기억하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훗날 나에게 아이가 생긴다면, 부디 아이들을 좋아하던 그 마음이 유지되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아이와 관련하여 수많은 어려움을 마주하더라도, 아이들을 좋아하는 마음이 저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줄 것만 같거든요. 아이들에게 좋은 의사이자 좋은 아빠로 말이죠.
아이들을 상대로 육아를 하는 모든 부모님들, 이 기회를 빌려 응원합니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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