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둑한 길모퉁이로 택시가 들어온다. 안내 표시선을 따라 도착까지 3분 이라더니 정확히 3분 만에 택시가 도착했다. 영하 14도라는 일기예보답게 코끝이 날아갈 듯 춥다. 택시 번호를 보니 몇 번 보았던 익숙한 번호다. 새벽에 그것도 항상 같은 시간에 가끔 호출하는 나를 기사님이 기억하셔서 콜을 잡으셨다고 한다.
“이렇게 일찍 부지런히 출근하시는 걸 보니 회사에서 중요한 분이 신거 맞지요?”기사님은 인사를 건네신다.
“그렇지는 않아요. 일찍 가서 미리 준비하려는 것뿐이에요.”자리를 잡고 앉으면서 나도 인사를 건넨다. 그리고 나는 이어서 한마디 더 했다.
“이렇게 일찍 항상 말끔하게 정리하고 영업을 시작하시는 사장님도 멋있는 분이신 거 같아요.” 서너 번 만나온 택시 안은 정말 유난히 정갈하고 깔끔했다. 내 말을 들은 택시 기사님은 허허 웃으시더니
“사람을 기분 좋게 하시는 걸 보니 틀림없이 훌륭하신 분 일거 같아요.”라고 하신다.
회사까지 7분 정도 가는 거리를 덕담 나누며 즐겁게 갔다. 나는 직장에서 내리면서
“사장님 오늘 우리 칭찬해서 서로 기분 좋게 했으니 퉁치는 걸로 해요.” 내 말을 들은 사장님은 껄껄 웃으신다.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기사님은 웃으시면서 차를 돌렸고, 영하의 추위에도 직장으로 향하는 내 발걸음도 가볍고 즐거웠다.
말 한마디가 무엇이라고 사람의 마음을 들었다 놓았다 할까. 유행가 가사처럼 사랑한다는 그 말도 거짓말, 미워한다는 그 말도 거짓말~ 그런 것처럼 거짓말이어도 기분 좋게 하는 것이라면 그리 나쁘다고 할 수만은 없을 것 같다.
회사의 현관문을 밀고 들어서다가 문 뒤에서 나오는 사람과 얼굴이 맞닿을 듯 마주쳤다. 나는 급하게 손을 잡고
“아이고 반가워라, 오늘 첫 번째 만난 사람이니 오늘 하루 00님과 사랑에 빠질 것 같아.”라고 말했다. 부딪힐 뻔해서 당황했던 동료가
“저도요. 오늘이 즐거울 거 같아요.” 대답한다. 그 대답을 듣고
`그려 오늘은 기필코 여러 번 살펴줘야 되겠구먼~~` 인사치레처럼 던진 말이었는데 그 말에도 책임을 지려하는 마음이 생긴다. 이런 맘은 예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맘인데 나이를 먹으니 사람이 조금 이상해지는 건지 빈말이어도 인사말도 곧잘 하고 오지랖도 상상의 수치를 넘어간다.
예전에는 진실이어도 칭찬하는 말에 인색했다. 의도했던 것은 아니지만 이래저래 말수 적고 조용한 사람이었다. 뭐 그렇게 세상에 떠들만한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요, 내가 아는 것은 남들도 모두 아는 것이라 생각했던 이유도 있다. 또한, 미주알고주알 말을 많이 하다 보면 내가 피곤해져서 견디기 힘들었다. 나이를 먹어가면 하는 말보다 듣는 말이 많아야 한다고 하던데 나는 말이 많이 늘었다. 쓸데없다고 생각했던 농담도 많이 늘었고, 일을 하면서는 잔소리도 많이 늘었다. 단호하게 이끌고 격려하는 게 아니라면 굳이 말이 많이 필요 없을 것 같은데 그래도 하루의 많은 시간을 기억에도 없는 말을 하면서 보낸다. 하루 종일 내가 뱉은 말을 모두 녹음을 해서 들어 보고 싶다.
나는 사람들이 나로 인해 즐거우면 좋다. 내 말로 인해 기분 좋아지면 좋다. 내가 하는 농담에 진심이 없는 경우는 없다. 진심으로 좋아 보이고 칭찬할 만한 것들이 보여서 하는 말들이다. 단순하고 직설적이다. 보이는 그대로를 칭찬한다. 그러므로 나의 칭찬은 거짓말이 아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칭찬과 덕담이 많으면 더 즐겁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