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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우리가 해요? (반장일지 10)

참을성이 없어서

by 파인트리

동료들과 일을 하다가 마찰이 있을 때가 있다.

"이것 좀 우리가 해결하자." 내가 이렇게 말을 하면 대여섯 명의 주임들이 들고일어난다.

"이것은 우리 팀이 할 일이 아니잖아요. "

"왜 사무직군의 일을 우리가 다 해결해 줘요. 반장님이 자꾸 해결해 주시니까 다른 팀이 일을 안 한다고요.~"

"우리가 못한다. 안 한다. 이렇게 말씀하셔야죠. 왜 모든 것을 생산에서 해결하려고 하세요."

"저는 이런 일 하러 입사한 건 아니니까 못하겠어요."

"해결이 안 되면 납기를 안 맞추면 되잖아요."

따발총 세례다. 아니 가슴속에 이렇게 많은 불만을 쌓아두고 있었구나 나는 속으로는 깜짝 놀란다.

나를 둘러싸고 안된다고 퍼붓는 후임들의 눈을 빤히 들여다본다.

눈동자들이 초롱초롱하다.

계속 들여다본다. 점점 조용해진다.

"이제 됐냐? 하자!!" 내 말에 후배 주임들이

"에고 반장님 때문에 못살아요 정~말" 하면서 다들 일을 해결하러 나간다.



나는 정말 나쁜 선임인가?

나는 정말 다른 팀의 발전을 방해 하는 사람인가?

나는 정말 동료들을 괴롭히는 선임인가?

시름에 빠진다.



조금의 결핍은 창의력과 행동력을 발휘할 기회를 준다고 했던가. 생산을 하다 말고 중간에 문제가 생기면 생산 담당인 나는 살짝 이성을 잃는다. 어떤 절차고 순서를 기다리지 않는다. 문제가 생기면 냅다 달려가 해결을 하려고 한다. 그게 몸에 배어 있다. 어떤 일이든 몸이 먼저 반응한다. 어떻게든 해결을 하려고 하다 보면 또 그게 해결이 된다. ' 어떻게든 해결이 되니까 알아서 하겠지' 하고 다른 팀이 방관하는 거라고 후배들이 나에게 따발총 세례를 퍼붓는 이유이기도 하다. 논의의 결과를 기다리기보다는 책임이 더 크게 느껴져서 일단 움직이고 보는 나의 행동들이 요즘 시대에는 안 맞는 것인가 고민을 하게 된다.


어쩌다보니 나는 긴급대응에 최적화되어있는 사람인 것 같다. 시골에서 마당에 빨간 고추가 널려 있을 때 소나기가 오면 무슨 생각이 필요하겠는가. 일단 거둬들이고 본다. 어릴 때 빨래가 소나기를 만났을 때는 어떠했던가? 신발도 안 신고 냅다 달려가 거둬들였다. 길을 가다가 지나가는 아이가 넘어지면 나도 모르게 달려가 일으킨다. 비를 맞고 지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무조건 우산을 같이 쓴다.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면 그러거나 말거나 씩 웃는다. 싸움이 나면 가운데 끼어 들어서 뜯어말리고, 주임들은 청소 지시를 하고 있는데 나는 절반 이상 청소를 해 나가고 있다. 작업대를 이쪽으로 옮겨야 동선이 잘 나올 것 같다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는 벌써 작업대 이동을 시켜버린다. 무슨 일이 생기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그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있다. 지나친 오지라퍼인가, 해결사인가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


식품회사에 처음 입사했을 때, 그 텃새라는 것이 있었다.
"저 신입은 지가 뭔데 나대고 다니냐?"고 쑥덕거리는 동료들의 입방아에 올라 있었지만,
그런 말들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히려 새로운 일을 배우고 보는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식품 조립을 하면서 제품의 용기를 자꾸만 더럽히는 사람이 있었다.
‘만지지 않고 놓기만 하면 되는데 왜 이렇게 하지?’ 고민했다.
속도를 이기지 못해서 자꾸 용기를 잡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속도를 조절하자 금방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제품은 한결 깨끗해졌고, 흐름을 끊지 않으니 생산성에도 차이가 없었다.

제조에서 흐름을 끊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은,
후에 관리자가 되고 나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생산 흐름이 막히면, 그 원인이 사람인지 공정인지 빠르게 찾아내고 해결해야 한다.
이 흐름을 잘 챙겨보는 것도 제조의 재미 중 하나다.

그런데 흐름이 끊기면 나의 문제로 바로 돌변한다.
빠르게 흐름을 이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앞서기 때문이다.


나는 변화되는 나를 믿는다.
내가 지금 겪고 있는 문제를 알고 있기에, 해결 방법도 곧 찾아낼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일을 적절히 이용하면서 나를 다독이며 발전해가고 있다.
모르면 바로 학습하고, 안 되면 될 때까지 연습하는 나의 열정은 아직 남아있다.

일과 나는 감정적으로도 유대감을 느낀다.
작은 개선이 좋은 결과를 낳으면, 그 뿌듯함과 즐거움이 크다.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집에 있는 시간보다 많다 보니, 일터를 내 집처럼 돌보는 것이 좋다.
동료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감사하고 즐겁다.

일에 빠져 있으면 나 개인의 시름은 항상 뒷전으로 밀려난다.
이것이 나에게 좋은 영향을 준다.
이제는 동료들에게 따발총 세례를 받지 않기 위해 노력할 때가 된 것 같다.
지금까지 지켜오지 않았던 계획적이고 꾸준한 삶 속에서, 나를 다시 찾아보는 데 매진해봐야겠다.

도전은 즐거운 것이니, 또 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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