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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선생 개업이요~(반장일지 14)

표현 방법이 달라서

by 파인트리

동료 한사람이 얼굴 이 벌겋습니다. 금방이라도 울음이 쏟아 질 것 같아요. 식당에서 우연히 보게 된 그녀의 얼굴입니다. 나는 무작정 비어있는 사무실로 그녀를 끌고 들어갔습니다. 차를 한잔 준비하러 잠시 나왔다가 들어가니 나를 기다리던 그녀가 울고 있습니다.


한참을 그냥 울렸습니다. 억울함이 많은지 눈물이 그치지 않아요. 나는 가만가만 휴지를 한 장씩 빼어 줬습니다. 실컷 울었나 봐요.


"조장님은 나한테 너무 하세요. 내 얘기는 들어주지도 않고 나만 힘든 일을 시켜요. 내가 아프다고 공정을 바꿔달라고 할 때는 들어주지도 않아요. 나도 다른 것도 잘할 수 있는데 나에게는 기회를 안 줘요. 그리고 혼만 내요. 저는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싶어요. 조장님과는 같이 일하기 힘들어요." 훌쩍훌쩍 쏟아내는 말이 조장님 원망입니다.

"제가 야채를 오래 했잖아요. 팔이 아파서 교대를 좀 해달라고 했더니 계속 기다리라고만 했어요. 한가할 때 다른 사람을 가르쳐서 교대를 하게 해 준다고 하고 실행에 옮기지 않았어요. 그런데 부조장님도 나빠요. 오늘은 스쿱을 뜨니까 팔이 아파서 부조장님한테 바꿔달라고 했더니 모른 체했어요."


하고 싶은 말을 모두 하도록 기다렸습니다. 그녀는 한참씩 울다가 또 서운함을 이야기하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점점 그녀의 표정이 풀립니다. 점점 표정이 평온해집니다.

"조장님 나빴네~~ 왜. 내버려 뒀을까?" 내 말에 그녀가 펄쩍 뜁니다.

"아니에요. 우리 조장님 나쁜 사람은 아니에요. 제 맘을 이해 못 한다는 것뿐이에요." 나는 슬며시 미소를 지으면서 그녀의 손을 잡았습니다. "이런 착한 사람을 봤나~~조장님이 미운게 아니라 이해 하면서도 서운했다는 거잖아요. 왜 섭섭할 때까지 내버려 뒀는지 내가 조장님한테 물어봐도 돼요? " 그녀는 고개를 끄덕입니다.


부안 진성 울타리


울던 동료는 외국인입니다. 현장에도 일찍 들어와서 자신이 할 일을 준비해 놓고 다른 이들의 출근을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아직은 우리말 표현이 조금 서툽니다. 긴 대화라든지 빠르게 진행되는 작업 지시를 정확히 이해 못 할 때도 있어요. 거기에 그녀에게 어려움을 더 하는 것이 있는데 눈치 대화 입니다. 현장 일은 눈치껏 빠르게 움직여야 할 때가 있고, 눈치껏 조용히 옆사람을 도와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대화 중에는 몸과 함께하는 눈치 대화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가 아직 이런 눈치 대화에는 익숙하지가 않아요. 지시를해도 뜨아한 표정일때도 있고 왜그러는지 물어오기도 합니다. 형용사와 부사가 많이 들어가야 부드러워지는 우리의 대화에 의아한 표정을 지을 때도 많아요. 이 친구는 정확한 목적어와 주어만 표현합니다. 단어 사용이 칼 같이 명료하지요. 그 녀의 말을 듣다 보니 갈등은 언어 표현에서 온 게 아닐까?라는 짐작이 들었습니다. 담당조장님에게로 가서 물었습니다.


"조장님 오늘 뭔 일 있었어요?" 슬며시 손을 잡고 끌어당기며 묻는 나에게 조장님도 할 말 많은 눈빛을 보냅니다.

" 저 친구 아까 부조장님한테 ' 나 팔 아파. 바꿔줘!!' 라고 단호하게 말을 했대요. 부조장님도 발끈해서 '이 일을 하면 누구나 다 아프다고 하니 나중에 바꿔 주겠다. 지금은 아파도 참으면서 해라.' 이렇게 말을 했대요. 그런데 옆에 있던 동료가 아프면 자기가 바꿔 준다고 하면서 부조장님 몰래 바꿔 주었나 봐요. 그 내용을 모르는 부조장님은 "내가 나중에 바꿔 준다고 했는데 그 사이를 못 참고 왜 바꿨냐고 저 친구한테 화를 냈다고 해요. 그래서 저 친구가 억울하고 화가 난 것 같아요." 한다. 듣고 있던 나는 질문을 했습니다.


"그럼 오늘은 부조장님한테 서운 했구먼, 그런데 무엇이든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는데 왜 다양하게 일을 시켜 보지 않았어요?" 내 말에 조장님이 억울한 표정을 짓습니다.

"아이고 반장님 , 우리 일이 막중한 책임이 따르는 일도 있고, 옆 사람과의 호흡이 중요한 일도 있잖아요. 저 친구는 아직 우리말의 이해 능력이 뛰어난 것은 아니라서 기록 관리를 맡기기는 불안하고 , 옆 사람과의 호흡이 중요한 자리는 아직은 힘들어해서 가르치고 있는 중이에요. 그런데 저한테 혼자서도 할 수 있다고 보내 달라고 하는데 제가 보기에는 아직은 일을 맡기기는 불안해요. 그 친구는 혼자 하는 일은 잘해요. 우리 일이 나만 잘하는 것보다는 옆 사람을 살피면서 해야 하는 게 더 많잖아요 그런데 옆사람과 공조를 해야 하는 일에 약해요. 아직은 더 배워야 한다는 사실을 설명하기가 너무 어려워요. 자기는 잘한다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혼자 해서 잘하는 것은 잘하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요. 기회도 많이 주고 가르치려고 하는데 요즘 제가 시간이 너무 없었어요. ."


황희 정승도 아닌데 듣고 있던 나는 조장님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되었습니다.

"조장님 계획이 있었구나. 그럼 계획이 실행되는 과정을 한 번씩 느끼게 해 줘 보는 것은 어떨까? 의견을 얘기했는데 무시하고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고 느껴서 서운했던 마음도 많이 있을 것 같은데." 내 말에 조장님이 한마디 합니다.

"안 했던 것은 아니에요. 새로운 일에 배정을 했다가도 납기시간에 쫓기면 다시 잘하는 사람으로 세팅을 하게 돼서 그 친구가 오래 있을 수 없었어요. 그때마다 설명을 제대로 못한 제 잘못도 있어요. 근데요 반장님, 저 친구가 말을 예쁘게 안 해요. 아직 우리말 표현이 서툴러서 그렇다고 생각하고 이해해주고 넘어가려고 해도 제 마음에 섭섭함이 남아 있어요. 아까도 부조장님한테 " 나 아파 바꿔줘!" 이러니까 부조장님도 반응이 그랬을 거예요. 저한테도 "오늘 작업 배정 하는 거 조장님 할 일이잖아. " " 휴무 조정 하는 거 조장님 할 일이잖아" 이렇게 얘기를 해요. 당연히 제가 해야 할 일인데도 그렇게 직접적인 표현을 듣고 나면 무지 속이 상해요. 어쨌든 저는 모두를 배려해서 작업 배정도 하고 휴무 조정도 해 주는데 대 놓고 조장이 조장으로서 할 일을 안 한다? 혹은 못한다로 표현해 버리니까 조원들 보기 민망할 때가 많아요."


"그랬구나. 그렇게 대 놓고 들으면 민망하지. 어렵네요. 상처받지말고 상처도 주지않고 같이 노력하는 방법이 있으면 좋겠네요. 언어와 이해하는 마음은 내가 이야기를 많이 해 볼께요. 조장님은 업무 능력을 키워 줘요. 그래서 섭섭함이 쌓이지 않게 우리 둘이 같이 노력해봅시다." 조장님은 고개를 끄덕 끄덕합니다.


회사동료 중에는 외국인이 제법 많습니다. 그분들 중에는 정말 유창하게 우리말을 하고 이해 능력도 뛰어난 분들도 많습니다. 배려하는 마음도 커서 동료들과 사이가 좋은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가끔 이 친구 처럼 표현방법이 우리 나라와 달라서 직설적인 단어로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동료가 있습니다. 표현 방법이 달라서 그렇다는 것을 알면서도 듣는 사람은 말문이 막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 표현은 감정까지 살펴 가면서 상황을 보고 이야기를 하잖아요.


아직 우리 대화법에 익숙치 않은 친구들은 우리의 마음까지 살펴야하는 대화법이 얼마나 어려울까요? 눈치가 조금만 작동 해 주면 맘 상하지 않게 소통을 할 수가 있는데 그게 맘대로 안되니 안타깝습니다. 결국 그녀와 조장님 마음이 서로 이해 될때까지 두 사람의 대화 중심에 내가 있어야 할 모양입니다. 수당은 없지만 오늘부터 눈치 선생 개업입니다~~


커팅랩샐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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