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참, 나 때문에 사표를 낸 사람이 생겼다고 상사에게 이야기를 듣게 됐다. 일을 너무 많이 시키고, 소통도 없고 화장실 갈 시간도 안 줬다고 한다. 듣자 하니 나는 독한 관리자였다. 그동안 여러 번 근무여건을 개선해 달라고 했었는데, 나는 전혀 들어주지 않았고 같은 상황이 반복되어서 사표를 내게 되었다는 것이다. 과중한 업무로 온몸이 아프기 시작했다는 게 가장 큰 이유라고 했다. 떠나는 사람이 안쓰러워 나는 여러 가지 변명을 하지 않았다.
밤새 잠이 오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있는 입장 차이를 내가 먼저 이해해 줬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산공장의 의무는 완벽한 생산이다. 회사에서 정해지는 수량과 납기를 마쳐야 한다. 즉석식품을 생산하는 우리 회사의 특성이 일정을 계획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매일매일 다른 수량의 주문이 들어오고 수시로 일정이 바뀐다. 원료부터 반제품이 만들어지고 재품으로 완성되기까지 일사천리로 굴러가야 제품 하나가 완성이 된다. 여기저기서 삐그덕 거려도 어떻게든 맞춰 나가는 것이 생산 공장의 특성이라 자기 자리에서 맡은 일만 잘해주면 공장은 돌아간다. 나는 그 공정을 챙기다 보니 사람 마음 헤아리는 시기를 놓쳐버린 것이다.
하루 종일 물건을 나르고, 정확하게 중량을 재어야 하고, 숫자 파악에 능통해야 하는 곳도 있다. 각자 자기 일하는 곳이 가장 힘들다고 한다. 자기가 일하는 곳이 제일 어렵다고 한다. 참을성과 인내로만 버티라고 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곳도 있다. 기능과 집중력이 필요한 곳은 준비되지 않은 인원과는 교대를 할 수도 없다. 조금만 실수하면 사고가 발생하는 곳이라서 일의 중요도가 그만큼 높다. 중요도가 높은 만큼 교육에 힘써야 하고 교대 근무자를 여러 명으로 확보했어야 했다. 생산 수량에만 집중하다 보니 교육을 나중으로 미뤄 둔 것이 화근이 되었다.
그분은 책임감이 확실했다.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일을 맡기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 업무 스트레스를 심하게 앓았다. 제품도 일일이 확인하고 일지도 직접 쓰고 확인했다. 쉬는 시간이 없었다. 그분을 쉬게 해 드리자고 2~30명을 놀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필, 업무 교대를 해 주는 사람이 같은 성향의 사람이 아닌 게 이분을 더 힘들게 한 경우이기도 했다. 꼼꼼한 그분의 성품과 달리 교대자는 술렁술렁 실수가 잦은 편이었다. 그러니 교대자의 일까지 점검해야 하는 게 그에게는 더욱 힘든 일이었던 것 같았다. 사표를 내는 원인을 듣고 나는 미안하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했다. 또한 예전의 나를 보는 듯해서 안타까웠다. 남에게 나의 처지를 말하기 싫어서 죽도록 혼자 참아내다가 결국 손을 들어버리는 일이 허다했던 과거가 생각났다.
평사원일 때 내가 원망했던 관리자가 지금의 내 모습이었다. 나한테만 일을 맡겨놓고 바쁘다는 핑계로 돌아봐 주질 않았다. 힘이 드는 일은 미리미리 교대자를 선별해 줬어야 하는데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다. 입 밖으로 힘들다는 얘기가 나오기 전에 다가와서 해결책을 주길 바랐는데, 끝내 모른척했다. 지금의 내가 그분께 그런 모습이었다. 잘 해내니까 그냥 믿거라 방심한 것이다. 일단 일을 맡기면 안심이 되니까 불안한 곳을 먼저 챙기고 다녔다. 무엇보다 마음을 살폈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다. 생산직은 일보다 마음 맞는 동료의 힘이 훨씬 크게 작용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가가 주질 못했다. 항상 옆사람이 가장 중요한 사람이라고 강조하면서 나는 누군가에게 정작 힘이 되는 중요한 사람의 역할을 못했다. 안타까웠다.
혹시라도 동료들에게 변명을 할 기회가 주어지면 꼭 말하고 싶은 게 있다.
"여러분, 어떤 이유에서였든 동료가 되었으니 서로 챙겨주는걸 원칙으로 합시다. 땀으로 생긴 우정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우리끼리는 서로 이해합시다. 생산공장의 특성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자부심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아무리 인공지능이 발달해도 우리의 업무는 로봇이 대신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참지만 말고 해결점을 찾아봅시다. 그래서 오래오래 같이 일합시다. 우리 같이 일했던 게 진정 행복했었다고 말할수 있는 그런 사이로 지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