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인트리 Jan 14. 2022

친절 기술자


얼마 전 막내가 병원에 실려 갔다. 맹장염이란다. 나는 화를 내면서

“바보 같은 녀석 어쩌자고 죽도록 참아서 이 지경을 만들어?” 목소리에는 짜증이 묻어 있었다.

아프고 서러워서 우는 막내를 큰딸이 달랜다. 옆에 있던 둘째가

“엄마, 막내가 아프다는데 왜 화를 먼저 내세요? 며칠 전부터 열은 났어요. 병원에서는 열이 난다고 안 받아줬대요. 코로나 검사하고 주말이 끼어 버리고 이래저래 4~5일이 지나가 버렸다고요. 통증 때문에 막내가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엄마는 모르시잖아요.  받아주는 병원이 있는지 저희도 열심히 알아보는 중이었어요.” 둘째는 계속해서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막내만 혼낸다고 나를 질책했다.    


사건은 언제나 내가 모르는 사이에 일어난다. 어떤 사정으로든 가족들에게 소홀했을 때 발생한다. 꼭 그럴 때 갑자기 가족들이 아프거나 안 좋은 소식을 듣게 된다. 그러면 나는 나도 모르게 화를 낸다. 미리미리 대책을 세우게 말을 했어야지 왜 가만있었냐고 종용한다. 가족들은 그때마다 엄마는 바빴고, 그때마다 엄마는 우리 얘기를 안 들어줬다고 한다. 나의 정신은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  


  가족이 보는 나는 남들에게는  친절한 사람이다. 어쩌다 동료들과 통화하는 걸 들으면 식구들이 놀린다.

" 엄마 사랑받으려면 직장에서 만나야 한다." 둘째가 항상 하는 말이다. 그만큼 급한 상황이 되었을 때 가족에게는 왜 친절하지 않을까? 그렇다고 평소에 대화가 없는 집도 아니다.  참으로 아무것도 아닌 일상이 재밌는 얘깃거리가 된다.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지내는데도 결정적인 일은 내가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발생을 한다. 다른 일도 아니고 가족이 아프다고 하면 나는 왜 화를 내는 것인지 모르겠다.  잘하고 싶은데 소홀해진 나 자신에게 화가 나는 것인지, 사랑하는 사람들을 힘들게 한 미안함과 죄책감 때문에 화를 내는 것인지 분석이 어렵다.    



친절에도 기술이 필요하다고 했다. 친절의 기술도 습관에서 길러져야 한다. 친절하기는커녕  감정에 쉽게 휩쓸리는 나는 내가 생각해도 별로다. 내가 스스로 변하지 않고 있는데, 아무리 많은 책을 읽고 감명을 받으면 무엇하랴, 내 안의 반성의 소리가 나를 울린다. 돌아서면 금방 후회할 말을 왜 먼저 뱉게 되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상처 주는 말을 뱉고 나면 내 맘이 안 좋아서 백배는 더 미안하고 불편해진다. 친하면 더욱더 사랑하는 말들을 찾아야 하는 것이 맞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표정을 보면 내 맘이 더욱 행복해지는 것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그 친절한 말들은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어찌 그리 인색한지 의문이다.  


   

정희주 정신의학과 의사는 `화를 내는 일은 그 일에 대한 상황이 화를 나게 하는 것이 아니다. 그 일과 상관없는 내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라`고 상담자와의 사례에서 조언한다. 돌아보니 편한 사람에게 화를 내는 것은 나의 힘 뜸을 표출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나의 상황이 뭔가 바쁜 것이다. 내 육체가 피로하여 마음을 가두어 버린 것이다. 내 맘대로 나를 가둬도 사랑하는 사람들은 내 맘을 알아줄 것이라 믿었나 보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내가 살펴주지 않아도 알아서 잘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항상 하고 있었나 보다.  결국 해결책을 주지 못하니 미안한 마음에 화를 먼저 냈던 어리석음은 반복하지 말아야겠다. 나 자신에게 못마땅한 행동은 하지 않는 게 맞다. 친절한 언어를 사용하는 연습도 게을리하지 말아야겠다. 이제부터 나의 목표는 친절 기술자다.


몇 사람 지나가지 않은 길
작가의 이전글 찢어진 청바지를 입을 용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