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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인트리 Jan 28. 2022

내 머릿속의 다육이

해결 못한 직장 일만 생각한다.

  

며칠 전 친구의 농장을 방문했다. 다육이와 각종 화초들이 온실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친구는 이른 아침부터 밤늦도록 화초와 산다고 했다. 어느 녀석은 물을 달라하고 어느 녀석은 벌레가 간지럽힌다고 긁어 달라고 한단다. 하루 종일 화초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도 너무 바쁜 하루라고 했다. 다육이 한 잎을 만져보니 식물이 이래도 되나 싶게 단단했다. “잎이 왜 이리 단단해?”

내가 신기해하면서 물었다. “건강하게 잘 자란 거야.” 친구는 어여쁜 자식을 바라보듯 내가 만진 다육이를 보면서 대답했다. 그리고 덧붙여서 "다육이가 원하는 걸 잘 들어줬더니 잘 자라주네."라고 말한다.


 식물에게도 이렇듯 깊은 정성을 들이는  친구가 대단해 보였다. 더불어 나는 과연 그렇게 정성을 들이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했다. 그리고는 곧장 골치 아프다고  던져 놓고 나온 일이 생각났다.   

 

던져놓고 나온 일은 휴무 표를 정하는 일이었다. 우리 회사는 365일 사업장이다. 단 하루도 생산을 멈출 수 없는 곳이다. 때문에 개인적인 볼 일이 있는 날에 휴무를 정해야 한다. 하루 생산물량에 맞춰 인원 조정을 해야 하는 게 스케줄 휴무표다. 성수기에는 출근 인원이 많아야 해서 힘들고 비수기에는 휴무 인원을 많게 하느라 힘들다. 물론 근로기준법에 따라 52시간 준수를 하는 범위 안에서 정해야 하니 더욱 복잡한 일이다.  


춘장대 해수욕장 바다오리들을 지켜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일단 개인적으로 중요한 일이 있는 경우를 먼저 배정한다. 그다음 휴무 요청을 하는 날들을 배정한다. 개인적인 중요한 일도 없고 휴무 요청일도 없는 사람은 결국 남아 있는 날 아무 곳이나 들어가게 된다. 어찌 개인적인 일들이 없으랴마는 그분들은 휴무표 정하는 복잡함을 배려하여 관리자가 정한 스케줄에 그들의 일정을 맞추는 편이다. 무엇이라도 요구를 해 줬으면 싶은데 어느 결정이라도 믿고 따르겠다고 한다. 자신의 이익을 접고 공동의 스케줄에 맞추려는 이런 사람들 덕분에 일은 수월하지만 마음이 아프다. 이런 사람들이 고마워서 미안하다. 그래서 어떻게든 진심을 다해 공평하게 하려고 밤을 새운다. 어떻게든 모두가 마음 상하지 않는 휴무 표를 만들어 보려고 검토에 검토를 한다.   

  

그래도 서운한 사람들이 생겨난다. 왜 나만 휴무가 적을까? 왜 나만 휴무가 많을까? 왜 나는 휴무 간격이 이렇게 떨어져 있을까? 휴무가 많고 적음은 시급 근로자들에겐 급여와 연결되어 있다. 예민한 문제다. 휴무가 많아서 쉴 때는 기뻐하다가도 정작 급여가 다름 사람보다 적으면 서운해한다. 휴무가 적어서 힘들다고 푸념을 하다가도 급여가 많이 나오면 기뻐한다. 감정을 맞출 필요는 없지만 공평하게 할 필요는 분명히 있다.   

  

 나는  휴무 편성에 극도로 예민했다. 어느 한 사람이라도 다른 대우를 받을까 봐 애태웠다. 휴무 표를 만들고 예상 급여까지 확인을 해서 서운해하는 사람이 없다고 결론을 내려야 안심이 되었다.  모두가 공평한가 모두에게 공정한가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단단하고 건강해 보이는 다육이를 만져보면서 친구에게 “그런데 말이지. 나한테 오면 다육이가 말랑말랑 해 지고 살이 쪽 빠지는데 왜 그런겨?”내 질문에 친구가 씩 웃으면서 답을 한다. “자네가 다육이 볼 시간이 어딨어. 직장 다니고 공부하고 맨날 바쁘잖아. 다육이도 매일 잘 살펴줘야 잘 자라는 거야. 자네 머릿속에는 다육이 대신 회사 일이 가득 차 있잖아.”  따뜻한 친구의 말을 들으니 내가 정성을 쏟고 싶었던 게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나는 사람들에게 정성을 쏟아붓고 싶었나 보다. 내 곁의 모든 사람의 마음에 정성을 쏟고 싶었나 보다. 내가 정성을 제대로 쏟고 있는지 확신이 없어서 그게 불안한 거였나 보다. 다시 즐겁게 휴무계획표를 세워야겠다. 단단하게 자라는 다육이처럼 동료들과의 관계가 굳건해지기를 기다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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