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마법은 움직일 수 있는 거야?

마법을 알기에는 너무 어려서

by 파인트리

우리 직장은 하루 종일 서 있는 자세로 일을 합니다. 한번 작업이 시작되면 두세 시간은 꼼짝도 못 해요. 생산이 팀으로 굴러가다 보니 한 사람이라도 빠지면 전체 작업이 삐걱거리기 때문입다. 그래서 화장실도 ‘타이밍’을 잘 잡아야 합니다. 어떤 친구는 급할까 봐 물도 덜 마셔요. 교대는 가능하지만, 괜히 옆 사람에게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 다들 조심조심, 눈치에 눈치를 보게돼요.

오늘은 한 친구 덕분에 우리 아이들 어릴 적 생각이 났습니다.

생산라인을 지나가고 있는데, 그 친구가 나를 조용히 불렀어요.
“언니… 저기… 죄송한데 잠깐만 여기 좀 지켜주실 수 있을까요?”

무슨 급한 일이 아니고서야 나를 붙잡을 리가 없으니 일단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왜, 무슨 일이야?"

그 친구는 나를 쓱 끌더니 소곤거렸습니다.
“언니… 저 마법에 걸렸어요… 배가 너무 아파요.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그 순간 나는 ‘그 마법’이 무슨 마법인지 눈치챘고, 말 대신 눈빛으로 사인을 보냈습니다.
‘어서 다녀와. 이 반장은 마법 이해자니까.’


그때 갑자기, 오래된 기억 하나가 슥 떠올랐습니다.
딸들이 어릴 적, 우리 가족은 주말마다 대중목욕탕을 가는 루틴이 있었어요.
아이들은 그게 그렇게 좋았는지 토요일만 되면 “엄마~ 내일 목욕탕 가는 날~” 하고 난리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큰아이(당시 초6)가 주말 아침이 되자 난데없이 “나 오늘은 안 갈래…”라며 방에 틀어박혔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둘째가 갑자기 효녀 모드로 돌변했습니다. 평소엔 언니랑 하루에 열번도 더 싸우던 아이가 그날따라 언니가 시키는 일이라면 청소든, 물 떠오기든 뭐든 다 하는 거였어요.

“우리 둘째 왜 이렇게 착해졌어?” 하며 흐뭇해했는데, 다음날 아침에 상황이 터졌습니다.
둘째가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언니를 향해 외쳤습니다.
“언니 나빠!!”

“왜 그래? 무슨 일인데 언니한테 화를 내고 그래?”
내가 묻자, 둘째가 떨리는 목소리로 하소연을 했습니다.

“엄마! 언니가… 언니 말을 잘 들으면… 언니한테 온 마법을 움직여서… 일요일에 목욕탕 같이 가 준댔단 말이에요!”

초등 3학년의 눈망울엔 배신감이 가득했습니다.
“근데! 근데 마법이 안 움직여서 오늘 목욕탕을 같이 못 간대요!! 언니 나빠!! 마법도 나빠!!”

나는 초경 중인 큰아이를 힐끔 보고는 살짝 눈을 흘겼습니다.
‘이 마법사야… 동생 마음은 좀 지켜주지 그랬니…’

그리고는 둘째를 다정하게 안아주며 말했다.
“그 마법은… 레벨 99 돼도 마음대로 안 움직이더라. 언니도 지금 곤란한 거야.”


아이들이 성인이 된 지금은 마법이란 말만 나와도 집안에 웃음꽃이 퍼집니다. 이해자들만이 나눌 수 있는 여성 전용 단어가 되었거든요.


졸지 마~~ 오리들이 너무 조용~

몸 안의 생리적인 현상들이 맘대로 움직여 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아서 힘들고 당황할때가 있습니다. 제조현장에서 적응해야 하는 것 중에 한가지 어려움이 그런 생리적인 현상도 있다는걸 저도 제조 현장에 들어와서 알게 되었지요. 동일한 작업시간을 같이 견뎌야 하고, 같은 컨디션이 아님에도 작업이 끝날때까지는 같이 맞춰가야 합니다. 일단 옆사람에게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 견디려면 내 몸안의 생리 현상들은 참거나 견뎌내야 하는 것인게지요. 초보 작업자 시절에는 정말로 물 먹는것도 조심 스러웠었어요. 대열을 이탈해서 나 혼자 다른 행동을 취하려는 용기도 없었지만 , 내 자리를 메꾸느라 고생할 동료들을 생각하면 작업 시간에는 결코 자리를 비우고 싶지 않았거든요.



볼 일을 마치고 돌아온 동료가 수줍게 인사를 합니다.

"언니 고마워요."

"뭔 소리여. 당연한걸~"

충분히 이해하고 남을 부탁인걸~


딸들이 사준 저녁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