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도 롤 모델이 있다.

엄마 이야기

by 파인트리


가끔 나는 ‘내 롤모델은 누구일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딱히 정해본 적은 없다. 성공한 인생을 살려면 롤모델을 정하고 그 길을 따라가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다. 결국, 성공한 사람들의 노력과 열정을 본받으라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언론에 소개된 성공한 사람들은 이미 객관적으로 멋짐을 인정받은 사람들이다. 나와는 너무 멀어 보였다. 이상은 높은데 현실은 턱없이 부족하다고 느껴서, 허우적거리느라 롤모델을 생각해볼 여유조차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문득 ‘정말 멋진 사람’이라고 느끼는 사람이 있다. 바로 친정어머니다.

어머니는 올해 여든셋이시다. 6.25 전쟁으로 학업을 중단하셔서 초등학교 2학년이 학력의 전부다. 외할아버지의 유교적인 가르침 때문에 여자아이는 집 밖을 나가면 안 된다는 이유로 학교에 가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어머니는 공부에 대한 갈망이 컸다. 사촌 오빠들이 가진 천자문을 몰래 따라 써 보기도 하고, 밤이면 서당 마루 끝에 숨어 도둑공부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결국, 그렇게 성장한 어머니는 식구가 많은 집의 큰며느리로 시집을 오셨다. 어른들을 모시며, 제사가 많았던 종갓집에서 시집살이를 하셨다. 하지만 그 힘든 상황 속에서도 자식들에 대한 사랑만큼은 넘치셨다.

농번기에도 대청마루에는 늘 간식이 준비되어 있었고, 학교에서 돌아오면 마치 몇 년을 못 본 사람처럼 우리를 끌어안고 예뻐해 주셨다. 그래서일까? 우리 다섯 남매는 "사랑만큼은 끝내주게 받고 자랐다"고 종종 이야기하곤 한다.

내가 본 가장 멋진 사람, 어머니는 그런 분이다.


우리 큰딸이 대학에서 교육학을 배울 때

“엄마가 우리한테 해주는 게 교육학 이론에 다 있어. 엄마는 어떻게 알았어?” 물었다.

“ 엄마는 할머니한테 배웠지.”하고 나는 대답을 했다. 큰 딸아이는 다시

“ 할머니는 누구한테 배우셨어?” 하고 물었다.

"할머니는 음~ 엄마의 외할머니께 배운 게 아닐까?”라고 대답했다.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왠지 친정어머니는 혼자 배우고 익히셨을 것이라는 짐작이 있다. 어머니는 배우면 몸에 익히는 학이시습( 學而時習)을 실천하는 분이었기 때문이다.



친정어머니는 부지런하다. 십여 년 전 71세의 나이에 여름 농사일 중에도 요양 보호사 교육을 받으셔서 자격증을 취득하셨다. 그 당시에 전라북도 최고령 응시자라고 했다. 나중에 아버지 아프시면 요양원 보내지 않고 어머니가 돌보겠다는 다짐이었다. 또한 어머니는 시대의 변화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1940년대에 태어났지만 2천 년대를 살고 있으면 지금 이 시대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늘 말했다. 그래서 어렵사리 스마트폰을 사용하시고 요즘 변화하는 AI세상을 놀라워하면서 배우려고 한다. 지난달에 친정에 갔을 때 어머니 머리맡에 영어 공책이 눈에 띄었다. 정갈하게 알파벳을 쓰고 계셨다. 벌써 영어 공책 세 권을 썼다고 자랑했다.

“큰 아야! 요즘은 무엇을 해도 영어가 쓰여 있어서 영어 모르면 안 되겠어. 그래서 나 영어 공부하고 있다." 어머니는 조심스레 얘기했다. 난 어머니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마르고 작은 어깨를 꼭 안아 드렸다.


어머니는 잠시도 가만있지 않으신다. 어떤 것이라도 식재료를 찾아내서 아버지 밥상에 맛있는 음식을 해 드린다. 틈틈이 무엇이라도 장만해서 자식들 집으로 보내 주려고 하신다. 농사일 중에도 기회만 있으면 무엇이라도 배우려고 한다. 요가교실도 열심히 다녀서 유연성이 자식인 우리들보다 훨씬 좋다. 수시로 읍내 보건소에 나가서 건강 체크를 하신다. 그리고는

"내가 아프면 자식들이 고생이여. 난 그거 싫어."라고 항상 말씀하신다.


나는 어머니의 부지런함을 하나도 안 닮았다. 어머니와는 달리 시시때때로 변화에 맞게 무엇이든 챙겨야 하기보다는 나는 원래 습관대로 그냥 가기를 원한다. 나는 공부하려는 생각만 많지 실천하지 않는다. 어머니는 하루하루 배우는 게 많아서 세상이 재밌다 고 하신다. 나는 하루하루 배울게 너무 늘어나니 귀찮아한다. 어머니는 이것저것 자신이 움직여서 해줄게 많으니 행복하다 하신다. 나는 대충 인사로 때우려 든다. 이렇게 당장 눈앞에서 비교되는 게 많다. 어머니는 83세에 사랑스럽고 어여쁘시다. 명랑한 성격도 항상 집안 분위기를 띄운다. 내가 보는 어머니는 노후를 어여쁘게 보내고 계시는 것 같다. 항상 현실을 보면서 사시는 분, 항상 배우고 익히려는 습관을 가진 분, 그리고 무엇보다 넘치는 사랑을 가지신 분이다. 이제라도 내 인생 후반에 롤 모델을 정한다면 나의 어머니다. 나의 노후가 눈앞에 있으니 어머니의 노후가 예사로 안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