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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인트리 May 27. 2023

천생여자, 그 여자

무엇이 되고 싶은가


 

밥알은 절대 한 톨도 남기지 마라, 벌 받는다. 딸그락 식기 소리를 내지 말고 밥 먹어라, 정신 사나운 사람 같다. 자세는 항상 반듯하게 앉아서 먹어라 체한다. 입안에 들어간 음식은 절대 보이지 마라, 상대가 밥맛 떨어진다. 씹는 소리를 내지 마라 같이 먹는 사람에게 예의를 지켜야 한다. 맛있게 먹어라 복 달아난다. 어렸을 때 밥상머리에서 항상 듣던 말들은 어느새 내 몸 안에 흡수되어 있다. 지금도 낯선 이와 밥을 먹으려 하면 반드시 어릴 때 듣던 밥상머리 교육이 새록새록 생각이 난다.

     

우리 회사는 급식이다. 그리고 음식이 맛있다.  성남 맛 집이라고 동료들이 한결 같이 입을 모은다. 각 메뉴에서 원하는 결정적인 감칠맛이 음식마다 있다. 거창하게 화려하진 않아도 간이 기가 막히게 잘 맞는다.심지어 밖에서 구매해 온 반찬도 구내식당에 펼쳐 놓으면 간이 맞는다. 반찬을 만지는 식당언니들의 손 맛과 정성이 음식을 돋보이게 한다. 우리 집 냉장고가 텅 비어 있을 때는 하다못해 급식 반찬을 구매하고 싶어질 때도 있다. 물론 급식 반찬 판매는 안 한다. 가끔 “반찬 좀 팔아요~ ”이런 농담을 하며 잘 먹었다는 인사를 대신하기도 한다.


    

덕분에 점심을 기다리며 일을 하는 즐거움이 있다. 오늘 급식 메뉴가 무엇인지 살펴본다. 음식 냄새가 식당 복도를 지나 위층인 작업 현장 입구까지 올라올 때면 이미 우리의 위장은 어떤것도 소화시킬 만반의 준비가 되어있다.  `다들 빨리하고 밥 먹으러 갑시다!!` 갑자기 단합이 잘된다. 등이 촉촉하게 젖도록 생산에 집중하고 청소에 집중하고 총알같이 현장을 빠져나가 식당에 모여든다.  단정하고 맛깔나게 진열된 반찬들은 식욕의 욕구를 최대치로 끌어올리며 침샘을 자극한다. 음식마다 따뜻한 김이 아지랑이처럼 오르는 아름답고 맛있는 그림은 덤이다. 벌써 식판을 들고 자리에 앉은 사람들의 반찬과 밥의 양을 보면서 “우와 맛있겠다.” “우왕 저거 너무 많이 가져갔다. 진짜 맛있나 보다”를 연발한다.

     

나는 절대 무리하게 음식을 담아 오지 않는다. 밥 한 톨도 남기지 말라는 교육이 머릿속에 있다. 여러 사람이 이용하는 공간이니 식기소리와 음식소리를 내지 않으려 최대한 조심한다. 급식실에서 밥을 먹는 이러한 태도를 오랫 동안 지켜본 동료는 “밥 먹는 모습은 천생여자여~” 하면서 내 옆에 앉는다. 말하는 동료의 목소리가 커서 동시에 주변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나를 바라본다. 그중에 나를 오래 지켜본 또 한 사람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여자 아녀. 일할 때는 장군 여!!!” 그녀의 강한 부정에  갑자기 시선이 나에게 쏠린다. 뭐라도 해야 할 판이다. 텔레비전 감기광고의 소녀처럼 물방울무늬의 손수건 대신 식탁에 있던 휴지를 뒤집어쓰고 눈 깜박이는 표정으로 “천생여자 맞지?”라고 말했다. 주변에 있던 몇몇이 소리친다. “여자 아녀!!. 장군여. 장군!!”


    

사람에게는 양면성만 있는 게 아니라 다양성이 존재하는 것 같다. 내 안의 나는 나도 모르게 많아서 어떤 모습으로 비쳐지는지 나도 잘 모른다. 천생 여자 같이 얌전하다는 말도 장군 같이 거칠다는 말도 비슷하게 자주 듣는다. 어느 때는 세상 따뜻한 언니 같고 어느 때는 엄마 같고 어느 때는 성질 고약한 감독관 같다고도 한다. 어느날은 4차원 예술가같고 어느날은 심오한 철학자 같다고도 한다. 좋다는건지 나쁘다는건지 나도 모르는 내 모습을 사람들은 내게 말한다. 관리자가 되고부터는 황희 정승 같이 변했다. 이사람 말에도 끄덕끄덕. 저사람 말에도 끄덕끄덕.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다. 나이 60이 되어 이런 생각을 하다니 철이 늦게 드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나를 만들어 가려는 노력을 한 적이 없으니  만들어진 내 모습이 없는 모양이다. 더 공부하고 살아보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될지도 모를 일이지만, 내가 어떤 사람이든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나의 영향을 받을 아이들은 이미 성인이 되어버렸고, 같이 사는 남편은 자아가 너무 강해서 나의 영향을 받을 리가 없다. 다만 나는 나를 위해 공부를 계속하면서 살아가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무엇이 되고 싶은건 없지만 공부는 계속한다. 간디의

“영원히 살 것처럼 공부하라” 그 말을 되새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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