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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인트리 Oct 21. 2023

착한 관객

감정 조절 실패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세계 신기록을 세운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손기정’의 이야기가 영화로 나왔다. 애국자가 나오는 영화는 나는 무조건 본다. 영화 제목은  `1947 보스톤`. 영화는 보스톤 마라톤에 나가기까지 손기정과 선수들의 과정이다. 영화의 시작은 베를린 시상대였다. 기미가요가 울려 퍼지는 시상대에서 손기정은 가슴에 단 일장기가 부끄럽고 수치스러워 화분으로 가슴을 가렸다. 손기정은 하루아침에 민족의 영웅으로 떠올랐지만 일제의 탄압으로 더 이상 달릴 수 없게 된다. 달리기를 포기하고 술과 함께 재미없는 나날을 살고 있던 손기정에게 남승룡은 달리기를 하자고 자꾸 권한다. 때마침 달리기로 촉망받는 서윤복이 나타나고 남승룡은 서윤복과 함께 태극기를 달고 뛰고 싶다고 말한다. 남승룡의 설득에 손기정은 마라톤 감독을 시작하게 된다.


영화 포스터

    

 손기정은 서윤복에게 보스톤 마라톤에 나가자고 밑도 끝도 없이 권한다. 이유는 태극기를 달고 독립된 나라의 국민으로 달려 보자는 것이다. 서윤복은 병고에 시달리는 어머니를 돌보느라 자신을 돌볼 틈이 없이 살고 있었다. 그런 서윤복을 설득한다. 감독이 된 손기정은 보스톤 마라톤을 준비한다. 먼저  운동화 한 켤레도 편히 살 수 없는 선수들을 위해 운동화를 사 나른다. 먹는 것이 부실한 선수들을 위해  자신의 집은 숙소로 개방한다. 그리고 선수들과 같은 연습량으로 뛰고 달리기를 시작한다.   

   

그런데 나는 손기정이 운동화를 사러 시장에 나갈 때부터 눈물이 흘렀다. 손기정이  어머니의 병원비 마련을 위해 일을 하러 나가고 자리에 없는 서윤복을 대신해서 윤복어머니의 임종을 지킬 때도 눈물이 주르륵 쏟아졌다. 참가비 마련을 못해서 보스톤 가는 길이 막막해질 때도 나는 울었다. 미군정을 압박하고 시민들의 후원으로 보스톤 비행기에 올랐을 때도 울었다. 간신히 미국 비행기에 올라 낯선 언어의 장벽에서 터지는 자잘한 해프닝에서는 울다가 웃었다. 보스톤 마라톤에서 선두에서 달리는 서윤복에게 커다란 개 한 마리가 덮칠 때는 안타까워 나도 모르게 큰소리로 '아이고 어째!!'를 연발했다. 드디어 서윤복이 1등으로 마지막 테이프를 끊는 순간에는 신나서 박수를 쳤다. 하마터면 극장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기립 박수를 칠 뻔했다.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나오면서 같이 영화를 본 큰딸이 엄마를 놀린다.     

“우리 엄마 진짜 착한 관객이야. 눈물 포인트를 만든 곳에서는 바로 울어 주고, 웃으라고 던진 미끼에서는 너무나 잘 웃어주고 막판에 박수는 뭐여. 영화 보다가 극장에서 박수를 치고 그랴~~. 엄마가 기립 박수 치는 줄 알았어요.”     

딸내미는 계속 말을 이어간다.     

“우리 엄마처럼 재밌게 봐주면 정말 영화 만들 맛이 날 것 같아.” 딸아이의 말을 들으면서 벌겋게 부은 눈을 누르며      

“얼마나 열심히 만들었겠어. 재밌게 봐줘야지. 꼭 비평하려는 눈으로만 보면 무슨 재미가 있겠냐~~ ” 나는 멎쩍어하면서 말을 흐렸다.     


그러고 보니 나는 감정관리가 안 되는 사람이다. 드라마를 보다가 너무 울어서 머리 아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개그 프로그램을 보면 웃겨서 거의 죽을 지경이다. 다음날 일어나면 갈비가 아프다. 너무 많이 웃고 난 후유증이다. 


오늘도 직장의 동료가 힘들다고 울먹거리는데 이야기를 들어주다가 결국 같이 울고 말았다. 처음에는 고개만 끄덕끄덕 공감해 주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내가 따라서 같이 울어버려서 오히려 동료가 당황했다. 고충을 알고 있던 내용이라서 위로해주고 같이 해결방안을 모색해 볼 참이었다. 그런데 내가 울어버리니  울고 있던 동료가     

“언니가 왜 울고 그랴. 언니가 우니까 내 일이 아무 일도 아닌 것 같아졌어.” 같이 울던 동료는 나에게 휴지를 내민다.

 “ 미안해. 들어주기만 하려고 했는데 왜 이리 눈물이 나냐? 진짜 힘들었겠다. 응” 휴지를 받으면서 나는 그만 머쓱해지고 말았다. 달래주려고 메모한 것은 한마디도 못해 줬다. 뭐라 말은 못해 줬는데 동료는 안고 있던 문제를 해결한것 같다고 했다. 같이 울기만 했는데 미안했다.  


휴~좀 냉담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유지하려고 노력해도 어느 순간 봇물처럼 내 감정은 쏟아진다. 별 얘기 아닌 것에 웃음이 터지고 남의 눈물 앞에서는 여지없이 내 눈물샘도 터진다. 감정통제가 잘 안된다. 어느 곳이든 무슨 일이든 평정심 갖춘 표정관리를 하면서 살고 싶은데 마음대로 안 된다. 내 표정만 보면 사람들은 내 감정을 다 알 수 있다. 절대 포커페이스를 할 수 없다. 이 나이에도 감정 통제를 하지 못하는 나를 어쩌면 좋을까? 영화 좋아하고, 소설책 좋아하고, 아직도 마음 설레는 철딱서니 없는 나를 잘 숨기고 살아야 하는데, 어느 순간에 드러낼지 모르니 그런 나를 어떻게 단속할까? 아니면 아무도 모르게 착한 관객으로 즐기면서 그냥 살아갈까? 일희일비하지 않기를 매일 메모장에 쓰면서도 전혀 지키지 않고 있다. 아직도 내 마음이 내 마음대로 안 되는 세상을 나는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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