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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인트리 Mar 03. 2023

공손과 동무하다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든

  

현장에는 밴딩기가 있다. 샐러드 도시락을 2개씩 감싸서 묶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제품의 마지막 단계에서 포장 작업 중에 하나다. 한창 바쁜 시간에

“밴딩기가 안돼요.” 동료가 호출을 한다.

“어떻게 안 되는데?”나는 바삐 기계앞으로 가 봤다. 들여다보니 새 것일 때처럼 띠지가 착 감기지도 않는다. 그러다보니 열판으로 이음새를 눌러 붙게 해주는 장치도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았다. 제품 두개를 필름을 꼭 죄어주고 열판으로 필름을 잘라주는 단순한 일인데 밴딩기는 아무 일도 안되고 있었다. 도움을 청하기전에 일단 혼자 해결을 해 보기로 했다. 전원을 껐다가 켜 봤다. 웬만한 기계의 어설픈 고장은 전원을 껐다가 켜면 대부분 살아난다. 그런데 오늘 밴딩기는 전원과는 상관없는 것이었는지 살아나질 않았다. 툭툭 상판을 쳐 봤다. 툭 치기만 해도 살아 날때도 있다. 역시 재작동을 하지 않았다. 필름을 몽땅 빼서 다시 끼워 보고 열판도 만져 봤다. 몇 가지 되지도 않는 단순한 기계의 온몸을 구석구석 만지고 두들겼다. 에어건으로 틈새의 먼지도 모두 빼냈다.그래도 안된다. 


스윗밸런스샐러드

    

 일정한 수량으로 생산은 계속 되고 있으니 밴딩을 해야 하는 샐러드 도시락은  쌓이기 시작했다. 쌓이는 샐러드 수량 만큼  나는 조바심이 가중되기 시작했다. 일이 늦어지면 출고시간을 맞추지 못할까봐 걱정도 되었다. 한가지가 일이 막히기 시작하면 다른 일들도 겹쳐서 십중팔구 일이 지연될 확률이 높았다. 빨리 밴딩기를 정상 작동 시켜야 했다. 일단 공무팀에 도움을 요청하고 다시한번 밴딩기를 만졌다. 내 마음은 간절해져서 제발 좀 작동하라고 비는 마음이 되었다. 나도 모르게 두 손으로 공손하게 제품을 밴딩기에 올려놓았다. 스르륵!! 거짓말처럼 밴딩기가 작동을 했다.  설마, 두 손으로 공손하게 물건을 올려놓아서였을까?  어이없지만 밴딩기는 정상 작동 되었다. 열판의 접지가 잘 안되었다가 제대로 연결이 되었거나, 띠지의 회전하는 곳에 이물이 끼었다가 저절로 빠져서 작동이 잘 되는 것이었을 게다. 아뭏든 나는 급한 마음에 나의 공손함에 밴딩기가 반응했다고 믿고 어이없지만 두손으로 계속 밴딩 작업을 지시했다.   


문제의 밴딩기

  

공손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니 십 여 년 전의 한 사람이 생각났다. 뒤 늦게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한 나는 그때 모든 게 어색하고 어설펐다. 직장에는 30대 중반의 과장님이 계셨는데 까칠 남으로 소문이 나 있는 분이었다. 무엇하나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어서 그 분의 지시를 받으면 어떻게든 완벽하게 하려고 노력을 했다. 자신보다 나이 많은 아래 직원들에게 대충이 없었다. 몇 번이고 다시해서 완벽해 질 때까지 일을 마무리 시키던 분이었다. 이미 여러 가지 까칠한 소문을 익히 듣고 있던 터라 행여 꼬투리라도 잡힐까 누구든 그 분과 정면으로 마주치는 일을 피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대화를 해 본 적도 없으면서 괜히 피했다.   

  

어느 날 퇴근길에 까칠남 과장님이 앞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모른 척 해야 하나? 입사한 지도 얼마 안됐는데 나를 알까? 괜히 피하고 싶은 옹졸한 마음이 생겼다. 하지만 목례 정도는 인사를 하고 지나가기로 마음을 굳혔다. 멀리서 오던 젊은 과장님은 나를 보았는지 성큼성큼 눈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옷깃을 잡고 공손히 인사를 했다. 예의 바름이 몸에 베인 듯 인사하는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억지로 잘해 보려고 나오는 태도가 아니었다. 그 분의 공손한 태도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금방 느낄수 있었다. 

 

괜한 선입견으로 그를 멀리하고 있던 나는 감동했다. 사람의 어느 한 면을 보기만 해도 그 사람을 표현 할 수 있는 것들이 있지 않은가. 과장님의 예의바른 공손함은 두고두고 내 기억 속에 남았다. 더불어 지금도 내 행동의 한 면을 지배하고 있기도 하다. 단순한 인사라도 예의를 다 하고 있는지 나를 챙겨 보는 마음을 갖게 된 것이다. 덕분에 항상 공손과 동무하는 일상이 되기를 노력하기는 한다.  

   

암튼 다행히 밴딩기는 더 이상 속을 썩이지 않았다. 내일부터 출근 때마다 두 손 모아 공손하게 인사라도 해야 될 모양이다. 오늘도 제발 무사히~고장은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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