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님께서 손님 모시고 현장에 가신다고 합니다. 새로 들어온 설비를 보여 드리려고 가신대요.”
순간 나는 당황했다. 대표님께서 보시려는 것은 며칠 전 새로 들여온 라벨 부착기다.
“어~ 아직 설비 점검을 하지 못했는데~”
나의 망설이는 말투에 사무실 담당자는
“아마 작동되는 것만 보여 주시면 될 것 같아요.”
갑자기 걱정이 되었다. 사실 기계를 들여온 지 며칠 되었지만 나는 어제 처음 테스트를 했다. 겨우겨우 독학으로 작업에 맞게설정을 해 놓은 게 전부다. 현재 가동은 하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그것도 오전에 테스트를 해 보겠다고 다른 관리자가 만지는 것을 분명히 보았다. 그리고 내가 다시 점검을 해 놓지 않았으니 어떤 상태인지 몰랐다. 더구나 이 설비에 내가 익숙하지 않다는 게 나의 불안함이었다. 서둘러 점검을 해봐야 했다. 급한 일을 다른 담당자에게 맡기고 기계 앞으로 가보려는 찰나 아뿔싸, 현장으로 대표님이 들어서고 계신다.
대표님은 큰 키에 성큼성큼 내 앞으로 다가오신다. 손님도 설비에 관심이 많아 보인다.
“자, 이거 작동 한번 시켜 보실까요?”
대표님은 아무렇지 않게 말씀하신다. 나는 오전에 누군가 기계 만지는 것을 봤기에 불안함이 극에 달했다. 내 손으로 점검해 놓지 않은 불안함은 맹렬하게 지금의 설비 상태를 불신했다. 전원을 켰다. 매뉴얼대로 작동을 시켜 봤다. 정상 작동을 했다. 프린터가 작동하여 인쇄는 정상이었고 라벨 부착도 제 위치에 딱 맞아떨어졌다. 하지만 누군가 가이드를 움직였는지 제품은 제 갈 길로 가지 않았다. 서둘러 해결하고 싶은 내 맘과는 달리 라벨부착 안마 센서도 위치가 달라져 있어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주변을 돌아보니 도움 청할 사람이 아무도 안보였다. 식은땀이 흘렀다.
손님은 동영상을 찍고 있었다. 나는 가이드를 다시 잡아 제품이 갈 길을 만들어 줬다. 라벨부착 센서는 너무 낮아서 올려 줘야 할 것 같아 기계를 멈췄다. 나의 곤란한 상황을 눈치챈 대표님은
“이거 위치 좀 다시 맞춰야겠네요.” 하시면서 기존에 사용하고 있던 다른 라벨 부착기 쪽으로 손님과 함께 이동을 했다. 민망해진 나는 대표님과 손님이 떠난 자리에서 마음이 몹시 불편했다. 설비가 왔을 때 재빨리 익숙하게 점검해 놓지 않은 반성이었다. 손님 앞에서 당황했을 대표님께도 너무 미안했다. 그 와중에도 나를 배려하셔서 재빨리 이동해주신 마음 또한 감사했다.
왜 불안한 예감은 항상 적중을 하는지 모르겠다. 설비가 들여오고 업체가 들어와 테스트를 진행할 때 그때마다 나는 다른 일로 바빴다. 테스트 상황을 같이 보고 싶은데 출고가 밀려 있거나 긴급한 다른 일에 나는 쫓기고 있었다. 두 번의 테스트 진행 과정을 놓치고 내 마음이 어쩐지 슬슬 불안하기 시작했다. 별도로 배운 적이 없으니 설비 작동에 대한 실수를 할까 걱정이 되었고 응급상황에 대응을 하지 못할까 걱정이었다. 마침 어제 작동법을 공부하고 연습해 놓은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센서의 높이를 조금 올리자 기계는 완벽하게 작동을 했다. 이렇게 잘 될 때 대표님과 손님께 보여 줬어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이 컸다.
대표님의 불시 방문 덕분에 나는 새로운 설비를 완벽하게 작동시킬 수 있다.시험 전날 벼락치기 공부처럼 열심히 무한 반복했다. 이젠 누가와도 걱정되지 않는다. 어떤 긴급 상황이 생겨도 대응이 가능하다. 우리 현장 설비로 시험을 치른다면 자격증하나는 획득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준비되어있지 않은 상태의 불안함은 삶에서도 항상 적중을 했다. 아침 출근길 집안이 어수선해서 청소가 필요하다 싶은 날은 뜻하지 않은 손님이 온다. 그 손님은 하필 내게는 어려운 어른일 경우가 많았다. 나의 상태가 모든 게 별로여서 퇴근하자마자 얼른 누가 볼까 집에 가고 싶은 날이 있다. 그런 날은 또 거절하지 못할 약속이 생긴다. 어렸을 적엔 하필 어쩌다 예습을 하지 않은날 선생님께서는 나에게 질문을 하셨다. 금방 정답을 말해줄 것이라 기대하시는 모습에 한없이 무안하고 죄송하기만 했었다.
그렇다고 무엇을 그리 단단히 준비하고 살아가는 편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안한 느낌이 항상 적중하는 것도 신기하다. 대표님!! 조금만 더 준비하고 있을 때 오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