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내부에는 가끔 지저분한 곳이 있다. 양면테이프를 붙인 자국이나 박스 테이프를 붙였던 곳이다. 거래처 심사라도 있기 전 날에는 꼼꼼히 찾아다니며 자국들을 모두 제거한다. 한때는 반드시 필요한 내용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면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럴 때마다 붙였던 자리에서 뜯어내게 된다. 뜯어내기만 하면 제거되는 것이 아니라 자국이 남는다. 죽어도 못 보낼 만큼 소중한 연인이라도 되는 듯이 테이프 자국은 남아있다.
그런데 이게 잘 지워지지 않는다. 수세미로 너무 문지르면 벽에 흠이 생긴다. 스티커 재거제를 뿌리면 냄새 때문에 그 공간에 있는 사람들이 너무 힘들다. 식품회사라서 약품을 사용하지도 못한다. 결국 따뜻한 물과 스크래퍼와 근육의 힘으로 해결한다. 입사초기에 배웠던 식품회사 청소법, 열 번 닦아서 안 지워지면 백번 문지르면 된다. 역시 반복은 힘이 세다. 백번을 문지르면서 온갖 생각이 떠오른다.
스윗밸런스 샐러드
어제 입사자의 명단을 보고 가슴이 철렁했다. 여고 때 친구와 같은 이름이 있었다. 내 마음에 테이프 자국처럼 남아있는 이름이다. 꼭 지워야 하는 건 아니지만 볼 때마다 아쉽고 안타까운 자국이다. 내가 가출을 도모해서 산속으로 데리고 들어갔는데 그 친구는 그 길로 스님이 되었고 나는 돌아왔다. 친구에게 미안한 마음과 죄스런 마음이 내 가슴 한편에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
여고 2학년, 그때는 왜 그리 인생이 불안했을까? 세상이 내 뜻대로 될 것 같지 않고, 세상이 무서웠다. 사춘기 문학소녀인 나는 지나치게 내향적이고 내성적이었다. 나는 저 세상밖으로 나가서 살 자신이 없었다. 세상은 너무나 활기찼고, 시골아이가 나가기에는 어느 한 곳도 내어줄 것 같지 않았다. 나의 무능력과 나의 성격과 나의 환경을 비관했다. 죽기에는 부모님이 안쓰럽고 살기에는 내가 너무 별 볼일 없었다. 아무런 무기없이 세상에 나가기는 싫었다. 공부는 해서 뭘 하나. 학교는 다녀서 뭘 하나, 머릿속이 온통 그런 생각뿐이었다. 마침 그 방황의 시기에 친구가 말을 걸었다.
" 너 요즘 표정이 왜 그래?"
"응, 사는 게 허무해."
"그래서 어쩌려고?"
"뭐? 어쩌겠다는 생각은 안 해 봤는데? 그냥 여기서 도망가고 싶어."
"어디 갈 데는 있고?" 그녀는 집요했다.
"응 간다면 산속에 있는 절에 가고 싶어." 내 대답에 친구의 눈이 빛났다.
"같이 가자. 나도 떠나고 싶어. 나도 세상이 날 버린 것 같아서 슬퍼."
한동안 움직이지 않던 새 한마리
우린 둘 다 세상에 미련이 없는 아이들처럼 교복을 벗어버리고 그 길로 야간열차에 올라탔다. 수덕사 견성암으로 향했다. 돌아가지 않고 여기 절에서 살겠다고 다짜 고짜 주저앉았다. 이틀을 바라만 보시더니 3일째 되는 날 주지스님께서 우릴 부르셨다. 다른 것은 기억이 아련한데 주지스님께서 부른 건 확실히 기억난다.
"어서 집으로 돌아가거라. 너는 관상에 중이 될 수 없다고 나와 있어." 단호하게 나한테 말씀했다. 차비봉투를 줬다. 그리고는
"너희가 그렇게 허무하게 생각할 만큼 세상이 별 볼일 없는 곳이 아니다. 힘껏 살아봐라 살아보고 별 볼일 없는지 느껴봐라." 말씀하셨다.
학교로 돌아왔다. 혼나고 벌을 받고 나는 다시 학생이 되었다.
그런데 친구의 방황은 깊어졌다. 일주일쯤 지났을까
"나는 다시 가야겠어. 집에서는 도저히 살 수가 없어." 그녀의 정확한 사정을 모르는 나로서는 친구의 가야겠다는 말이 한없이 미안하기만 했다. 내가 바람을 넣어서 친구의 인생을 망가뜨리는 게 아닌지 죄책감이 생겼다. 결국 친구는 떠났다.
여고를 졸업하고 4.5년이 훌쩍 지나 절을 찾았을 때 그녀는 그곳에 없었다. 다음 달 보름날에 절에 행사가 있어서 온다고 했다. 그날을 기다려 다시 찾아갔다. 친구의 표정은 맑고 고왔다.
"넌 괜찮아?"
묻는 내 말에
"너는 괜찮아?" 우린 마주 보면서 배시시 웃었다.
"그런데 삶은 되게 경건한 거더라. 살아있는 동안에 모든 것에 감사하고 경건해야 한다는 걸 배웠어. 이 세상에 온 우리는 무척 귀한 존재래. 누구나가 귀한 거지. 그러니까 살아있는 모든 것에 경건해야 돼. 감사해야 돼." 그 길로 그 친구와의 인연은 없다. 다시 본 적도 없고 찾아갈 생각도 하지 않았다.
스님친구 덕에 그때부터 내 맘에는 경건과 감사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았다. 불만과 원망이란 단어는 가능하면 멀리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뭐가 그리 맘에 안 들까. 나도 모르게 투덜거릴 때가 있다. 그래서 나에게서 불쑥 튀어나오는 그 투덜거림이 싫다. 기나긴 내장 저 끝에서 숨어 있다가 활화산처럼 오르는 화도 싫다. 모든 것에, 모든 사물에. 모든 사람에게 더 예의 바르고 경건할 수는 없는 것인지 안타깝다.
오늘도 거래처의 정기심사가 있는 날이다. 얼른 출근해서 남은 자국들이 있는지 확인하고 정리를 해야 한다. 자, 오늘은 어떤 마음으로 출발할 것인가. 경건이냐? 투덜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