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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인트리 Aug 03. 2023

대표님 대표님!!

준비가 덜 되었어요.


갑자기 전화벨이 울린다. 사무실 현장 담당자다.

“대표님께서 손님 모시고 현장에 가신다고 합니다. 새로 들어온 설비를 보여 드리려고 가신대요.”

순간 나는 당황했다. 대표님께서 보시려는 것은 며칠 전 새로 들여온  라벨 부착기다.

“어~ 아직 설비 점검을 하지 못했는데~”

나의 망설이는 말투에 사무실 담당자는

“아마 작동되는 것만 보여 주시면 될 것 같아요.”

갑자기 걱정이 되었다.  사실 기계를 들여온 지 며칠 되었지만 나는 어제 처음 테스트를 했다. 겨우겨우 독학으로  작업에 맞게  설정을 해 놓은 게 전부다. 현재 가동은 하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그것도 오전에 테스트를 해 보겠다고 다른 관리자가 만지는 것을 분명히 보았다. 그리고 내가 다시 점검을 해 놓지 않았으니 어떤 상태인지 몰랐다. 더구나 이 설비에  내가 익숙하지 않다는 게 나의 불안함이었다. 서둘러 점검을 해봐야 했다. 급한 일을   다른 담당자에게 맡기고 기계 앞으로 가보려는 찰나  아뿔싸, 현장으로 대표님이 들어서고 계신다.      


대표님은 큰 키에 성큼성큼 내 앞으로 다가오신다. 손님도 설비에 관심이 많아 보인다.

“자, 이거 작동 한번 시켜 보실까요?”

대표님은 아무렇지 않게 말씀하신다. 나는 오전에 누군가 기계 만지는 것을 봤기에 불안함이 극에 달했다. 내 손으로 점검해 놓지 않은 불안함은 맹렬하게 지금의 설비 상태를 불신했다. 전원을 켰다. 매뉴얼대로 작동을 시켜 봤다. 정상 작동을 했다. 프린터가 작동하여 인쇄는 정상이었고 라벨 부착도 제 위치에 딱 맞아떨어졌다. 하지만 누군가 가이드를 움직였는지 제품은 제 갈 길로 가지 않았다. 서둘러 해결하고 싶은 내 맘과는 달리 라벨부착 안마 센서도 위치가 달라져 있어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주변을 돌아보니 도움 청할 사람이 아무도 안보였다. 식은땀이 흘렀다.    

 


손님은 동영상을 찍고 있었다. 나는 가이드를 다시 잡아 제품이 갈 길을 만들어 줬다. 라벨부착 센서는 너무 낮아서 올려 줘야 할 것 같아 기계를 멈췄다. 나의 곤란한 상황을 눈치챈 대표님은

“이거 위치 좀 다시 맞춰야겠네요.” 하시면서 기존에 사용하고 있던 다른 라벨 부착기 쪽으로  손님과 함께 이동을 했다. 민망해진 나는 대표님과 손님이 떠난 자리에서 마음이 몹시 불편했다. 설비가 왔을 때 재빨리 익숙하게 점검해 놓지 않은 반성이었다. 손님 앞에서 당황했을 대표님께도 너무 미안했다. 그 와중에도 나를 배려하셔서 재빨리 이동해주신 마음 또한 감사했다.   

  

왜 불안한 예감은 항상 적중을 하는지 모르겠다. 설비가 들여오고 업체가 들어와 테스트를 진행할 때 그때마다 나는 다른 일로 바빴다. 테스트 상황을 같이 보고 싶은데 출고가 밀려 있거나 긴급한 다른 일에 나는 쫓기고 있었다. 두 번의 테스트 진행 과정을 놓치고 내 마음이 어쩐지 슬슬 불안하기 시작했다. 별도로 배운 적이 없으니 설비 작동에 대한 실수를 할까 걱정이 되었고 응급상황에 대응을 하지 못할까 걱정이었다. 마침 어제 작동법을 공부하고 연습해 놓은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센서의 높이를 조금 올리자 기계는 완벽하게 작동을 했다. 이렇게 잘 될 때 대표님과 손님께 보여 줬어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이 컸다.


    

대표님의 불시 방문 덕분에 나는 새로운 설비를  완벽하게 작동시킬 수 있다.  시험 전날 벼락치기 공부처럼 열심히 무한 반복했다. 이젠 누가와도 걱정되지 않는다. 어떤 긴급 상황이 생겨도 대응이 가능하다. 우리 현장 설비로 시험을 치른다면 자격증하나는 획득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준비되어있지 않은 상태의 불안함은 삶에서도 항상 적중을 했다. 아침 출근길 집안이 어수선해서 청소가 필요하다 싶은 날은 뜻하지 않은 손님이 온다. 그 손님은 하필 내게는 어려운 어른일 경우가 많았다. 나의 상태가 모든 게 별로여서 퇴근하자마자 얼른 누가 볼까 집에 가고 싶은 날이 있다. 그런 날은 또 거절하지 못할 약속이 생긴다. 어렸을 적엔 하필 어쩌다 예습을 하지 않은날 선생님께서는 나에게 질문을 하셨다. 금방 정답을 말해 줄 것이라 기대하시는 모습에  한없이 무안하고 죄송하기만 했었다.


그렇다고 무엇을 그리 단단히 준비하고 살아가는 편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안한 느낌이 항상 적중하는 것도 신기하다. 대표님!!  조금만 더 준비하고 있을 때 오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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