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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인트리 Aug 28. 2023

면접관을 하게 되었습니다.

면접에 나가면서

오늘 난데없이 면접관으로 면접에 나가라는 연락을 받았다. 예고 없던 상황이기는 했다. 면접을 하기로 한 담당자님이 갑자기 일이 겹치게 된 모양이었다. 면접을 참관하러 가면서 나의 젊은 시절 면접이 떠올랐다. 그때는 왜 그리 긴장을 했는지, 그때는 왜 그리 간이 콩알만 했는지 두고두고 후회가 되는 일이었다.   

  

바야흐로 어언 40년 전. 한창 청춘이던 20대. 경찰시험을 준비했었다. 어찌어찌 면접을 보러 갔는데 많은 지원자들의 숫자에 기가 눌렸다. 다음은 모두가 기가 막힌 정장차림이었다. 나 홀로 복장이 튀었다.  청바지에 셔츠로 학교 가는 차림이었다. 복장은 그렇다 해도 그때까지 스킨로션 한번 발라본 적이 없어서 화장기는 1도 없었다.  취직한 언니를 따라온 꼬맹이 행색이었다.     

     

그때는 여자가 무슨 경찰이냐. 여자가 무슨 군인이냐로  직업에 편견이 있었다.  시골에서  내 할아버지는 심지어 나의 중학교 진학도 반대했었다. 여자는 많이 배울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셨다. 친정 엄마의 희생으로 그나마 간신히 중학교도 진학을 했다. 여고시절 조신하게 자라라는 부모님 말씀을 거역하고 나는 태권도를 배웠다. 그리고는 경찰시험 응시가 비밀이라도 되는 듯 아무도 몰래 응시를 했다. 그 누구에게도 조언을 받지도 못했다. 그렇다고 내가 충분히 자료조사를 하고 온 것도 아니었다. 그러니 일단 지원자의 인원수에 놀래고 차려입은 모양새에 쥬뉵둘고 여러 명이 같이 온 듯 군데군데 친하게 어울려있는 모습에  기가 죽었다.   

     

갑자기 내 번호와 이름이 불려졌다.  서울사람 구경에 정신 빠진  나는 얼이 빠져 있었다. "번호. 이름을 말해보세요"면접관의  질문에 "000번 000요~~" 나는 겨우  나 자신이 들릴 목소리로 대답했다.  면접관은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다시!!"를 외쳤다. 혼자 기분만 무지막지하게 망가진 나는 대답을 안 했다.  서류를 보던 면접관이 고개를 들고 "다시. 번호 이름." 나는 타고난 작은 목소리를 원망하며  덜덜 떨면서 최선의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런데 다음 질문이 없었다.  면접관은 다음 사람을 외쳤다.     

     

허망한 탈락이었다. 내 인생 공채 첫 번째 탈락이었다. 배짱도 없고 적극적이지도 못한 내 모습이 나도 마음에 안 들었다. 더구나 경찰공채인데 나처럼 얼어붙어 있는 사람을 누가 뽑아줄까 싶기도 했다. 필기시험뿐 만 아니라 면접도 중요하다는 것을 그때 깨닫게 되었다. 실력만 있으면 될 거라고 안이하게 생각했던 게 후회되던 순간이었다.       


스윗밸런스 고구마무스 랩


     

준비도 없이 갑자기 면접을 하라니 무슨 질문을 할까 부랴부랴 정리를 했다. 생산공장을 취업하려고 오는 사람이면 일단 각오는 되어 있을 터인데 무슨 질문이 필요할까 싶기도 했다. 마음의 이야기를 들어주어야 하는 것이 맞을 것 같았다. 1인 면접이라 면접자가 긴장할 것이라 생각됐다. 나의 얼었던 기억을 교훈 삼아 최대한 부드러운 분위기로 면접을 끌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떤 이유로 우리 회사에 취직하려고 마음먹었어요?”

내 질문에 면접자는 단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한다.

“이 회사의 대표님이 제 인생의 롤 모델이십니다.”

훅 당황한 나는

“대표님의 어떤 점을  롤 모델로 삼게  됐을까요?”

표정이 진지한 젊은 친구는 서두르는 표정 없이 차근차근 대답했다.

“우리 회사 점포에서 일했습니다. 어려운 일이 간혹 생겼어요. 제품 때문이든. 고객문제든. 직원 간의 문제 같은 거요. 그때마다 대표님께서 전 직원들이 이해하고 납득할 때까지 설명하고 단합시키는 모습에 감동받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리고 대표님께서 사업가로 성장하는 모습도 곁에서 보고 배우고 싶습니다. 저의 최종 목표는 대표님 같은 사업가입니다.

몇 가지 질문이 더 이어지고 마지막으로 같이 면접에 참여한 팀장님께서는 우리 현장의 상황과 식품공장에서의 준수 사항에 대해 가감 없는 설명으로 면접은 끝이 났다.   

  

면접자의 예의 바른 태도와 지혜로워 보이는 표정에 나는 마음을 쏙 뺏겨 버렸다. 나는 이미 100점 만점에 200점을 주고 있었다. 속으로는 우리 아이들도 밖에 나가면 이렇게 예쁜 젊은이처럼 보이면 좋겠다는 바람까지 생겼다. 면접을 끝내고 마음이 한층 밝아졌다.

팀장님과 면접 뒤풀이 차 한잔을 하면서

“참 좋은 친구네요~ 우리 회사가 인복이 참 많아요.”

내 말에 팀장님도 인정하는 표정이다. 면접자는 젊은 나처럼 떨지도 않고 또박또박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입사하기만 하면 무지막지하게 잘해 주리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괜히 면접에서 한마디도 못한 젊은 날의 어리바리했던 나만 더 부끄럽게 생각되었다. 다시는 기억하지 않으리 그날의 면접 장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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