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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인트리 Oct 06. 2023

“커피 잘 마셨어요. 로봇 씨!!”

로봇이 커피를 만들어요.


이번 귀성행렬은 역대 급으로 도로가 막힐 것이라고 예보가 쏟아지고 있었다. `설마 그래도 그렇게 까지 막히겠어?`라는 조금 안이한 생각을 했다. 서해고속도로 내비게이션을 확인하니 도로마다 온통 빨강에 간간이 노랑이 더해진 줄이 그어져 있었다. 이왕 나선길이니 열심히 달려갈 예정이었다. 그런데 도로 상황은 우리를  달리지 못하게 했다. 시속 20km만 달려도 빨리 달린다는 착각과 감동을 줄 정도였다.     


8시간째 차 안에 갇혀 있으니 무릎이 아프고 어깨도 아프고 슬슬 지루해져 갔다. 잠깐 쉬려 해도 휴게소마다 도로 밖까지 줄이 늘어서 있다.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겨우겨우 홍성 휴게소에 도착했다. 부랴부랴 화장실을 찾는데 줄이 하염없이 길다. 어쩌랴, 어린아이처럼 아랫배를 움켜잡고 기다렸다. 화장실에서 볼일을 마치고 나오니 세상만사 걱정이 없이 한가해진 마음이다.     


슬슬 주위를 둘러보니 사람들이 모여 서서 구경을 하고 있다. 어차피 막히는 귀성길이니 놀다 가자는 심산으로 우리 가족도 구경꾼들 틈으로 들어갔다. 로봇이 커피를 만들고 있다. 1초도 쉬지 않고 부지런히 움직인다. 주문서가 입력되면 바로 얼음을 받고 커피를 내리고 출구 쪽으로 가져다 주기를 반복하고 있다. 서두르는 법도 없고 속도가 늦춰지지도 않는다. 우리 가족도 커피 주문을 했다. 로봇이 만드는 커피 맛은 어떨지 궁금했다. 언젠가 산업 박람회에서 본 적이 있는 로봇이다. 상상은 현실이 된다고 하더니 어느새 우리 눈앞으로 로봇이 흔하게 나와 있다. 커피를 만드는 로봇의 이름이 뭘까? 두리번거리고 찾아봐도 이름이 없다. 로봇이 열심히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딸들이 말한다.    


커피 만드는 로봇

 

“ 한 대 더 있어야겠다. 혼자 너무 바빠. 로봇이.” 막내의 안쓰러워하는 말을 듣고 큰딸이 말한다.

“열심히 일하니까 한 대라고 하기는 조금 미안하다. 먹을 것을 만들어 주는데 한 마리라고 하기도 미안하고.” 큰 딸의 말을 듣다가 내가 말했다.

“우리한테 서비스를 제공해 주니까 왠지 영혼이 있는 것 같이 느껴진다. 그렇지?”내 말을 듣던 막내도

“맞아요, 엄마. 이름표를 달아 주었으면 좋을 텐데. 열심히 일하는데 이름이 없어.”     


로봇이 만들어준 커피를 들고 막힌 도로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로봇의 대견함과 기계라고 무심히 쳐다본 미안함이 담긴 맛이어서 그런지 커피 맛은 신기했다. 평소에 마시던 흔한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아니었다. 너무나 익숙한 맛인데 묘하게도 커피 맛에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아직 기계에게 서비스를 받을 준비가 안 된 것인지, 아니면 그동안 사람에게 익숙한 예절의 감정이 남아 있어서인지 모르겠다. 로봇이 커피를 줄 때도 `감사하다`고 인사를 해야 하는데 감정을 전할 곳이 없어 괜스레 미안했다.  

   

“엄마는 왠지 고맙다고 인사도 해야 될 거 같은데 커피만 후딱 챙겨 오니까 뭔지 모르게 로봇에게 미안하다. 왜 그럴까?” 내 말에 잠시 생각을 하던  큰딸이

“우리가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배워서 그런 거 같아요.” 한다. 그런지도 모르겠다. 항상 받은 거에 대한 감사와 고마워하는 마음이 사람에 대한 존중이라고 배워 왔다. 앞으로 로봇이 많아져서 서비스를 계속 받을 텐데 이런 감정들도 어느 정도는 정리를 해 둬야 할 것만 같다. 그렇지 않으면 감정 없는 로봇에게 상처를 받을 일이 생겨 날 수도 있겠다. 나 혼자만 고마워하고 나 혼자만 미안해하기도 할 테니까.    


 우리 직장에도 로봇이 있었으면 좋겠다. 무거운 반제품이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오는데 로봇이 이동시켜주면 얼마나 좋을까?  양질의 제품을 위해 최종 점검 역시 자동화 시스템으로 해결되면 좋겠다는 생각도 계속해 오던 고민이다.  관리자가 되고부터는 어떻게 하면 작업을 편하게 할수 있을지 걱정한다. 어떻게하면 어렵지 않게 일을 할 수 있을지 고민을 한다. 그 고민을 해결 해 줄 다양한 로봇이 이미 우리곁에 와 있는 것 같다.  이제 우리가 살아가야 할 세상에 로봇이 같이 가는 게 기정사실인가 보다.  그들에게 내 감정 정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는 의문이다.   그런데 식품은 사람의 정성이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도 일면을 차지하고 있다. 정성과 정직이 식품의 맛을 결정한다는 내 나이의 고지식한 생각을 떨치기가 어렵다. 분명 로봇이 일상에 들어 있으면 편리하고 능률적이고 생산적이다는 것은 아는 내용인데  막상 눈앞에서 로봇을 보고 나니 감정이 묘했다.

  

4시간이면 도착할 시골집을 장장 12시간이 걸려서 도착했다. 로봇 덕분에 홍성휴게소부터 몇 시간은 진지한 대화를 나누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이름 없는 로봇에게 감사한다. “커피 잘 마셨어요. 로봇씨?”


추석날 시골에서 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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