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평이라도 의자와 테이블은 있어야죠
아무리 작은 집이지만 침대만으로 살수는 없다. 좌식 문화의 대한민국이건만 조상님들의 풍습에서 내가 끝까지 적응하지 못한 것이 바로 양반다리로 앉는 것이었다. 발에 쥐가 잘나서 어른들과 바닥에 앉는 자리면 언제나 불편하기만 했다. 군대에 있을 때도 점호 시간이 끝날때면 다리에 감각이 없을 정도였는데 초인적인 힘으로 벌떡 일어나고는 했다. 맞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앉아야 말이 된다. 그래서 침대 다음으로 주문한 것은 테이블, 그리고 의자였다. 우리의 식탁이자 일터가 되어줄 하나의 테이블. 우리가 앉을 의자. 이렇게는 꼭 있어야 했다. 많은 선택지가 있었지만 좋은 나무로 장인정신을 가지고 만든다는 가리모쿠라는 브랜드의 테이블과 의자를 주문하게 되었다. 두달 가까이 기다려야 한다고했지만 그렇다고 아무 것이나 놓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 점에서도 우리는 통했다. 가치가 있는 물건이라면 감수할 수 있다고 언제나 그렇게 생각해왔다.
잠시 살다 가는 집이라고 여기고 대충 싸구려 가구들을 놓을 수 있다. 혹은 가구 같은 것은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가구를 단순히 기능적으로만 생각한다면 좋은 것을 놓을 이유가 없다. 앉기만 하면 되고 물건을 올려놓을 수 있으면 된다. 하지만 이것은 여행을 갈 때 좋은 숙소에 머무르는 마음과 비슷하다. 단순히 잠을 자는 장소로서 기능만을 생각한다면 비싼 숙소에 머무를 이유가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이 좋은 호텔에 가고 좋은 숙소에서 잠을 자고 싶어하는 것은 경험 때문이다. 그곳에서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기 때문이다. 나 또한 같은 생각이었다. 고작 며칠을 머무르는 숙소도 좋은 곳에 가고 싶어하는데, 매일 같이 있는 집이라면 좋은 것을 놓고 싶었다. 물론 자신의 형편에 맞게 해야겠지만 나는 일반적인 절약의 개념과는 다르게 돈을 쓰고자 해왔다. 좋은 것을 내 주변에 두면 좋은 기운이 나의 몸을 또 정신을 감싼다고 믿는다. 사실 이것도 무슨 명품 가구이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정성으로 만들어진 좋은 의자를, 좋은 탁자를. 우리의 공간에 두고 싶었다.
1달 반 동안 바닥에 앉아서 밥을 먹었다. 나보다 매일 출퇴근을 해야했던 그녀에게 불편함이 더했을 것이다. 그러다 마치 선물처럼 크리스마스 이브에 맞춰 의자가 왔고 테이블이 왔다. 당시 교통방송에서 진행하던 라디오 방송을 마치고,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하나 사서 원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처음으로 방바닥이 아니라 의자에 앉아, 탁자 위에 케이크를 놓고 우리는 소원을 빌었다. 아니, 이미 크리스마스의 기적은 이루어졌다. 의자에 앉아 탁자 위에 두 팔을 올려 서로의 손을 맞잡은 것만으로. 기적은 번개처럼 한번 크게 치고 사라지는 그런게 아니다. 매일 소소한 작은 기적들이 정전기처럼 우리를 스쳐 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