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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ut to Frame Mar 08. 2016

[Cine] 독약이 달다

영화 그녀(Her, 2013) :헤어진다. 사랑은 완성된다.


 눈과 귀

 

‘눈’은 그 힘이 매우 세다. 과학을 토대로 비약적인 발전을 시작한 시기부터 ‘본다’는 행위는 다른 감각에 비해 높은 지위를 누렸다. “내가 봤어. 그러니까 그건 맞아”로 대변되는 검증의 방식은 과학적인 사유의 바탕이 되었다.  이는 여전하다. 지금 우리도 과학의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를 규정하는 근대적 이성, 합리적인 태도는 눈과 가장 깊은 연관 관계를 맺는다. Reason을 찾기 위해서는 Reasonable 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영화는 근대적 감각의 위계를 여실히 보여주는 매체이다. 우리는 느낀다, 듣는다고 하지 않고 ‘영화를 본다’라고 말한다. 영화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감각은 시각이다. 물론 소리도 중요하다. 기술의 발전과 함께 촉각, 후각을 영화와 접목하려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1920년대 토끼 영화(TalkyMovie)와 무성영화 사이의 헤게모니 전쟁에서 볼 수 있듯이 이는 모두 ‘영화와 눈의 끈끈한 관계’를 전제한다. 

         

     '눈’의 지위가 올라가는 한편에는 시각이 감각의 위계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질서를 무너뜨리려는 시도도 꾸준히 있었다. 오스카 와일드로 대표되는 심미주의 작가들은 문학 속에서 촉각이나 청각을 형상화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이는 자연스럽게 당시 과학- 눈- 자본주의로 이어지는 지배적인 질서 자체와 타협을 거부하는 성격을 가졌다.  심미주의 작가들의 작품은 직접적으로 사회를 비판하거나, 개혁을 말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눈‘ 중심의 질서를 거부한다는 사실만으로 보편의 질서를 지향하는 세상을 뒤흔드는 불순한 힘을 표출한다.

     

       <그녀> 속 여자 주인공 사만다(스칼렛 요한슨)는 물질성이 없다. 소리로만 존재한다. 영화는 사만다를 표현하기 위해 청각을 전면에 내세운다. “모든 살아있는 문화는 본질적으로 불온한 것이다”라는 어느 시인의 외침처럼 <그녀>는 경계를 넘어서며 우리에게 불온한 메시지를 던진다. 시각> 청각> 나머지 감각으로 소비되던 영화라는 매체가 지켜온 질서.  <그녀>가 그 체계를 완전히 무너뜨린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그녀>는 우리의 고정관념을 교란시킨다. 멜로 장르를 표방하는 이 영화는  분명‘불온한 이야기'이다.



사랑은 ‘불안’을 주고받는 핑퐁 게임.

 

  두 사람의 삶은 사랑으로 충만하다. 시어도르와 사만다가 갖는 사랑의 에너지는  대칭적이다. 하지만 이는 지속되지 못한다.  사만다부터 출발한다. 그녀는 보편적인 인격체가 아니다. 목소리로만 존재한다. 남과 다른 관계여야 하는 원인이 자신에 있다는 사실이 그녀를 불안하게 한다. 기적적으로 가능성을 넓혀왔던 연인 사이에 불안이 끼어들면서 사랑의 에너지는 상대의 힘을 빼는 방식으로 변모한다. 사만다가 시어도르를 위해 여성을 초대해, 실제 성관계를 주선한다. 분명 동기는 사랑의 상대를 위한 것이지만, 그것은 사만다와 시어도르 두 인격체 모두에게 상처를 남긴다. 인간과 운영체제라는 새로운 사랑의 영역을 개척해왔던 관계에 ‘불안’이 끼어들며, 관계가 정체되는 것을 명확히 보여주는 시퀀스이다. 

      

     하지만 사만다는 어려움을 이겨낸다. 어긋난 관계를 바로잡는다. 사만다가 직접 피아노곡을 만들어 시어도르에게 들려준다. 이어서 그녀는 말한다. “우리는 사진을 찍을 수 없잖아. 이 연주는 우리가 찍은 사진과도 같아”  남들과 다른 관계에 걸맞은 ‘다른 사랑의 방식이다. 틈이 생기고 흔들리는 두 인격체의 사랑에 불안해하던 관객들의 걱정도 봉합된다. 이러한 설정은 여러 멜로 영화에서 차용되어 왔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빈부격차, 언어의 벽 등. 다르다는 사실은 결핍을 만들고, 결핍은 불안이 되어 충만한 사랑을 가로막는다. 이때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관계의 특수성을 아름다운 가치로 만드는 것은 편견과 인습으로 얼룩진 장애물을 넘어서는 가장 모범적인 방식이다. 게다가 사진을 찍을 수 없는 상황을 그때의 감정을 담은 ‘음악’으로 대치하는 설정은 듣는다는 행위가 핵심인 <그녀>에게 적확한 개연성도 부여한다. 이 부분에서 끝이 나도 영화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피아노 연주를 들으며 우리는 충분히 감동받고 극장을 나설 수 있다. 하지만 만약 그랬다면 <그녀>는 전혀 새롭지 않은, 아이디어가 조금 번쩍이는 그저 그런 ‘사랑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이는 이전에 수많은 멜로 텍스트에서 차용해온 공식 안에서 정의된 사랑의 속성을 답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그녀>는 모험을 감행한다. 멈추지 않고, 다음을 이야기한다. 그 순간 <그녀>는 ‘탁월한 영화’가 된다. 영화 내내 사만다는 자란다. ‘더  많은’ 정보를 처리하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나며, 풍부한 감정을 학습한다. 그리고 이것은 시어도르를 불안하게 한다. 사만다와 달리 시어도르는 넘겨받은 불안을 해결하지도, 쳐내지도 못한다.  그녀의 성장은 시어도르가 이별을 감내해야만 하는 상황까지 나아가기 때문이다. 보통 우리는 이러한 위기를 ‘결혼, 육아, 아이의 학교 입학식’과 같은 통과의례들이 관계에 부여하는 당위성을 확인하며 ‘참고 살아나간다’. 하지만 사만다와 시어도르는 필연적으로 이러한 통과의례가 개입할 수 없는 ‘특수한 관계’ 속에 있다.  그래서 그들 사이에  끼어드는 불안은 그것을 계속 주고받는 ‘핑퐁 게임’이 될 수 없다. 



치명적으로 달다.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  60~70년대 은막의 스타 커플은 헤어지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이 말이 잘 생기고 예쁜 두 사람에게만 적용된다고 여겼다. 하지만  <그녀>는 이 말이 가장 탁월한 사랑의 형식을 담고 있다고 말한다. 시어도르와 사만다는 사랑하지만 헤어진다. 영화가 그리는 이별의 슬픔은 처절하지 않고 오히려 아름답다. 사실 우리는 이미 시어도르가 전처와 헤어지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리고 ‘다시‘ 한 여자와 사랑을 시작하는 남자의 모습에 몰입했었다. 영화가 끝나갈 때  ‘다시‘ 출발점에 선 남자에게 애정을 갖게 된다. 감독은 ‘다시’를 강조한다. 그렇게 <그녀>는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는 말을 긍정한다.

      

        사랑은 ‘영원’,‘지속’과 어울린다. 그 앞에서 ‘다시’, ‘이별’과 같은 말을 긍정하는 일은 보편적인 사고와 충돌하며 ‘불온한 시간’을 만든다.  <그녀>는 능숙하고 유연하게 관객을 불편한 순간으로 끌어들인다. 청각과 시각의 사이에는 과감한 전복이나 한쪽의 일방적인 우세보다는 적절한 긴장을 유지한다. 여기에서 자신의 목소리로 다른 이의 편지를 대신 쓰는 주인공의 직업 설정이나 미래인데도 지금보다 클래시컬한 패션, 소품, 기기들의 형상은 매우 효과적인 역할을 한다. 현대 기술은 감각을 통한 지시를 ‘축소 생략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음성, 터치도 간소화하는 추세이다.  그럼에도 영화는 청각이 갖는, 감성을 자극하는 속성을 시종일관 도구로서 활용한다.‘치고 빠지는 식으로’ 시각 중심의 질서를 교란시킨다. 어쩌면 혼란스러울 수도 있는 상황들이다. 하지만 참신한 상황 설정에 어울리는 달콤한 구성은 우리를 망각케 한다. 그렇게 우리는 ‘불온한 이야기’를 매우 로맨틱하게 소비한다.   

  

         <그녀>는 멜로 영화로서 갖추어야 할 섬세한 감각, 아기자기한 연출, 매력적인 인물과 같은 미덕을 훌륭하게 충족시킨다.  이러한 맨들맨들한 표면 속에는 독약이 숨어있다.  이 독약은 우리가 가져온 사랑의 환상을 깨뜨린다. 달콤한 영화의 맛에 심취해 따라가 보면, 어느새 우리는 여태껏 인간 이하의 존재로 여겨왔던 존재(사만다)를 동등한 인격체로 긍정하고, ‘사랑의 완성은 이별이다’라는 괴상망측한 명제에 고개를 끄덕이고 만다. <그녀>가 끝나고, ‘좋은 영화야’라고 탄복하는 순간, 우리 몸 곳곳에는 독이 퍼진다. 환상(영화)이라고 생각하던 것에 몰두했을 때 오히려 환상이 깨지고, 실재(현실)와 마주한다. 달콤 쌉싸름하다는 말이 참 어울리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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