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마른 장마라더니 비가 오는 것도 아니고 맑은 날도 아닌 어중띤 날들이 계속되니 농작물들이 제대로 크지도 못하고 농부들 마음이 타들어간다.
6월 7월 장마에 비가 좀 오고나야 8월 9월 볕이 좋아 밭이건 논이건 심어 놓은 것들이 잘 자랄텐데 올해는 여름에 유난스럽더니 늦은 장마가 왔다.
태풍이 연달아 오고 난 후라 채소금이 금값이라 서민들이고 장사꾼들도 다 아우성이다.
밭에서 조금조금 심어 먹는 희숙네야 식구도 단촐하여 별 걱정이 없지만 고추나 배추는 수확해서 김장을 담거먹거나 찬을 만들때 요긴히 쓰이니 신경이 갔다.
전원생활이라고 해도 농사일이 어디 손쉽고 고되지 않은 일이 하나 있을가 더우기 평생 농사는 커녕 화분의 분갈이도 못해 죽인 화초들이 태반이었던 도시 아줌마가 처음부터 실패에 연속이었다,
남편은 자신만 믿으라고 본인이 다 알아서 하겠다 하였지만 아무리 봐도 미덥지 못하더니 결국 희숙씨의 일이 되어 버렸다.
배추도 심어서 김장을 한다고 한해 해보다 포기하고 절임배추를 사다가 김장을 담그기도 하였다.
옆집에서 좀 얻거나 사다가 좀 하려다 절여서 오는 편한 배추를 두고 뭘 고생을 하냐고 해서 두해를 절임배출 사다 담가보니 편하긴 편하였는데 작년에 한번 실상을 알아버리곤 올해부터는 직접심어 길르고 있다.
코로나로 온통 난리통인 세상이었는지 어쨌는지 배추가 올라오기로 한날이 한참 지나도 소식이 없어 기다리다 못해 전화를 해보았다.
대어 먹던 배추가 계속 늦어지자 독촉전화를 한 희숙씨는 부모가 자리에 없어 어린 학생이 대신 받아 통화를 하고 충격을 받았다.
배추가 아직 소식이없어서 전화를 했다고 부모님은 안계시냐고 했더니 그집 아들래미는 천진하게 중국에서 아직 배추 컨테이너가 안들어 왔다고 언제 들어올지 모른다는 친절한 대답을 해줬다.
그 이후로 희숙씨는 직접길러 키운 채소를 먹어야 겠다고 다짐을 했다.
그 중에서도 고추는 손이 많이 가는 작물이기도 했지만 중국산 가짜 고추가루가 항상 못미더웠기에 신경을 많이 썼다.
별생각이 없이 길렀을때 보다 신경을 더 쓰다보니 얼마나 열렸는지 많이 열렸는지 적게 열렸는지 수확량이 얼마나 되는지 일절 관심이 없다가 재작년부터 고추가 없어졌던 것을 알아차렸다.
특히나 작년도 날씨가 파이라 채소금이 비쌌기에 훌렁 훌렁 고랑 중간마다 뭉터기씩 고추가 빠진 것이 유독 눈에 뜨였다.
조금씩아야 서리하듯 동네사람이 따갔나 하고 말았을 텐데 그러기에는 좀 심했던 것이다.
어여 고추를 따고 말려야 고추가루를 낼 터인데 올해도 또 그럴가 싶어 방비책을 세운다는게 감시카메라였다.
매달 돈을 내는 업체에 맞기기엔 부담이 스러워 아들녀석에게 알아봐 달라 했더니 듣는 둥 마는 둥 하다 깜깜 무소식이었다.
결혼을 한다고 못아 놓은 돈도 없어 서울집을 처분하고 아파트를 작은거라도 사준 아들녀석은 더 받을게 없어 그러나 하는 짓이 영 괘씸하기만 하였다. 자주 오지는 못하더라도 연락도 없고 모처럼 엄마가 부탁을 하는데 어찌 저럴까?
결국은 못미더워도 남편을 볶아채서 알아보라 하니 어디서 얻어 왔는지 쓰다가 떼어논 고물 카메라들을 잔뜩 들고 와서는 이리저리 설치를 하였다.
"아니 그래도 녹화가 되야지 도둑도 바보가 아닌 다음에 선이 다 빠진 카메라를 달아 놓음 뭔 소용이 있어요?"
"허허 참 사람도 기달려 보래도 그러네. 이게 다 생각이 있어여 원래 작전이란게 고지식하게 하면 무슨 효과가 있겠나? 허허실실 작전이니 걱정 놓으라고 이게 다 가짜 같은데 진짜 카메라도 두대가 있지... 봐봐 다 가짜 카메라구먼 하고 도둑놈이 방심을 하다 덜컥 찍히게 된다구 그냥 진짜만 설치해봐야 도둑놈이 바보가 아니고 카메랄 피해서 훔쳐가지 않겠나 이말이야"
"어이구 그럴땐 머리가 잘돌아가네 "
말은 그렇게 해도 남편말이 그럴싸해서 썩 마음이 놓인 희숙씨아다.
일을 마춰 놓고 해가 질락 말락 선선해 지지 남편은 술추렴을 하려는지 이장님댁이 하는 식당으로 쏠레쏠레 내려간다.
고생했다고 간만에 미트파이를 구워 놓고 와인도 꺼내 놓았는데 남편은 이장님댁 파전과 막걸리가 좋은가 보다.
시골이라도 택배로 없는 것 없이 구할 수 있는 세상인지라 이런저런 요리도 다시 해볼까 싶다가도 남편의 저런 모습을 보곤 마음이 싹 사라진다.
혼자 남아 저녁겸 먹으려다 옆집 석렬이네 할머니와 순이 아줌마가 언덕 위에서 내려오는게 보인다.
"안녕하세요 어디들 다녀오시나봐요?"
"저녁들은 자셨어요?"
"어이 먹어야지 어째 나와있는가? 웃동에 재복이네 아들네가 뭘 사놨다고 귀경하고 오는구마"
"네? 뭘 사셨대여?"
" 뭐 별거두 아닌디 잉 냉장고여 냉장고 고거 하나로 뭐시라고 유셀 그리 떤당감 시방 눈꼴이 시어부러 에고 거시기햐"
석렬이 할머니는 연신 기분이 상하셨는지 씩씩거리신다.
" 형님도 냅두시옹 얼마나 좋음시롱 그럴까?"
"얼릉 가서 저녁이나 드시오."
" 아직 식사 안하셨음 저희 집으로 오셔서 미트파이좀 드시겠어요?"
"잉 머시라 뭘 먹으라고?"
" 아 빵이요 제가 직접 만든 빵좀 드시라구요 포도주도 드시고.."
"늙응께 빵이 밥이 되간? 밥을 먹어야제"
"아이고 직접만들었다는데 가서 자십시다. 난 집에 밥도 새로 해야하는디 형님 싫음 혼자 가소 난 여서 먹을랑께"
"그러세요 입에 안맞으심 밥도 있어요"
"바깥양반도 있을텐디 시방 우덜이 가도 되나 거시기 한디..."
"바깥양반 없어요 이장님 전화받고 나갔어요 거기서 또 한잔 먹고 오나보니까 천천히 드시고 가셔도 되여"
팔순이 넘은 석렬이할머니와 이른 다섯된 순이할머니에 비하면 희숙은 어찌보면 딸벌이나 조카뻘 밖에 되지 않은 나이이다.
칠순이 채 안된 나이에 처음 이사와서 같이 어울리는 것이 어려웠다
나이 차이도 차이지만 살던 환경이나 정서가 비슷할 리 없어 매번 곤욕스럽기까지 하였지만 전원생활이라고 한다고 내려온 동네가 단지가 있는 곳도 아니요 그저 남편 고향이 가깝다는 이유 하나였기에 억지로라도 정을 붙이려 노력을 많이 했다,
서글서글한 희숙씨는 퉁명스러보이던 동네 아주머니 할머니들에게 얼마 안가 인정을 받았다.
친헤지고 나니 취미같은 농사일부터 집안팍으로 이리저리 도움 받을게 많았다.
물건을 인터넷으로 구매하거나 길러 놓은 농작물이나 과일들을 도매업자에게 밭데기 거저 넘기는 것을 서울에 아는 인맥들을 연결하여 팔아주기도 하고 이런저런 것들은 희숙씨가 도움이 되어주기도 하였다.
도시출신 희숙씨는 땅에서 나는 작은 것 하나하나가 먹걸이가 되고 찬이 되는게 그저 신기하기도 했다.
언제 참외김치라던지, 고추소박이나 이름 모를 나물무침들을 얻어 먹어보기도 하고 손맛이 짠한 남도 할머니들의 음식에 마음을 뺏겨 버렸다.
시골에 산다고 서울이나 대처사람들하고 별다른 거은 없다.
따라주는 와인을 벌컥거리며 막걸리 마시지도 않고 낯설어 보이는 미트파이도 맛있게 잘드신다.
웃동에 사는 재복이네 할머니댁에 냉장고가 한참 말썽이었는데 아들이 큰맘먹고 브랜드 냉장고로 바꾸어 주었다. 냉동칸과 김치냉장고가 하나씩 붙어 있는 세트는 희숙씨도 못써본 모델이다. 아들네에 혼수로 들어온 냉장고를 보고 남편에게 우리도 바꾸자고 차마 말을 못 꺼냈다. 한줄에 삼백씩 하는 가격에 세트를 사면 돈천만원이 든다.
재복이 할머니가 자랑할 만도 하다 싶었다.
"재복이 할머니 아들이 효잔가봐요. 그 냉장고 엄청 비싼건데..."
"효자는 뭔 거시기여 지가 받은께 있응께 하는거징."
"그라도 효자지라 돈받고 싹 입다물어 버리는 자슥도 태반이디 효자지라우."
"땅 팔아서 지 다 줬응께 그정도는 해야지라 효자는 뭔 효잔가 자주 들여다보지도 않는당께"
"그럼요 돈보다 마음이죠"
"마음은 쪼가 되었고 돈이나 좀 많이 줬음 좋겄네 나는 시방"
"아이고 못살아 석열이 할머님 아들도 할머님 엄청 걱정하시더라구요 진짜 효자야"
"잉 울아덜이 뭐라고 하던가 집에한테"
" 아녀 저번 다녀가시면서 혼자 계셔서 걱정되셨는지 명함을 주고 가시더라구여 혹시 일있음 연락달라시네요"
"음메 형님 좋겄소 효자 맞네 맞아 부러"
"우리 딸년은 여서 내가 쌀이고 뭐고 음식도 잔뜩 보내줘도 받았다고 전화한통도 안해야 지가 답답혀서 먼저 전화한당께요 잘받았는지 어다 다 쏟았는지 야글 안해야 썩을..."
"울 아덜이 효자긴 효자제 나가 없이 키워서 등록금도 못보태줬는디 지가 서울가서 애기들 과외갈켜가면 졸업했당께
저그 집에도 아들 결혼시킬때 아파트도 사주고 그랬담시롱 나는 암것도 못해줬당께 이집도 울 아덜이 지워준거시여 애미랑게 주는 것 없이 받기만 하는게 어디 애미여 나는 지금 죽어도 아들에게 할말이 없당께
"에고 거시기하게 왜 또 질질 짠당게 넘의 집에 밥얻어 먹고 뚝 그치쇼잉"
석열할머니는 글썽이다가도 아들생각만 하면 어깨가 절로 힘이들어가고 눈이 반짝반짝해진다.
"그란디 석열이 애비는 돈도 잘벌고 다 좋은디 며느리가 좀 싸나와 보입디다 형님 속깨나 썩껐지라?"
"시방 뭐 흰소리를 하는겨 니 딸년이 사납긴 더 사납지 어따 함부러 주댕일 놀리는감"
"어메 걱정되서 한소릴 남의 멀쩡한 딸은 왜 건드린당꼐 "
"고만들 하세요 다들 자식복이 있으셔서 좋은데 우리아들 녀석이 반만 닯았음 좋겠네 ㅎ"
동네분들이 다 가고나서 정리를 한다. 남편은 아직 올생각이 없는듯 하고 벌써 가을이 오려는지 뀌뚤이 소리가 들여온다.
희숙은 갑자기 두렵기도 무섭기도 한 생각이 들었다
'나도 더 나이를 먹게되면 남편이 먼저 죽을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동네 할머니들처럼 혼자 멀리 살고 있는 아들을 딸을 그리워하면서 늙어 가려나 ?' 웬지 다 비슷하게 살다 가는게 인생일거 같아 몸서리가 쳐졌다.
"아들 이번주말에 뭐 바쁜거 았니?"
"이번 주말 왜? 어 글쎄 뭐 일있는거 같기도 하구 함 볼께 왜여? 서울 올라오시게요?"
"아니 니가 좀 내려오면 안될까? 고추좀 다 따서 말려볼려고 하는데 너의 아빠가 예전만큼 기운이 딸리시는거 같아 엄마 혼자 하려니 힘들어."
"아이 고추는 또 얼마나 심으셨데여 먹는 사람도 없는데 쓸데없이 왜 일을 키워 엄만."
"먹는 사람이 없긴 왜 없어 매년 고추가루 빻아서 갔다주고 김치는 뭐 거저 담그니?"
"그러니까 김치 그냥 사먹음 되는데 우리는 집에서 밥도 잘 안해먹어 맞벌이자나 "
"맞벌이레도 기본적인 거는 있어야지 맨날 사먹니?"
"어 맨날 사먹어 아이 모르겠고 집사람한테 물어 볼께"
"걔 싫다면 너라도 잠깐 왔다가 다음날 일찍가던지."
" 일이 있는거 같아서 나도 확인해 본다니깐 엄마는 참 ... 끊을게요"
애초에 여길 내려올때 자식들 도움을 받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밭이라고 있는게 꼴랑 삼백평 조금 넘어 별탈 없이 다 해낼거 같았는데 막상 뭐라도 심어보니 삼백평은 고사하고 50평만 넘어도 힘이 부쳤다.
저거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이라고 고생없게 잘 키워났더니만 지가 혼자 잘나 큰 줄만 안다.
결혼을 하면서 살던 집을 팔아 신혼집을 얻어 준것도 내가 우겨서 했다. 남편은 그만큼 키워주고 가르겼음 지가 알아서 해야지 남얘가 하듯 하는게 못미덥고 답답했다. 요즘 세상이 어디 우리떄와 같던가 서울에 집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올랐고 아들녀석이 모은 돈이라는 얼마 되지 않았다. 마침 외곽이라도 청약이되어 작은평수의 아파트를 사는게 나을 듯 싶었다 언제 돈을 모으고 집을 산다는 것은 어림도 없어 보였다. 전문직에 능력있는 며느리를 데려왔을때 기쁜 건 잠시이고 잘 사는 사돈될 집에 기죽지 않고 우리도 뭔가 해줘야 할거 같아 부담을 지울수 없었다 결국은 집을 사는데 대출이 모자라는 만큼 보태주어야만 마음이 편했다,
"왜 못온데지 걍 까지것 내가 다함 돼지 올필요 없어"
옆에서 남편은 속편한 소리만 한다.
"그러게 귀한 아드님과 며느님이 못오시니 당신이 다 하시구려"
"낼 아침부터 일찍 할거니까 일찍 주무세요"
시골에 아침 일찍은 7시 8시가 아니다 해가 뜨기도 전에 별이 총총할때 다들 일어나 일을 시작한다.
대부분 고령이라 잠이 없다고 하지만 초저녁 8시가 넘으면 슬슬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니 잠이 없다고 할 수도 없겠다. 어쩃든 부지런을 떤다고 해도 아침을 대충 챙겨먹고 나오니 7시가 넘었다.
집 옆으로 떨어진 밭으로 가자마자 남편의 큰소리가 들린다.
"이런 썩을 놈들을 봤나 이거 또 몽창몽창 고추를 따버렸네 "
"참 뭐 돈이 된다고 이걸 이렇게 훔쳐가나 "
"왜여 또 없어 졌어요?"
"작년 보다 더 심하네 아니 고추가 비싸봤자지 이게 돈이 되는거야 몇푼이나 된다고 야밤에 이짓을 해 "
"아휴 못살아 정말 도대체 누구야"
빨간 빛이 불그러한 고추들이 쭉 달려있다 중간 중간 색깔이 파랗게 뭉텅이째로 빠졌다.
" 안되겠네 cc티비 확인해 봐야겠네"
남편은 서둘러 녹화기본체가 있는 창고를 성큼성큼 걸어간다.
쫒아가는 희숙씨는 한쪽 선반에 올려둔 모니터를 보고 있는 남편 옆에 섰다
"뭐나 나왔어요?"
"아직 기달려봐 10시도 아니고 11시 아냐 2시 즘 맞춰볼게"
"적외선이 달린 카메라라 해도 어둠속에서 뭐가 뿌옇게 흐려 보일거 같지가 않았다.
2배속에서 4배속으로 속도를 올리자마자 얼마 안돼 사람의 형체가 보인다.
빨간 마대자루를 꺼내어 열심히 우리 고랑에서 무엇인가를 따내 집어 넣는다 우리 고추다
"뒷통수만 나와서 모르겠네"
"여자 아니야? 남잔가? 에휴 좀 돈들더라도 좋은 걸 사지 왜 이리 안보여"
"아 좋은거야 좀 기다려봐 어 어 얼굴 나온다!"
"어머 어머 어머나 저거 석열이 할머니 아니야 그지 맞지?"
"어허 맞는데 맞아 아니 나이도 많은 저양반이 저게 뭔일이래?"
" 당장 가봐야 겠어요 같이 가요"
" 아 지금 시간이 몇시인데 일단 진정하고 집에 들어갑시다"
"진정은 지금 당신은 진정이 돼여? "
"알았다고 알았어 일단 좀 마음 가라 앉히고 먼저 조용히 흥분하지 말고 좋게 좋게 이야기 하자구"
도둑이 들었다고 해도 천연덕스레 걱정하는 척했던 것이며 이웃에 살며 혼자 사시니 이래저래 챙겨도 드리고 친 언니나 이모같이 대하여 왔는데 너무 배신감이 컸다.
희숙은 좀처럼 흥분이 가라앉지 않아 물만 네컵을 먹고 앉아 있다.
점심이 되기전 혼자 희숙은 석열이네 할머니를 뵈러 같다. 아무래도 남편이 같이 가는 것 보다 조용히 자신이 왜 그러신건지 이야기를 하는게 좋을 듯 싶었다.
"계세여 저예여 옆집 "
"어 웬일이랑가"
"뭐 좀 드릴말씀이 있어서요 문좀 열어주세요"
" 잠깐 있어보랑께"
문이 열리자 희숙은 들어가려다가 석열이네 할머니가 밀치며 나오는 바람에 뒤로 주춤한다.
"잠깐 안에 들어갈게요 밖에서 얘기하기 뭐해서요"
" 잉 안에가 청솔 안해갔고 엄칭시레 거시기혀 걍 여리로 오서 여기서 얘기햐 뭔일이랑가?"
순간 희숙은 안에 고추가 있으리라 생각이 들어 문을 억지로 열어보려했지만 석열이네 할머니는 오히려 벌컥 화를 낸다.
"아 여서 말하랑께 왜 넘의 집을 막 드러갈라 하요 몬쓰겄네 젊은 사람이 뭔 경우랑가?"
"네 그럼 여기서 말씀들일게요"
"오늘 새벽에 저희 고추를 왜 죄다 따가신거예요?"
"이게 올해만 그런게 아니자나요? 얘길 하시지 왜 안그런척 하시면서 뭐하시는거예여?"
"시방 뭐시여 나가 자네 고추를 도덕질 했다고 했는강? 미치고 펄쩍뛰겠네 뭐여 시방 나를 어케보고 그러는겨? 집에 고추가 없어진게 나랑 뭔 상관이라고 이 난리여?"
"정말 이러시기예요? 형님 가져가신거 다알고 왔는데 거짓말 하시기냐고요?"
"알긴 뭘 알어 누가 그련겨? 누가 봤다고 생사람 잡는감 델꼬와보랑꼐"
"카메라에 다 찍히셨다구요 카메라!!"
"이 여편네가 지금 돌은감내 엉터리 가짜 카메라에 뭐가 찍혔가고랑이 워디서 생사람을 잡내 잡아..."
"다 가짜가 아니라고요 되는 카메라도 있다고요 다 찍히셨어요"
"
난 모를께 난 아니라공 딴데 가서 알아보드랑께 썩 꺼져부랑꼐 시방 어디와서 패악질이여 패악질이 "
석열이네 할머니는 문을 쾅 닫고 들어가서는 밖에서 희숙이 아무리 소리쳐도 꿈적을 하지않는다,
부들거리며 치솟는 화를 억누르고 집으로 돌아온 희숙은 남편에게 화풀이를 한다.
" 왜 가서 이야기 잘 해보았어?"
"아니 참기는 뭘 참고 내가 지금 무슨꼴을 당했는지 알기나 해요?"
경찰에 신고 합시다, 자긴 아니라고 펄쩍 뛰는데 카메라에 찍혔다고 해도 넘겨집는지 알고 눈도 깜작 안해요. 아니 정말 이웃끼리 어떻게 저럴수가 있어요? 완전 우리 속은거 아냐"
"여보 화나는건 아는데 이걸 경찰서에 신고까지 하는건 좀 그렇긴 하네"
"그렇긴 뭐가 그래요 병신처럼 도둑맞고 가만히 있어요? 당신은 누구편이야 누구편? 내가 지금 열불이나서 죽겠는데 점잔빼고 동네호인소리가 듣고 싶어요!"
"그게 아니라 여기 몇집 사는 사람도 없는데 일이 커질까 그러지"
"아니 야밤에 도둑든 거보다 더 큰일이 뭔데요 뭔데?"
" 아 글쎄 경찰에 신고는 하지 말래도 좀..."
남편도 속이 상했는지 휭하니 문을 열고 집을 나갔다.
희숙은 혼자 남아 분을 삭히며 어찌해야하나 멍하니 앉아 있다 석열이 아빠가 건네주었던 명함이 생각이 났다.
화장대 분갑을 열어 명함을 찾아 꺼내 들었다. 한참을 주저하다 전화를 건다,
"여보세요 석열이 아버님 핸드폰이지여?"
"네 맞습니다. 어디시지요?"
"네 전에 명함을 주시고 가셔서 어머님 옆집에 사는 사람이예요."
"아 네 안녕하세요. 왜 혹시 저희 어머니가 무슨일이?"
"아니예요 어머님은 건강하신데 뭐 좀 드릴말씀이 있어서요?"
"네? 무슨?"
"제가 속상해서 말씀을 안드릴려다 어렵게 전화를 드렸어요."
"다른게 아니고 어머님이 저희가 심어놓은 농작물을 네 고추를 자꾸 몰래 가져가세요."
"네 고추를 가져 가신다고요? 고추를 훔치신다는 말씀인가요? "
"네 고추를 딸때즘 되면 저희가 고추가 자꾸 줄어들어서 올해는 카메라를 설치했는데 새벽에 어머니가 오셔서 고추를 따가시더라구여 뭐 조금이면 저희도 그러려니 하는데 양도 양이지만 몇해를 그렇게 가져가신거 같아요."
"어머님도 고추를 꽤 많이 심으시는것 같은데 왜 그러실까? 혹시 카메라에 찍힌게 저희 어머님이 정확한가요? 그러실리가 없는데..."
"네 저랑 남편이 몇번을 확인했는데 틀림없어요 물론 그게 돈이 얼마 되는 건 아닌데 왜그러시냐고 여쭤뵈러 같더니 오히려저한테 화를 내시고 당신은 절대 아니라고 하시는데 속상해 죽겠네요 남편은 경찰에 신고도 하지 말라고 하는데 저는 너무 답답하고 또 그러지 말았음 해서 생각하다 못해 아드님께 말씀드리는 거예요"
"아 네 일단 죄송합니다. 저도 좀 당황스러워서 이거 모라 말씀을 못드리겠네요"
"저희가 배상을 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다시는 그러지 마시라 아드님이 좀 말씀좀 해주세요'
"네 네 알겠습니다, 일단 제게 계좌라도 알려주시면 배상해드리겠습니다. 어머님하고 한번 통화해보겠습니다"
"아니여 배상은 됬고 말씀 좀 꼭 해주세요. 그럼 이만"
"아니 여 그래도 .."
전활 끊은 희숙은 조금 마음이 풀리는 듯 했다 그넘의 잘난 아들자랑만 하는데 잘난 아들에게 한 소리좀 들었음 속이 시원할거 같았다.
"누구야? 무슨일인데 뭘 죄송하다고 하는 거예여?"
"응 아니야 별거"
"별거 아니긴 뭔가 한참 심각한 이야기 하는거 같은데 뭘 배상을 해야되는건데 왜 얘길 못해요?"
"참 나 어머니 말야"
"어머님? 어머님이 뭘 무슨일인데요?"
" 응 아냐 아냐 잠깐 나좀 나갔다 올께"
"어딜 갑자기 가는데요?"
"응 잠깐 바람좀 쐬러 다녀 올께"
밖으로 나와 공원벤치에 앉은 마음이 무겁다 집사람이 알아 좋을 일도 아니기에 조용히 혼자 처리애야 할 것 같았다
석열이 아빠는 피우던 담배를 비벼끄고 전화기를 들고 어머니에게 전화를 건다.
"여보세요 "
"여보세요 응 아범아 어째스까 이시간에 전화를 다 하는감"
"네 어머니 몸은 어디 아프신데 없으시지요?"
"나가 언제 아픈걸 봤나 이사람아 쌩쌩하야 나는 그려 뭔일이 있는감 ?"
"다른게 아니고 옆집 아주머니네가 전화가 왔어요. "
"뭐시라 그 미친 여편네가 어째 자네 번호를 알고 전활 한당가 다 거짓뿌렁이여 그 여자 말 믿덜 말어 나가 가만 안았을랑게 참말"
"어머니 화를 내시지 마시고 그냥 저한테는 솔직히 말씀하세요 어머니가 그집 고출 가져간거 맞지요? 카메라에 다 찍혔다는데 경찰서로 안가고 전화를 저한테 먼저 준게 고마운거예여 경찰서가시면 어떻게 되실라고 그래요"
"잉 고것이 정말로 나가 찍혀부렸다냐? 고것이 참말이여? 워짠다냐 이걸 난 어째쓰까 큰일났네"
"아직 경찰서에 신골를 안했다니 제가 알아서 다 할게요 엄니"
"왜 그러신거예여? 돈이 부족해 그래요? 것도 아님 우리바테 고추도 있는데 왜 그러셨소?
" 나가 자네 얼굴 볼 낯이 없구만 평생 자네한테 해준것도 없는디 이제 죽어야 할랑가 애미땀시 망신살이 뻗게 하고 정말 애미가 미안스러 죽겄네 죽겄어"
"긍께 왜 그러셨냐니까요?"
""내가 자네한테 뭐하나 해준게 없어 그런가 나는 그냥 미안스러워 죽겟네 그라도 애미라고 음식이고 뭐고 좋은 놈 키워서 보내면 말여 다 싫어 하더랑게 "
"왜 싫어해여 엄니가 주신거 제가 다 맛나게 먹는디 그런소릴애요"
" 아녀 석열이 애미말여 전에 진즉 많이 보냈잤는가 근데 그럽디다 나가 준거 아무도 안먹고 처치곤란이라고 거서 다 더 좋은 놈으로 사먹는다고 말여 보내지 말라고 하덜 안켔나 김치도 싫다고 그러는디 고추가룬 좋아 하데 집에서 뭘 해먹는지 지그 친정을 가져다 주는지 좌우당간 고추가리만 주면 넙죽넙죽 잘받는당께 평생 안하던 고맙다는 인사꺼정 해구 말여'
석열아빠는 언제가 부터 어머니음식이 보이지 않았던 이유를 알것 같았다 또 가을이면 올라오는 고추가루가 어떻게 매년 조금씩 늘어나는지 알 것도 같았다.
"근데 엄니 거 혼자 사시지 마시고 이리 올라 오소 이제 그동네서 살기도 민망스러 워케 살라요"
"아니랑께 나가 가면 자네 안사람이 불편해 어찌 살겄나 나는 여가 이젠 고향이라 편고 좋네 암말 말랑께"
"집사람 한테는 제가 얘기해볼께요 어머니 이제 나이도 많으셔서 혼자 언제까지 사시겠어요?"
석열이할머나는 아들이 살갑게 같이 살자고 말해주는게 너무 좋았다 오냥 그러냐 그럼 내가 올라 갈랑가 그 한마디가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동네 소문이라도 나면 어찌 사나 걱정에 앞이 캄캄했다
'내가 너무 오래살았당께 너무 오래살아 이런 못볼꼴 자식한티 보여주네 보여줘'
석열이네 할머니는 집앞 텃밭에 나가도 누군가 지켜보다 도둑년이라 소리칠거 같아 다리에 힘이 안들어간다.
동네에 사람들이 모두 알아버리면 어쩐다냐 너무 무서웠다.
나보다도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이 도둑년 자식이라 소리를 들을가봐 손주가 놀림을 당할 가봐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어질거린다.
"어머니하고 통화했어요? 또 뭤때문에 그러시는거져? 무슨일인데요?
"아냐 그냥 어머님 혼자 사시는데 연세가 적지 않으셔서 걱정이 돼서 그래 . 저기 그래서 그런데 어머니 우리가 모시고 살면 안될까? 애들도 다컸고 큰녀석 군대가고 자취하고 싶다고 하는데 방도 남게 되자나"
"아우 내가 이럴줄 알았어 그게 말이되여? 이제 애들 다 키워 놓고 좀 숨좀 쉬려고 하니 내가 이나이에 시집살이 하라고 나도 숨좀 쉬고 살자 자기야 난 못해 "
"그 나이면 이제 곧 요양원 가심 되지 왜 같이 살자고 그러시는데 당신 만약 어머니 모셔오면 그날로 나랑 끝이야 당신이 모시고 오손도손 모자가 재미나게 살아 "
"허 참 알았어 그냥 물어 보는거자나"
어차피 안될일인줄 알았다. 다시 확인한것 뿐인데 석열아빠는 마음이 쓰리다.
"응 석열애미당가"
"네 어머니 오늘 아범하고 통화하셨지요"
"어 그라지 아까 했제"
"얘기 다 들었어여 어머니 저는 죄송한데 아닌건 아니예여 저 나쁜년이라고 욕하셔도 좋아요 올라오시는 건 참아 주셨음 부탁드려요 "
"그라제 나는 안간당께 아범이 괜한 소릴 또 했구마이 아이랑께 나는 안가"
"여가 좋아부러 혼자 사는게 편한당께 걱정하덜 말어"
"네 그러시면 다행이구여 혹시 돈이 필요하시면 말씀하세요 제가 어머니 통장에 조금 보내드렸어요 돈 때문에 그러신거면 ㄱ냥 제게 말씀해주세요 아범 곤란하게 하시지 마시구요 어머님이랑 통화하고 마음 심란해 해요 제발아예여 그러지 마세요"
"아범이 다 얘기해부렸나 봉께 아니여 나가 돈때문에 그런게 아니랑께 "
"저 나가봐야 돼서 고만 끊을게여 어머니 또 전화드릴게요"
석열이네 할머니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 올라 버렸다 '
며느리에게도 면이 못설거 같다.
'이래저래 수치스러워 어케 살랑가 암만 봐도 내가 너무 오래 살았구만 오래도 살았당께...'
며칠을 그냥 속시끄럽다고 방치해둔 고추밭이 너무 말라간다며 아침부터 희숙은 남편을 억지로 이끌고 밭으로 나왔다.
아침 이른 시간부터 재복이 할머니와 순이 할머니가 내려오시다 손을 들어 희숙을 부른다
"혹시 석열이네 할머니 어디 가셨는가? 몇일째 안뵈는 구먼"
"글쎄요 저는 모르지여 그양반이 저 피해다닐텐데 제가 볼일이 있나요?"
"이건 도 뭔 소리랑가? 둘이 싸우기라 한것인가?"
"제가 왜 그할머니랑 싸워요 싸우길 하여튼 저는 못봤어요"
"그려 알았네'
두 할머니는 석열이네 할머니집으로 가는듯 발걸음을 돌려 내려간다.
"왜 옆집 할머니 뭔일이 있나?"
"됐어요 그양반 죽었나 살았나 신경쓰지 마시고 어여 일이나 합시다"
"오메 오메 우짜스까 우짜스까 서울양반 이리 와덜보시오~~"
할머나들 입에서 비명같은 소리가 나며 남편을 찾는다.
감짝 놀라 희숙과 남편은 뛰어갔다.
문앞에 주저 앉아 있는 순이 할매와 재복이 할머니가 저그 저그 하면서 집안을 가르킨다.
"악 ~~ 엄아먀~~"
남편이 나를 부둘켜 안고 밖으로 나온다
집안에는 고추를 담았던 마대가 그대로 한켠에 세워져 있고 석열이 할머니가 공중에 떠있었다. 할머니의 목에는 번쩍이는 끈이 보인다.
119를 부르고 남편은 아내를 토닥이고 있다
이내 경찰차와 구급차가 오고 집안을 정리하고 있다 들것이 들어갔다 나왔다 아무도 제대로 그모습을 보려하지 않았다
"혹시 이웃분이신가요? 처음 발견하신 분이 어느분이시죠?"
"나가 봤는디 허휴 나가 심장이 떨려서 ..."
"아 네 그럼 좀 안정을 취하시고 혹시 여기 사시는 할머님이 혼자사신건가요? 가족분들 연락처를 알고 계신분 없으세요?"
순이 할머니는 희숙을 가리키며 저그저그 하고 있다.
갑자기 재복할머니가 맥이 빠지신건지 놀라 쓰러지고 경찰은 재복할머니 마저 급하게 차에 태우고 떠난다,
"가족들에게 전화를 좀 해주기겠습니까?"
희숙을 보면 경찰관은 한마디를 남기고 차를 출발한다.
"난 내가 전화를 .... 난 못해 난 못해... 허흑흐흐흑 "
"여보 난 전화 못해"
희숙은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던 것인지 도대체 왜 그깟 고추때문에 사람이 죽어야 하는건지 너무 혼란스럽고 두려워 서서 한동안 움직이지 못한다.
희숙은 멍하니 서있다 고추밭은 바라보았다.
갑자기 욕지기가 올라 왔다.
고추밭에 비닐이 바람에 풀썩이더니 마치 석열이 할머니 치마가 보인듯 했다
고추들이 바스라져 가루가 되어 간다고 해도 더 이상 밭에는 아무도 오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