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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환 Oct 23. 2024

나의 어린 날의 fm25시

 

옆에 누운 동생의 고단한 숨소리가 헤드폰 너머로 들린다나는 다시 볼륨을 올린다.

불은 소등하였고 커튼을 내린 작은 창가로 붙은 책상은 어지럽다스탠드의 작은 불빛들이 건성으로 펴 놓은 문제집과 필구들을 조용히 내려다본다.

뚜뚜뚜뚜 뚜뚜뚜뚜 딱... 신디사이져의 반복되는 음률이 하룻밤을 마무리하는 또는 이른 내일을 시작하는 알람이다.

나지막하고 무미건조한 기름기라곤 1밀리도 섞이지 않은 퍽퍽한 북어포 같은 목소리로 디제이의 멘트가 시작된다.

어떤 날은 그 건조함 마저 걷어버리고 디제이의 멘트없이 음악이 시작되곤 하였다.

30여 년 전 MOMENT IN LOVE (ART OF NOISE), 시그널 음악이 그의 상징이 되어버린 전영혁의 FM25시라는 음악프로이다그 방송을 들을 때마다 시그널 제목처럼 빠져들었다.

빈곤하지는 않았지만 자유롭지도 여유롭지도 꿈을 꾸기도 막연한 80년대의 시대상이랄까 그냥 그렇게 질풍노도의 통과의례이랄까

그렇게 시작된 10대 시절부터 음악 듣기는 공부를 빙자한 유일한 타락이었고 오락이었고 환상이었다신기루 같은 음률 속의 세상과 인물들은 내 의식에 꽤 많은 부분을 점유하였고 지배하였다.

라디오의 전성시대였고 막 보급된 워크맨과 수입 음반들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한 시대였다집안의 형과 누나또는 삼촌과 고모의 영향으로 팝송은 가요를 제치고 젊은이들에게 인기였었다.

헤비메탈이란 장르가 알음알음 유행하였다빽 판을 사러 세운상가로뮤직비디오를 보러 종로의 엠티비를 큰맘 먹고 한번 가보지만 용돈으로 하기에 벅찬 취미였다게다가 수입 금지된 음반이나 뮤지션들도 많아 그런 그룹이 있다는 풍문을 듣고 운이라도 좋으면 빽 판이 있는 친구네 오디오로 테이프를 복사해 오고 그 복사한 테이프를 아낀다고 그걸 복사해서 듣고 쟁여두었다.

그러던 어는 날 전영혁 씨의 음악방송을 알게 되었다중학생 찌질이가 잘 알지도 못하는 낯선 외국의 음악들을 듣는 게 쉽지는 않았다.

시간은 자정을 넘긴 1, 2가사도 가수도 잘 외워지지 않는 낯선 이름과 먼 부유한 이국의 음악과 그들의 음률로 첨 느끼는 신선하고 세련됨은 큰 충격이었었다.

국내에서 발매되지 못하는 록 그룹의 음반이나 공연실황음반을 앨범 한 면을 통으로 틀어주는 날이면 공테이프를 준비하여 녹음하고 나면 큰 작품을 끝낸 감독이나 된 듯 그 뿌듯함이 그날 하루를 들뜨게 했다.

많지 않은 용돈으로 사 모았던 음악 테이프와 앨범들은 이삼십 년 동안 쓰임이 없이 보관했다방구석 책상 밑에서 다락에 장롱의 깊숙한 곳에서 유년의 기억처럼 잊혀 있었다.

FM 25시는 시대의 역할을 다하고 안 좋게 흐지부지 사라져버렸다나도 한동안 음악을 더 듣지도 않고 그렇게 선망하던 로커들과 뮤지션들은 관심에서 멀어졌다.

얼마 전 복고풍이 불고 카세트테이프와 앨범들이 예전 같지 않지만다시 유행하였다헤비메탈만 수집하는 부산의 컬렉터에게 가지고 있던 테이프를 모두 처분했다꽤 짭짤한 거래였지만 개운치 않은 마음 한편의 불편한 여운이 남았다.

그토록 소중했던 시절의 추억의 단편들이 시간이 지나서 의미가 퇴색되는지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가치의 척도가 달라지는 건지 내가 변한 것인지 세상이 바뀌고 따라가는 건지.

애착과 사랑이라는 가치는 지나고 보면 다 찰라 와 같다.

그 당시의 강렬한 소유욕과 집착이 사랑이라 불렸던 것은 아닌지 그저 시간 앞에 모든 것은 불멸의 가치를 속수무책 내놓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젊은 시절의 열정은 그저 부나비의 날갯짓 같은 것인가 파티를 끝내고 난 뒷자리의 황량함과 공허함이 밀려온다.

그저 한때의 치기와 단발의 쾌락이라고 하기에 너무 길고 행복하던 시간이었기에 지금은 식어버린 열정이 내 몸에서 빠져버렸을지라도 후회하지는 않는다.

내가 아쉬워하는 것은 추억도 오래된 그 파편도 아닌 열정과 대상에 대한 사랑이 식어버린 내 마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불멸의 대상을 추구할 필요는 없다.

지금 다시 후회할지라도 다시금 부나비의 날갯짓에 스스로 의미를 움트려 피어나게 하고 싶다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가진 것이 늘어나는 만큼 마음을 잃어가는 일인 거 같다무엇인가에 의미를 잃어버리는 일은 그 대상이 물건이든 사람이든 서글픈 일이다.

없어지고 사그라들어 가는 그것만큼 다시 채울 무엇을 찾지 못한다면 우리의 삶은 그저 유 등의 그을려 떨어지는 나방의 처참한 모습뿐이다.

다시 날개를 퍼덕이는 나비처럼 날아오르자.

그 무엇이 사람이든 또 다른 무엇이든 사랑과 열정 없이 늙어가지 않길 꿈꾼다.

그는 마지막 마무리멘트로 시를 한 소절씩 읽어주었다마무리 시그널 뮤직인 ELEGY (JETHRO TULL) 배경으로 그 목소리로 듣는 시의 한 소절이 그리워진다.



어떤 사람

-신동집(1924~2003)

마지막으로 한번 더 별을 돌아보고 늦은 밤의 창문을 나는 닫는다.

어디선가 지구의 저쪽 켠에서 말없이 문을 여는 사람이 있다.

차겁고 뜨거운 그의 얼굴은 그러나 너그러이 나를 대한다.

나즉히 나는 묵례를 보낸다.

혹시는 나의 잠을 지켜 줄 사람인가

지향없이 나의 밤을 헤매일 사람인가

그의 정체를 알 수가 없다.

다음 날 이른 아침 창문을 열면 또 한번 나의 눈은 대하게 된다.

어디선가 지구의 저쪽 켠에서 말없이 문을 닫는 그의 모습을.

나즉히 나는 묵례를 보낸다.

그의 잠을 이번은 내가 지킬 차롄가.

그의 밤을 지향없이 내가 헤맬 차롄가.

차겁고 뜨거운 어진 사람은 언제나 이렇게 나와 만난다,

언제나 이렇게 나와 헤어진다.

https://youtu.be/ux3u31SAeEM

 https://youtu.be/bSZbyAEJIx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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