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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환 Oct 23. 2024

46번 국도를 향해서

46번 국도를 향해서 



아침 일찍 부산을 떨었지만 강북 강변로와 내부순환로는 모두 막힌다고 내비게이터에 뜬다.

 어차피 목적 없는 나들이이다.

 딱히 갈 곳이 생각나지 않고 서울에서는 벗어나고 싶을 때 춘천을 향한다.

 일산을 지나 파주 끝까지 자유로를 타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십여 년을 매일 출근하며 다녔던 곳이라 별 감흥이 없다.     

 양양고속도로가 개통된 후 예전 경춘국도 46번 도로는 사람들의 외면을 받는다

예전 청평, 가평의 수반이나 대성리 등  북한강 주변은 퇴색해가고 있다.

 남양주가 인구 100만에 근접하는 도시로 변모하고 교통의 혼잡이 심해지면서 팔당 양수리 서종 정도만 가도 쉽게 지치고 그 주변으로 집들도 사람들도 당연히 돈도 몰리고 개발이 된다

더는 위로 올라가는 것은 차라리 고속도로를 타고 속초나 양양으로 가는 만 못한 일이 되어버렸고 예전처럼 나들잇길로 복작복작하던 모습은 간 곳이 없다.     

 강변북로를 들어서면서부터 한강을 거슬러 올라간다.

 물줄기의 시원을 찾아 거꾸로 올라가는 길은 매번 과거로 돌아가는 길이다

도로의 주변으로 없던 건물이 아파트가 올라가 있는 것을 보면서 예전의 모습과 견주어 본다.

 좁디좁은 2차선 도로에서 왕복 8차선 도로로 바뀌고 그만큼의 시간이 지나고 난 지금의 나와 예전의 내 모습들이 교차해 간다.

 한남동을 지날 즈음 옛 강변도로의 자취가  보인다. 

 강변을 따라 고급 빌라들이 늘어선 모습을 와이프는 동경한다. 

가보지 못했던 이태리의 친텐꿰레를 동경하며 한남동 유엔빌리지 주택들을  친텐꿰레라고 부른다

 강변으로 서로 경쟁하듯 올라간 강남의 아파트들을 보고 세월이 이렇게 산과 강을 바꾸어 놓을 동안 우린 뭐 한 거지 하며 한탄한다

“왜 이 많은 아파트 중에 우리 아파트는 없는 걸까?” 

와이프의 질문 아닌 질문에 답이 난감해진다. 

‘더 없는 사람도 많은데 욕심이지’ 하려다 속으로 말을 삼킨다.

 하나마나한 이야기이지만 한강은 우리보다 더 빠르게 흘렀고 사람들의 욕망은 더 빠르게 도시를 잠식했다. 

 편법이 있었을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우리가 열심히 살지 못한 것일 수도 아니면 그냥 운이 없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짧은 보폭으로 부자들을 따라가지 못한 죄를 후회하기도 잠시 차들은 밀리기 시작한다

 강폭은 좁아 들고 다리는 좀 더 촘촘해진다

그 사이로 쉴 새 없이 차들은 컨베어에서 부품이 흘러가듯 남으로 북으로 지나쳐 간다.

 길은 늘 차들로 밀려 밀려 나가는데 어디가 목적지일지 누구와 가는지 알 수가 없다.

 우리 앞으로도 늘어선 빨간 차들의 엉덩이를 보다가 우리는 모두가 너무도 한 길로만 한 곳을 바라보고 걸어가는 인생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인생이 사람마다 펼쳐진 여정이 다 다르다 하지만 가고자 하는 길은 같았다. 

좁은 도로에 사람을 몰아넣고 누가 먼저 빠르게 가는지 종착역이 어디인지도 모르는 게임을 한다.

 내가 가기 위해 누구를 밀어야 하고 앞서가는 이의 뒤통수에 시기와 질투의 눈길을 보내고 살아왔다.

 유행이 될라치면 무엇이 좋다 하면 패션이나 음악이나 먹거리도 깊이 생각하고 고민도 없이 모두 한길로 몰려 뛰어간다

 인생도 마찬가지, 살아가는 방법도, 종교도, 철학도  사람들이 많이 가는 길이 안전하고 바른길이라 생각한다. 

 군시절 행군을 하며 보았던 용늪이 있던 대암산 자락에 소떼들이 불현 듯 생각이 났다. 

 너무나도 생경하고 비현실적인 소들의 무리들이 한국에서도 이렇게 방목을 하는구나 놀라움도 잠시 소떼들을 피해 숲가장자리로 피해서 한참을 바라 보았었다. 

소떼들처럼 아무 생각이 없이 무작정 무거운 군장을 지고 앞 서람의 뒤꿈치만 쳐다보며 걷던 것이 우리는 마치 소띠와 다르지 않구나! 그런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지금의 내 눈앞의 차들도 빨갛게 켜진 차량의 뒷등만 보고 무작정 몰려가는 것처럼 보였다. 여기는 아프리카 사바나 초원도 세렝게이도 아닌데 소들과 영양들이 떼 지어 뛰어가듯 우리는 몰려간다. 그 길이 생존을 위한 것인지 혹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선험적인 경험의 발로일지 모르겠다.

그냥 사람들의 살아가는 방식이란 게 서글퍼진다.    

우리는 인생에서 정녕 또 다른 여정을 선택하고 찾지 못하고 끝내 모든 이들이 몰려가는 대로를 질주해가야 하는지 싶었다.


 나는 올림픽 대로 쪽으로 건너지 않고 워커힐을 지나서 계속 직진을 하기로 했다.

고속도로를 들어가는 길에서 멀어져 가니 눈치를 챈 와이프는 고속도로를 안 탈 거냐고 역정을 낸다.

"응 소떼들 무리에서 떨어지고 싶어"

"웬 소떼 같은 소릴 하니 차 밀리기 전에 일찍 가야지 뭔 소릴 하는데?“

소떼를 설명하기엔 너무 길었다. 

나는 그냥 허허거리면서 눈치를 살핀다.

"어차피 우리는 목적 없이 나온 건데 마음 편히 유람하면서 그냥 천천히 안 가던 길을 가면 안 될까? ㅎㅎ"

"강 따라 거꾸로 천천히 가자 춘천으로 시간 여행하듯 타임머신이 별건가 옛 추억들 찾아내고"

 아내는 더는 말이 없다.          

 인생 별거 있나 더, 더 멀리 가봐야 동해바닷가 건너 지구를 한 바퀴 돌아도 우리는 제자리일 텐데 .

인생이란 게 빨리 끝을 봐야 좋을 게 없을 것 같다 차 타고 가듯 되돌아오지도 못할 길이다.


 천천히 차를 몰면서 46번 국도를 들어섰다.

 멀리 또 가까이 꼼꼼히 주변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직 쌀쌀한 바람이 불어 물결이 출렁인다.

 맨 지름 한 강물에 봄빛이 서려 있다.      

 인생의 길에서 목적지를 향해 질주하는 것보다 누군가와 같이 가는 것, 천천히 음미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혼자라도 좋겠지만 옆지기가 새삼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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