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전날 자정을 넘겨 싸우고 난 후 나는 술을 마시고 침실에 들어가지 않았다.
옆지기는 점점 더 예민해지고 나를 원망한다.
나의 성향이 그와 맞지 않는 것이 어제오늘 일은 아닌데 새삼스럽게 울분을 토하는 그에게 무언가 해줄 말이 없어 답답하다.
자석처럼 서로 좋을 땐 강력히 달라붙었지만 어느 순간에는 강력하게 서로 밀어내는 자석막대기가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생일이라고 뭐 별 다른 감흥이 없는 나이지만 싸운 후에도 아침에 차려진 미역국을 먹고 마음이 조금 누그러진다.
출근을 하고 난 후 생일축하 메시지를 예상하지 못한 사람들에게서 받기도 했다.
난 그들을 챙기지 못했기에 살짝 미안한 감정이 기쁨보다 앞선다.
친구 L은 뜬금없이 카톡으로 한우 교환권을 보냈다.
감사하기도 했지만 웃음이 나왔다
어릴 적 생일집에 갈 때면 고기를 정육점에 사서 신문지에 돌돌 말아 들고 갔던 기억이 났다.
돼지고기는 한 근, 소고기는 반근이 나름 정석이었던 것 같다.
어쨌든 생일이란 게 별게 아닌데도 주변에서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자존감이 올라가고 행복해지는 것은 사실인 듯하다.
그러면에서 생일이라는 것은 본인에게 스스로 기념하여야 할 기록은 아니다.
부모에게 감사하는 날이란 말이 맞는 말이기도 하고 주위의 지인들과 가족들이 부담해야 하는 날인 것도 같다.
언제 태어났는지 언제 죽는지 사람은 스스로 알지 못한다.
탄생이라는 인생의 시작 순간을 누군가가 알려주지 못한다면 나는 생일을 기억하지 못한다.
죽음의 시간은 내가 의식의 끈을 놓아버린 후에는 나의 기억에는 없다 누군가에게만 소용될 기록일 뿐이다.
그 탄생과 성장과 죽음이라는 것이 나의 일이 아닌 그 누군가의 관심과 기억 속에서 존재하는 것을 알았을 때,
그 기억을 지닌 채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가족이었구나 생각이 든다.
나의 삶과 죽음은 그렇게 내 것이 아니듯 나는 또 누군가의 삶과 죽음을 가져야 하는 게 인생이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태어남의 기억을 가진이들이 하나둘씩 사라진다.
대신 나는 그들의 죽음을 하나둘씩 기억하고 갈무리하고 있다.
생일날 아침에 나의 시작을 기억해 준 이들에게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