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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환 Oct 23. 2024

멕시코식당

날씨가 입춘이 지나고 나선 제법 따듯하니 다닐만한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K와 H는 외식을 별로 다니지 않는다.

빠듯한 살림살이는 둘쨰치고 H는 본인이 할 수 있는 음식을 먹다 보면 본전 생각이 난다고 한다.

자리값이 절반을 차지하는 게 갈만한 식당이고 그렇지 않음 집밥만큼 나오지도 않는데 굳이 그 가격이면 좋은 식재료로 집에서 해 먹는다는 생각을 가졌다.

 반면 K는 아무 생각이 없다 그저 많이만 줬으면 술 한잔 같이 먹을 수 있음 집이든 밖이든 그냥 OK이다.

주로  결정권자는 H이니 K는 가만히 따를 뿐이다.

토를 달거나 다른 의견을 이야기했다간 본전도 못 찾는 것을 깨달아 제법 야무지게 처신을 잘한다.


 별 다른 일도 없는 일요일 저녁에 외출을 한다는 것은 주로 장을 보거나 볼 일이 있다는 것이다.

날씨가 좋아진 것은 덤이다.


 물건을 살 때 K는 일단 사고 본다 어쩔 때는 사이즈 체크나 물건의 평판도 무시하고 인터넷에 그럴싸한 사진을 보고 마음이 동하거나 백화점이든 마트든 하다 못해 길거리에서도 가격이 싸면 일단 사고 집으로 자랑스럽게 들고 온다.

더구나 쓰임이나 용도보다는 물건 존재가 용도인 보통 예쁜 쓰레기라는 것을 좋아한다.

 H는 물건 하나 사려면 최소 대여섯 곳을 비교하고 구매후기를 꼼꼼히 보고 인터넷으로 사야 될 것들은 백화점이나 샵을 가서 실물을 확인하고 옷은 입어보고 그러고 구매한다. 바로도 아니고 세일을 할 때까지 몇 달이든 기다려서...

 다이소에 필요한 물건을 하나 보러 가는데 가격은 싸나 덩치는 큰 용품을 사러 나왔다.

역시나 다이소 물건도 두 곳을 둘러 압축봉과 그릇장을 가릴 커튼을 샀다. K는 뭐든 성격이 급해 일단 필요한 것을 단숨에 한방에 사는 것을 원하지만 H는 맘에 들고 필요한 것을 심사숙고해서 고른다

이런 모습을 보면 절로 마음이 숙연해진다

결혼 한 남자를 고를 때도 의당 더 심사숙고했으니 나로서는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물론 H는 절대 부정한다.

"아니 아니 나는 후회할 뿐이야"

"날 만난 것을 후회한다고?"

"아니 아니,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은 거..."

H는 날 만나고 남자를 잘못 고른 죄로 심사숙고하는 습관이 그때부터 생겼다고 한다.


어쨌든 성가신 물건들을 들고 잘 따라와 준 K에게 보상을 제안한다

보통은 제안을 하는 경우 상대방에게 선택권을 주는 것이 상례이나 지나다 본 절두산성당 쪽에 멕시코 음식점을 슬쩍 추천한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멕시코 식당으로 고고


가는 길에 살짝 실랑이가 있다

K는 구글맵 같은 걸 성가셔한다 대충 안다고  저만치 앞서간다.

K는 알고 있던 곳이 크고 깨끗한 별관 2호점이고 H는 본점 1호점을 가는 것이고 부부는 참 하나하나 깨알같이 안 맞기도 하다.

우여곡절 끝에 합정역 골목 안에 있는 식당을 찾아왔다.

요즘 식당들은 웬만하면 다 대기를 해야 한다. 맛이 없음 줄이 없을 테니 다행스러운 안도감이 돌지만 주변을 둘어보니 식당안도 대기줄에도 20대 전후의 젊은 친구들이 가득하다.

K는 적잖이 어색해하며 구시렁대기 시작한다. 어차피 먹고 갈 것을 어차피 할 것을 툴툴거린다.

하지만 곧 H의 "그냥 갈까?" 한마디에 바로 꼬리를 내린다.


푸드트럭의 성공비결과 맛집으로 인식되게 하는 영업 노하우를 어디서 들은 것 같다. 최대한 손님이 줄을 서게 하고 기다린 후 먹게 되면 대부분 시장이 반찬이고 자신이 기다렸던 노력에 대한 자기부정을 하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 만족도가 높아진다고 한다.

배가 고픈 편이 아니었지만 K는 매우 흡족해한다.

가격도 훌륭하고 맥주가 7500원이 엔트리이니 이게 조금 아쉽지만...

두병째를 시키려 하니 H가 눈총을 주기 시작한다.

"주변을 좀 돌아봐바 젊은 친구들은 다 맥주 한병이나 음료한병으로 한두 시간씩 앉아 있는데 왜 그래? 술꾼 아재로 보이고 싶어?"

" 한 병은 그럼 내 용돈으로 살게 그럼 돼지?"

H는 자신은 못 먹는 술에 비싼 비용을 드리기 아까웠을 거다. 못 이기는 척 양보를 한다.


맥주를 기다리며 K는 주변을 빙 둘러보니 젊은 커플, 친구들, 2명 3명씩  앉은 테이블을 본다.

한 어린 청년이 전화를 하며 멕시코 식당에 왔다고 자랑을 한다.

가격은 좀 비싸지만 음식은 먹을 만하다고 누군가에게 자랑인지 설명을 장황히 하고 있다.


" 여기 가격이 되게 싼데 젊은 친구들은 요즘 경기가 어려워서 다들 아끼고 사나 보네, 남자들끼리 이런데 사실 안 오는데 라테는 말이야 남자들은 술집 이외에서 만나는 것은 생각할 수 없었지...."

K가 또 남의 얘기를 주책스럽게 한다.

"아 좀 조용히 해 옆에서 자기들 얘기한다고 들으면 어떻게 하려고 해"

"학생들이나 젊은 시절에 우리도 돈이 없었지 당연한걸..."

H는 또 지청구를 한다.


K는 생각한다.

맞다 인생이라는 게 뭐 하나를 주면 다른 하나를 데려가지...

젊음은 돈이 없고 , 경제적 여유가 생기면 시간이 없거나 젊음이 사라지지...


"그래 맞아 젊음 대신 우린 이 멕시코 토르티야 빵을 얻은 거네..."

K는 바둑이가 되어 남기지 말고 싹싹 다시 먹기 시작한다.

접시 위에는 30년 전 청춘을 갈아 넣은 치마창가 소스가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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