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내 지리한 장마가 늘어지는 날들이 이어졌다. 끝이 보이지 않았던 장마가 끝나가갈 즘 아내와 싸우고 한참을 사네마네 하다가 다시 화해를 하였다.
잠시나마 별거를 하고 이별이라는 감정에 휩싸여서 분노와 원망으로 시작된 감정들이 끝내는 우울감과 열패감, 자책감이 되어 스멀거리며 자라났고 마음을 헤집고 있었다.
이별이라는 것 만남이라는 것에 대한 사념들이 넘쳐흐르고 다시 마음의 물결이 잔잔해지기까지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아내와 화해를 하면서 늘 상 새로운 마음으로 집안을 정리를 한다.
나의 버리지 못하는 성격에 끝내 계속 키우는 화초들을 나눔을 한다. 누가 좋아하지도 예쁘지도 않은 화초는 1층 화단에 심었다. 아마 겨울을 나지 못할 것인데 그냥 유기를 시킨 것 같다.
한 번에 깨끗이 죽이지 못하고 천천히 조금씩 죽게하는것은 아닌가 마음이 영 껄끄름해진다.
살다 보니 떠나야 하거나 보내야 하는 날들이 우리를 성장시켰던 것 같다.
인생에 있어서 큰 매듭이나 전환점이 되는 것들이 있다.
학교를 입학하고 졸업하는 것, 그것은 단순히 과정의 시작과 끝남이 아니라 사람들과의 인연, 익숙한 장소에서의 떠남을 의미한다.
학년이 바뀌고 전학을 가거나 졸업을 하며 학교가 바뀌어서 헤어지는 친구들은 집전번이나 주소를 알면 찾아갈 수도 있었는데 서럽고 애달픈 마음에 눈물이 그렁거린다.
어린 마음에는 슬프고 서러운 일들이 왜 그리 많았는지 모르겠다.
엄마없는 하늘아래라는 영화를 보며 멀쩡히 안방에 있는 엄마가 돌아가신 것 마냥 주체 없이 눈물을 흘리고 TBS 방송국이 문을 닫아 통폐합되는 시절 마지막 고별방송을 늦게까지 턱을 괴고 탤랜트들과 코메디언들을 보며 방송국의 역사를 보여주는 특집프로그램에 나라 잃은 서러움이 밀려와 눈물을 뚝뚝 떨궜다.
동양방송에 나오던 탈렌트들과 코메디언이 얼마 안 있다가 KBS나 MBC에 나오는데도 없어지는것 이별이라는 감정은 어린 마음을 후벼팠다.
동네에 살던 친구가 이사를 가면 아쉬워하며 이삿짐을 싸는 친구집에 가서 배웅을 한다고 이삿짐을 도와주다 어머니에게 쿠사리를 먹었다.
조금 커서 대학을 가고 군대를 가고 부모 곁을 떠나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짐에 단련이 되어간다.
젊어서 만남이라는 것은 이성이든 동성이든 쉬운 일이었고 빈번한 헤어짐이나 짦은 인연에는 무덤덤해져 갔다.
이십대에 어머니가 돌아가시던 날을 맞던 내 모습과 사십이 되어서 아버지를 보내 드릴 때에도 나이를 먹고 단련이 되어가지만 늘 우울하고 상실감이 매한가지였다.
떠나간 이들은 돌아오지 않았고 새로운 사람과 인연은 오지 않고 떠난 이들이 남긴물건들은 하찮고 값어치 없는 것들이지만 버리지 못했다.
낡은 옷가지와 그릇들 사진 한 장까지 어쩌면 떠난 이들은 내게 이것을 남겨주려 만났던 것은 아니었나 막연한 집착이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하다못해 초등시절부터 받은 크리스마스카드와 편지들 조악하기 그지없는 학급신문들, 만화가 그려진 메모장과 노트, 오래된 음반들 카세트 테이프, 등산 뱃지, 학생증, 신촌과 종로에 있던 카페들의 성냥, 제본이 너덜해진 오래된 사전들, 엽서들, 전시도록, 프로그램북들, 고궁의 입장표까지...
그렇게 쌓여있던 물건들은 결혼을 하면서 조금씩 정리가 되었다.
아내의 가장 먼저 불만이었던 오래된 책들을 정리하고 이십년 째 입는 옷들이 사라지고 음반과 테이프 예전 부모님 집에서 들고 온 항아리와 절구 멧돌 등등 정리하기 시작했다.
아내에게는 버렸다고 했지만 당근이나 중고나라에 팔아서 용돈으로 쓴 것도 많았다.
아내와 사는 내내 수없이 싸웠고 우리 짐(? 나의 짐들)은 사라져 갔다. 물론 나는 여전히 쓰잘데없는 것들을 사 모았고 좁은 집에 계속 둘 수 없어서 하나 둘 정리한 것도 많았지만 어쨌든 사라져 갔다.
나는 이제는 전처럼 많이 물건에 집착을 하거나 구입 하는 일이 조금 씩 줄어들고 있다.
물건을 저장하고 집착하는 것은 아마도 결핍의 결과였던 것 같다.
나는 느끼지 못했지만 그동안 참 외롭게 살았던 것일까?
오래된 물건이나 못 쓰는 물건을 버리라고 하는 아내에게 나는 사람이나 물건이나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인데 나의 마음이 당신에게도 해당 된다고 슬쩍 공갈을 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속으로 아내에게 감사한 마음을 느낀다. 이제 제법 미니멀하게 살아가는 게 당신 덕이라고, 나의 결핍을 아마도 당신이 채워주었겠지.
집 앞의 가로수에 봄날에 꽃이 피었다 이내 지었고 연초록의 어린 잎들이 올라오기 시작하고 여름을 지나고 가을이 깊어질수록 끝끝내 초록은 일제히 앞다투어 황갈색으로 물들기 시작하였다.
바람이 부는 어느 11월 마지막 하나의 잎새마저 떨구고 빈 가지로 나무가 서있을 것이다.
무채색의 마른 가지는 바람에 흔들리고 겨울 어느날은 하얗게 눈으로 덮였다가 다시 빈 가지로 흔들리고 나무는 한바퀴 나이테를 두르고 나이를 먹어갈 것 이다
나무는 계절 따라 변하고 몸을 떨궈 꽃과 잎새들을 버리지만 마음속에 잊지 않는다. 다시 계절이 돌아 또 새롭게 피고 지고 할 것이다.
묵묵히 서있지만 틀림없이 내년에는 다시 그 마음 그대로 또 피어 내고 살아낸다.
버려지는 것, 이별하는 것이 두렵지 않다.
나도 아내의 나무가 되어 매년 새로운 계절을 살아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