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었다.
다시 생각났다.
매일 한 번은 꺼내어 보아야 했던 것.
무언가를 놓치기 전의 냉장고처럼
조용히 서랍을 열었다.
뿌리가 잘린 양배추 반통,
비닐에 싸인 상추 몇 장,
그리고 그 옆,
쓰다만 낱말들이 누워 있었다.
말라가는 것도 아니고
썩어가는 것도 아닌
어딘가에 걸린 채
꺼내지 못한 문장처럼
숨죽이고 있었다.
어두운 갈색으로 물들어가는 것들.
죽음의 색은 언제나
축축하거나 지나치게 말랐다.
글자들은 생물처럼 서서히
제 빛을 잃어 가고 있었다.
한입 베어 문 말들은
금세 시고, 금세 잊힌다.
다시 끓이는 일은
매번 내일로 미뤄졌고,
말은
아직 익지 않은 채
입안에서만 맴돌았다
감정의 유통기한을
아직도 알지 못한다.
비우기도 전에
쪼개진 단어들
다시 채워 넣었다.
다음을 기약하며
아직 떠나지 않는 말들을 붙들었다.
남겨진 것들은
버려질 자리에서
고요히 숨을 거둔다.
요리는 언제나 미완이고
인생은 늘 반쯤 남겨진 접시.
소진되지 못한 말과,
버리지 못한 미련들이
안쪽에서 뭉개지고 있었다.
나의 말들은
점점 초록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마음을 조용히 꺼내어
노란 비닐에 담는다.
길가로 내어 놓은 나의 말들을
아침이면 누군가 실어갈 것이다.
꺼내질 수 있다는 희망보다,
잊히는 게 더 따뜻한 저녁이기도 했다.